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화된 디지털 자본주의를 넘어
미래의 인간과 기술을 재구성하려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힘인 ‘사랑’과 ‘욕망’을 이해해야 한다
기술과 매체에 대한 쉼 없는 욕망과 실망은 인간의 가장 친밀하고 핵심적인 감정들과 인간관계와 세계를 변형시키고 있다. 스마트폰과 스마트 도시가 전 지구적 게임 아케이드가 되어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부과한다. 〈포켓몬 고〉를 비롯한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뿐만 아니라 트위터, 소셜네트워크, 각종 데이팅 앱, 포르노 사이트, 플레이스테이션 VR, 내비게이션까지, 그 모든 게 ‘게임 그 자체’로서 사랑과 정치를 품고 있다. 반응과 보상, 단안경적 시야의 가상 체험을 통해 욕망을 폭발시키는 게임 원리에 기반을 둔 인공지능, 자동화, 데이터, 예측 기술, 소셜 미디어의 자그마한 홀림과 소소한 매혹에 중독된 인간은 일종의 사이보그이자 로봇이 된 채 저도 모르게 1%의 이익에 복무한다.
런던로열홀러웨이대학교 디지털 미디어 과정에서 강의하며 현대 자본주의 속 감정, 정치, 기술의 관계를 탐구해온 신진 학자 앨피 본의 신간 《게임, 사랑, 정치》는 지금의 기술사회를 “자본주의 발전의 최고 단계에서 사회적 관계가 생산관계의 계기”가 되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욕망혁명에 의한 리비도적 미래에 대한 전쟁”을 탐구한다. 프로이트, 라캉, 바디우, 바르트, 보드리야르, 드보르, 르페브르, 짐멜, 일루즈, 들뢰즈 등 널리 알려진 학자들과 육휘, 도미닉 페트먼, 닉 서르닉 등 신진 학자들의 이론과 디지털 정치, 스마트 도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알고리즘, 딥페이크, 각종 SNS와 애플리케이션, VR 기기에 대한 논의를 아우르면서 미래의 인간과 기술의 진정한 발전 방향에 대해 살피고 있다.
다양한 논의를 통해 저자는 ‘세계를 변형시키는 기술의 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갖되, 더욱 인간의 근본적인 영역에 천착해야 하며’, 결국 현대사회에서 “디지털 게임”과 “모든 것을 전복하고 융합하는 근원적 감정인 사랑” 그리고 이들의 관계를 설정해내는 “강력한 힘으로서의 정치”가 맺는 삼각관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욕망혁명인가
현대 디지털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의 감정을 지배계급의 이익에 맞춰 ‘조작’하고 ‘생산’해내는 데 특화된 체제라는 비판적인 지적은 널리 통용되고 있다. 앨피 본은 그에 대해 더욱 깊숙하게 파고들어, 이를 가능케 하는 수단은 바로 “관계, 감정, 일상 그리고 사랑(애정)”의 “게임화”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게임”은 ‘전자오락 아케이드’, ‘시뮬레이션 오락’, ‘VR 체험’ 등으로 대표되는 말 그대로의 ‘게임’이다. 지금의 현실 세계에서 매일매일 새로 태어나는 ‘게임 문명’에 대한 핍진한 체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기술이 제공하는 개인적이고 ‘노예적인’ 욕망과 쾌락을 어떻게 집단적이고 긍정적인 ‘주체적인’ 정치적 힘으로 변화시킬지 사유하기 위해서 먼저 체제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로부터 전복 지점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1장(데이터 러브)에서는 오케이큐피드 일화를 시작으로 ‘자료 그 자체’에 배어 있는 배제와 위계화의 논리를 짚는다. 현대의 게임 아케이드라고 할 만한 스마트폰의 세계는 욕망, 반응, 보상을 자극함으로써 끊임없이 인간을 재구성한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이미 수많은 자동화와 게임화의 기제가 (챗GPT 훨씬 이전부터) 인간의 행동과 감정의 변화에 개입해왔고, 그러한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인공사지”가 얼마나 우수한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다.
2장(디지털 리비도 도시)에서는 동서양에서 공히 진행되고 있는 스마트 디지털 혁명을 시작으로 ‘클라우드적 사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보기에 평면적인 이념의 눈으로는 디지털 세계를 독해해낼 수 없으며, 중첩된 입체적 이미지로 세계를 바라볼 때 진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디지털 자본주의가 SNS를 통해 발행하는 리비도적 경험으로서의 클릭이 “인위적인 통화”가 되어 무차별 양적 완화를 진행 중인 것을 뜻하며, 욕망할 만한 것을 자연스레 인간에게 심어 마치 자발적인 것인 양 인간의 행동과 경로를 설정하는 자율주행 차량(그래서 매우 주목해야 하는 매체)에서 잘 살펴볼 수 있듯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 접하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디지털 기술의 공간적(도시적) 힘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결국 정치적이고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것을 집약하는 근본적 감정인 사랑(욕망)을 지배하는 능력에 근거한다.
게임화의 핵심에는 사랑이 있다
3장(시뮬레이션과 자극)에서는 1990년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부터 최근의 레플리카, 플레이스테이션 VR(딥페이크와 ‘포르노’를 포함한)까지 저자의 수많은 체험과 관찰에 근거한 탐구기를 다룬다. 디지털 자본주의가 인간의 감정, 관계, 일상에 개입하는 양상을 가장 극적으로, 전형적으로, 근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연애’에 관련된 각종 관련 매체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근간을 이루는 과거의 게임들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게임화의 핵심에는 사랑이 있다는 말이다. 윤리와 의지의 영역을 제거한 상황에서, 자료를 모아 감정과 대화를 맞춤형으로 흉내 내고 통계를 응용하여 제시하는 것은 이제는 “너무나 쉬운 기술적 과제”다. 그래서 VR과 “게임공간”은 그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적이다. 그 속에서 정보 통제에 참여하고 흥미의 잉여에 몫을 요구하는 “전파자 계급”이 등장해 온라인의 복화술사가 된다. 순간적인 주의를 끌고 끊임없이 갱신되는 “0의 세계”에서 우리는 신속하게 ‘리셋’된다.
4장(연결의 방법)에서는 지금까지의 상황, 이른바 리비도적 스플린터넷의 대안을 탐구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사랑(연애)을 다루는 데이팅 앱, 포르노 사이트, 각종 인터넷 게시판 등은 (하위문화 취급을 받아왔지만) 사실상의 주류이고, 모든 디지털 자본주의적인 활동의 뿌리다. 인간에 대한 가치를 노골적으로 극우화하는 성적 시장 가치(SMV), 섹스팅학 등을 저자가 살펴보는 이유다. 저자는 결국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사성을 바탕으로 연결하거나 부정하는’ 은유의 방식이 아닌, ‘연관성과 인접성을 바탕으로 상상하는’ 환유의 방식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이를 반영한 코딩과 알고리즘을 개발하며 큐레이션하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사랑’과 ‘욕망’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변화의 원동력을 도모해보자는 것이다.
프로이트에서 <포켓몬 고>까지, 신진 학자의 종횡무진 탐구기
플레이스테이션, 밈 문화 등을 주제로 연구를 이어온 신진 학자 앨피 본은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을 접목한 시각에서 이 책의 내용을 전개한다. 특히 “지금까지 오해되어온” 정신분석학에 관한 도전적인 해석을 바탕으로(“프로이트는 충동의 뿌리에는 욕망이 있다고 한 적이 없다”), 인간의 근본을 이루는 본질적 감정들을 이해하고, 이를 긍정적 방향으로 발산시키는 데에 주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술 정치에 열린 자세를 취하고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수많은 거장 학자들의 이론을 활용하고(프로이트, 라캉, 바르트, 보드리야르, 드보르, 르페브르, 짐멜, 일루즈, 들뢰즈 등) 많은 신진 학자들의 연구도 섭렵하고 있다(육휘, 도미닉 페트먼, 닉 서르닉, 매켄지 워크, 로이신 키버드 등). <포켓몬 고>처럼 잘 알려진 오락을 비롯해 각종 VR 기기, SNS 및 애플리케이션, 1990년대 연애 시뮬레이션부터 지금의 VR까지 수많은 게임들에 대한 몰입 체험도 곳곳에 녹아 있다. 하위문화로 취급되지만 현실 속에서는 강한 영향력(과 현재 진행형의 ‘참여’가 이루어지는)을 지닌 소위 ‘성적 콘텐츠’들까지 분석했다. 각 장의 ‘던져보기’에서는 소소하지만 대안의 출발점이 될 만한 여러 실천들까지 제시해본다. 한마디로 재기발랄한 신진 학자의 종횡무진 기술사회 디지털 자본주의 감정 정치 탐구기이자 연구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