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김은실님 외 10명 · 사회과학
4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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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서문 | 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_김은실 1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 1. 야마시타와 영애 사이에서: 틈새의 시점에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_야마시타 영애 2.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한다는 것의 의미: 영화 〈귀향〉의 성/폭력 재현을 중심으로_권은선 3.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물화되는가: 일본군 ‘위안부’ 표상과 시민다움의 정치학_허윤 4. 어째서 공창과 ‘위안부’를 비교하는가: 정쟁이 된 역사, 지속되는 폭력_박정애 5. 배봉기의 잊힌 삶 그리고 주검을 둘러싼 경합: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 속의 ‘위안부’ 문제_김신현경 2부.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역사화하기 6. ‘위안부’ 망언은 어떻게 갱신되는가: 신자유주의 역사 해석으로 결속하는 수정주의 네트워크_김주희 7. ‘인정’ 이후 글로벌 지식장: 영어권의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동향과 과제_김은경 8. 유동하는 ‘위안부’ 표상과 번역된 민족주의: 1991년 이전 김일면, 임종국의 ‘위안부’ 텍스트를 중심으로_이지은 9.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 ‘숫자의 정치학’에서 벗어나 ‘바다의 기억’으로 나아가기_이혜령 10. 군 위안부 논의에서의 강제성 쟁점: 여성주의와 민족주의는 대립하지 않았다_정희진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연구에서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위안부’에 대한 최신의 탈식민 페미니즘 연구서 페미니스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을 논하다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이 스스로 ‘위안부’임을 밝히고 피해를 공개 증언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위안부’ 문제는 국경을 넘어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같은 ‘글로벌 희생자’로 위치 지워지면서 지역을 넘은 초국적 텍스트로 논의되는 상황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그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탈식민 페미니즘 관점의 연구가 너무 적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4년부터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논문을 쓰고 쟁점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10여 년의 숙고와 토론의 결과가 바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이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을 향한 폭력의 잔혹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전 세계에 촉구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위안부’ 운동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과정에서 오랜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에 의지했고,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피해자’라는 상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자발 대 강제’라는 이분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망언의 정치에 대해 또다시 민족주의에 의지해 대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은이들은 ‘위안부’ 운동이 그동안 이뤘던 것과 하지 못했던 것을 함께 들여다보고, ‘위안부’ 문제를 국가/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여성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위안부’ 연구의 현황을 살펴본다. ‘위안부’ 문제를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이 책은 민족주의와 망언이 서로를 강화하는 현실을 넘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정한 회복과 지구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1. ‘위안부’, 제국주의 전쟁과 여성의 문제 ― ‘위안부’ 공론화의 시작점은 1991년이 아니라 1946년 도쿄전범재판이었다 ―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연합군도 ‘위안부’ 문제에 책임이 있다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을 기획하고 엮은 여성학자 김은실은 탈식민 페미니즘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를 조명해왔다. 그는 이 책의 서문인 〈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에서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경험을 끊임없이 증언하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당사자 운동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물음으로써 책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한국인 ‘위안부’를 강제된 피해자로, 일본인 ‘위안부’를 자발적 참여자로 구별함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곤경에 처하고 있다. 한국인 ‘위안부’가 전형적인 피해자상에서 벗어나 보일 때마다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안부’ 운동이 억압받은 민족의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이는 한,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바라볼 여지도 줄어든다. 여기서 김은실은 ‘위안부’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연합국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본다. 일본 제국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1946년에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에서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 항목에 포함되지 못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관들은 ‘위안부’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놓았다. 여성주의적 시각이 부족한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비인도적 행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여성을 군수물자이자 성 노예로 동원한 전쟁범죄임이 명확하게 드러날 터였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하면서 조금씩 바꿔 달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전범재판에서 집단 성폭력이 전쟁범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고, 성폭력을 국제형사법의 문제로 등록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는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민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갖는 다층적인 함의가 납작해졌고 집단 성폭력은 민족 간 갈등이라는 틀에서만 법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은실은 ‘위안부’ 문제 공론화의 시작점을 1991년(김학순의 공개 증언)보다 이른 1946년(도쿄전범재판)으로 돌림으로써 ‘위안부’에 대한 민족적/국가적 관점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한다. ‘위안부’를 제국주의 전쟁과 여성의 문제로 조명해야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국제 연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엮은이의 주장은 ‘위안부’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전장에 필요한 물자로서의 여성 동원이라는 차원보다 제국에 의한 식민지 여성의 강제 동원이라는 측면이 더 크게 다뤄져왔다. 비록 한국에서의 ‘위안부’ 논의가 두 측면을 어느 정도 포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인식 틀이 더 강하게 운동을 추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오랫동안 일본 정부와 싸워왔던 ‘위안부’ 운동이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의 전쟁범죄에서 제외시킨 연합군의 잘못 또한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한 싸움의 의제로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서문_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 37쪽 2.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 ― 식민 지배에 상처 입은 지식인 활동가들의 투쟁은 아니었던가 ― 성/폭력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겠다는 욕망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 ‘소녀상’에 대한 윤리적 소비로 운동을 대신할 수 있는가 ― 누가 왜 공창과 ‘위안부’를 비교하는가 ― 1975년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배봉기는 어째서 잊혔는가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무엇을 해왔고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를 운동 내부의 긴장과 활동가의 고민, 영화에서 성/폭력 재현의 문제, ‘소녀상’을 둘러싼 해석, ‘위안부’ 운동에서 배제된 공창제(公娼制) 문제, 민족의 시선에서 벗어난 ‘위안부’라는 주제로 살펴본다. 1부를 여는 〈1. 야마시타와 영애 사이에서: 틈새의 시점에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쓴 야마시타 영애는 ‘위안부’ 운동에서 한일 간 가교 역할을 했던 경험을 찬찬히 풀어낸다. 자이니치(在日) 2세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야마시타 영애는 한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위안부’ 운동에 초창기부터 함께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시야를 넓혀갔다. 하지만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식민 지배에 대한 상처를 회복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여성 인권을 위한 국제 연대가 차츰 무너져간 것이 아닐까 돌아본다. 이어서 권은선은 〈2.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한다는 것의 의미: 영화 〈귀향〉의 성/폭력 재현을 중심으로〉에서 2016년 개봉 후 3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귀향〉을 면밀하게 비평한다. 〈귀향〉의 문제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방식이 여성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민족/남성의 죄책감과 수치심만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있다. 스펙터클은 고통을 재현하는 데 실패하고 ‘위안부’를 신성한 존재로 대상화하고 만다. 허윤의 〈3.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물화되는가: 일본군 ‘위안부’ 표상과 시민다움의 정치학〉은 마찬가지로 ‘위안부’가 ‘순결한 희생자’라는 이미지에 고착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현재 ‘위안부’의 대표적인 형상은 ‘소녀상’이다. “친구처럼 편안한”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와 관련된 ‘윤리적 소비’는 ‘위안부’에 대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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