출판사 제공 책 소개
‘노예로 태어난 신의 친구’
에픽테토스의 모든 가르침이 한자리에
인간 고통의 치료제는‘정신적 자유’,
노예로 출신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전하는 삶의 기술
에픽테토스의 『강의』는 그의 열렬한 수강생이었던 아리아노스가 기록한 것으로 총 8권이었으나 4권만이 전해진다. 그린비 고전의 숲 시리즈 2권 『에픽테토스 강의 1·2』에 이어 고전의 숲 3권으로 『에픽테토스 강의 3·4, 엥케이리디온, 단편』(이하 『강의 3·4』로 표기)이 출간되면서 전해지는 네 권이 모두 소개되었다. 『강의 3·4』에 들어 있는 『엥케이리디온』은 ‘손안의 작은 것’이라는 뜻으로 아리아노스가 『에픽테토스의 강의』에서 뽑은 도덕적 규칙들과 철학들 원리들을 모은 요약본이다. 『엥케이리디온』은 여러 사본이 존재하는 책으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인 심플리키우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엥케이리디온』에 대한 상당한 주석을 썼다. 여기에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들이 약간 섞여 있기는 하지만 에픽테토스의 것이라고 전해지는 「단편」들이 더해졌다. 이로써 독자들은 플라톤보다 더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전부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기의 주요 학파들은 철학의 목적으로 ‘삶의 기술’(tēs peri bion technēs)을 지향했으며 따라서 철학 속에 의술과 기술의 비유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이 학파에 속하는 철학자들에게 철학함의 동기는 ‘인간 고통에 대한 긴급성’ 때문이었기에 철학함의 궁극적 목적은 잘 사는 것, 곧 행복(eudaimonia)의 추구였다. 그래서 헬레니즘 시기의 주요 학파들은 이론적인 문제보다 실천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노예로 태어나 여러 가혹한 외적 조건을 겪어 낸 에픽테토스는 오히려 그러한 경험들로 인해 물질적 풍요함을 누리는 사람들의 무능력을 비판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자존심, 마음의 평정을 가르칠 수 있었다. 또한 가족이 없었던 그에게는 모든 인간이 가족이었고, 이러한 모습에서 가족과 국가를 초월해서 보편적 질서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스토아학파의 코스모폴리탄적인 사고를 찾아낼 수 있다. 그의 철학은 무미건조한 형태로 스토아 철학의 이론적인 근거와 토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의 양식과 표현의 독특한 형태를 통해 스토아 철학이 다루는 중요한 문제이자 개념들인 인간, 신, 이성, 섭리, 자연, 자유, 행복에 관한 생각을 보여 주고 있다.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야 진정한 자유인이다
에픽테토스의 윤리적 사유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 간의 구분으로부터 출발한다. 『강의』와 마찬가지로 『엥케이리디온』 역시 이 구분으로 시작한다. 흔히 ‘내면세계와 외면세계의 구분’, ‘내부적 선과 외부적 선의 구분’이라는 개념에 의해 이해되어 왔던 이 구절의 핵심 논점은 ‘결정되지 않은 것’과 ‘결정된 것’ 간의 구분에 있다. 존재하는 사태와 사건들 중 어떤 것들은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행위 영역에 속할 수 없고 따라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임에 반해, 어떤 것들은 결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행위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따라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다. 에픽테토스에게 철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구분하고 결정하는지를 배우는 것이었다.
자연재해, 전쟁, 부의 소유와 상실, 건강과 질병, 짧은 수명과 긴 수명, 사회적 지위와 정치권력 등은 외부적 힘에 의해 일어나는 사태와 사건들이며, 육체적 고통과 즐거움도 이 범주에 속한다. 한 잔의 포도주가 내 미각과 위장에 불러일으키는 즐거움 역시 내가 일으킨 것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내게 주어진’ 것이며, 내게 주어진 것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가, 내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욕구하는가, 이 믿음과 욕구의 기반 위에서 내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선택하는가, 그리고 나는 어떤 종류의 정서적 느낌을 갖는가’는 나의 고유한 행위 영역에 속하며, 그런 의미에서 이런 것들은 나에게 달려 있는 ‘나의 것’이다. 오로지 이런 것들만이 나의 ‘자유’의 영역을 구성하며, 그런 만큼 내가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할 유일한 영역이다.
행복과 불행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하는’ 사태이다. 결국 ‘정신적 자유’의 유무에 따라 어떤 사람은 사회적 신분에 있어서 노예이지만 진정한 자유인일 수 있다는 것, 반대로 어떤 사람은 신분상 제왕(帝王)이지만 노예와 다름없다는 것을 에픽테토스는 가르치고자 하였다.
“행복과 불행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천 도덕적 철학함의 모델을 보여 주는 저작
『강의 3·4』에서도 에픽테토스는 ‘질문과 답변’ 형식의 논박을 통해 정확히 ‘소크라테스의 역할’을 보여 주고 있다. “네가 아직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소크라테스이길 바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엥케리이디온』 제51장)고 입버릇처럼 역설한 그는 학생을 꾸짖고 오만한 지도력을 보여 줄 때는 견유학파의 디오게네스의 위엄 있게 호통치는 역할, 삶의 지침으로서 단호하고 단도직입적인 원리를 내놓을 때는 스토아학파의 창시자 제논의 교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의 철학의 목적은 이 세상적인 관심을 넘어서고자 하면서도, 그 방법에서는 늘 이 세상적인 일에서 그 단초를 찾아 경험을 통해 삶의 자세를 바꿀 것을 사람들에게 권면하는, 설득적 논증을 펼치는 것이었다.
에픽테토스의 스토아주의는 청강자로 하여금 스토아적 삶을 지향하도록 고무시키는 목적을 충분히 실현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인간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삶의 모습에서 진정한 참된 ‘자유’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과 그러한 길로 인도하는 철학함의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