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건축

드니 올리에 · 인문학
4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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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얼굴이 개인의 존재를 표현하듯, 건축은 사회의 존재 그 자체를 표상한다. 인간 사회의 이상과 권위는 대성당과 궁전 같은 기념비적 건축의 형태로 세워져 민중에게 호소하거나 침묵을 강요한다. 조르주 바타유는 건축이라는 말의 의미가 아니라 그 ‘작용’에 주목해 ‘반건축적’이고 ‘비구축적’인 글쓰기를 전개함으로써, 건축이 상징해 온 서구적 사유의 전통을 전복한다. 말할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을 건드리는 바타유의 글쓰기는 인간 우월성의 하찮음을 폭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반건축(反建築)’이 함축하는 의미다. 저자 드니 올리에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바타유의 반건축적 사상과 문학을 심도있게 분석한다. 서구의 인본주의적 문명 배후에 감춰진 차원을 드러내고 그 사회의 한계와 모순에 주목하는 이 책은, 건축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을 전제로 한 서구 주류 철학의 전통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합리와 발전의 신화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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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 인생의 일요일 헤겔적 구조물 단순한 시작 헤겔적 구조물 바벨탑 상징 건축적 은유 랭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1) 『랭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2) 바타유에 관하여 건축적 은유 신학총서 ‘건축’이라는 항목 미로, 피라미드 그리고 미로 미로와 피라미드 제왕절개 불완전 학살 「송과안」 1. 호모 사피엔스 2. 맹점 3. 분변학 4. 송과안 5. 『하늘의 푸른빛』 제왕절개 주註 역자 해설 — 철학의 구축과 반건축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태초로부터 인간의 질서는 건축의 발전에 지나지 않으며, 건축적 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만약 우리가 건축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을 공격하는 것이다.” — 조르주 바타유, ‘건축’, 「비평 사전」 『도퀴망』, 1927.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프랑스 철학의 유행과 함께 국내에 소개되었지만, 푸코, 데리다, 바르트, 들뢰즈, 라캉 같은 사상가들에 비해서는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인물이다. 그의 저서와 소설이 십여 종 번역되었을 뿐 그에 대한 연구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그가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는 데 사용했던 ‘건축’이라는 개념은 거의 논의된 바 없다. 서구에서조차 바타유는 포스트구조주의나 해체주의, 페미니즘과 관련해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의 독창적인 사상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 가고 있다. 인간 이성으로 모든 것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힘을 잃어 가고 있는 세태 속에서, 합리성으로 규정이 불가능한 타자성이나 이질성 같은 문제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반건축: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과 글쓰기(La prise de la Concorde: Essais sur Georges Bataille)』는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본격적인 바타유 연구서이다. 저자 드니 올리에(Denis Hollier)는 바타유 연구의 권위자로, 갈리마르 출판사의 『조르주 바타유 전집』(전 12권, 1970-1988) 책임 편집자이기도 했다. 제목에선 건축 전공자들을 위한 이론서로 보이지만 이 책은 철학서이자 문학비평서로 보는 게 더 옳다. 프랑스어판 제목을 직역하면 ‘콩코르드 광장의 점령’인데, 콩코르드 광장은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비롯해 수많은 인물들의 참수가 행해진 역사적 현장으로, 훗날 ‘화합’ 혹은 ‘일치’라는 뜻의 ‘콩코르드(concorde)’라는 역설적인 이름이 붙여졌다. 따라서 ‘콩코르드 광장의 점령’은 바타유의 상상력을 통해 지정된, 파리의 어떤 중요한 장소, 즉 견고한 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했던 장소를 지시한다. 하지만 이런 배경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 어려워, 한국어판에서는 다가가기 쉽고 책 내용을 잘 포착하고 있는 영문판 제목 ‘건축에 반대하여(Against Architecture)’를 참고해 ‘반건축’을 제목으로 삼았다. ‘반건축’은 바타유의 사상과 글쓰기의 지향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며, 저자가 바타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함축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낭비와 건축 — 도살장과 박물관 가장 먼저 나오는 서문 「인생의 일요일(Les dimanches de la vie)」은 1974년 초판에는 없었고, 1989년 영문판의 출간을 위해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s)’이라는 제목으로 추가된 글이다. 우리가 저본으로 삼은 1993년 프랑스어판 재판시 ‘미국판 서문’이라는 말과 함께 책 끝에 더해 졌고, 한국어판에서는 원문을 번역해 책 앞쪽에 수록했다. 여기서 ‘인생의 일요일’, ‘피의 일요일’이란, 바타유가 초현실주의 잡지 『도퀴망(Documents)』의 한 섹션인 「비평 사전」에 건축과 관련해 쓴 ‘도살장(Abattoir)’과 ‘박물관(Musee)’ 항목과 연관된다. 근대 파리의 도시 계획이 가져온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도시 속의 기피 시설이 문화공간으로 바뀌는 현상이었는데, 이십세기 말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에 의해 라 빌레트 도살장이 공원과 박물관으로 개조되는 프로젝트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현상과 바타유가 쓴 사전 항목에서 올리에는 건축과 낭비(depense)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발견한다. 도살장과 박물관이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시설은 종교와 예술이라는 독립된 영역을 나타내는 건축 형식이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으며 삶의 양면을 비춰 준다. 올리에는 도살장의 희생제의적 성격(종교)과 사람들이 일요일에 박물관을 관람하러 간다는 사실(문화)을 상기시키면서 양자를 안식일 또는 일요일의 리듬과 연결한다. 그들은 박물관의 아름다움을 통해 도살장의 전유할 수 없는 추함으로부터 도피한다. 바타유는 이렇게 쓴다. “박물관은 대도시의 허파와 같다. 군중들은 일요일마다 피처럼 박물관으로 흘러들면서, 순화되고 생기발랄하게 다시 살아난다.” 루브르박물관 역시 왕의 처형에 뒤이은 공포정치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근대 박물관의 기원은 단두대의 피와 이어진다. “도살장이 지각되지 않는다면 루나 파크는 존재할 수 없다”는 올리에의 말처럼 우리는 건축 이면의 상실과 축제, 죽음과 낙원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 현실 질서에 복무하는 건축은 이성의 지배, 노동의 생산, 계획과 비축, 계산과 유용성을 상징한다. 반면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하며 무의미한 행위로 간주되는 낭비는 배척해야 할 부정적 습속이다. 하지만 오히려 바타유는 낭비에 주목하며 그를 옹호한다. 낭비는 욕망의 해방을 의미하고 예술 행위와도 무관하지 않다. 나아가 인간을 사물화하는 자본주의적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탈주이다. 모든 낭비를 적대시하고 자본의 합리성과 효율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그보다 더한 돌이킬 수 없는 자기 파괴로 질주하는 문명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반건축적 사상의 기원 — 대성당과 신학총서 본문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이 반건축이라는 관점에서 바타유의 사상을 논하고 있다면, 후반은 언어와 건축의 상동성, 바타유의 이질학적 글쓰기 즉 문학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비평에 할애되어 있다. 첫번째 장인 「헤겔적 구조물」에서는, 바타유의 위반의 사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헤겔이 상징적 예술로서 특권을 부여한 건축 형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냐하면 건축(architecture) 또는 건축적 구조를 지닌 무엇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그 최초의 시작인 아르케(arche, 시작, 근원, 기반, 원리, 제일)를 알아야 제대로 매듭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헤겔은 바벨탑을 상징적이고 독자적인 건축의 최초 형태로 보았다. 다시 말해 속이 비어 있는 집이나 신전 같은 수단으로서의 건축과는 차별되는, 속이 가득 찬 예술로서의 건축이다. 이후에 ‘남근적 기둥인 오벨리스크 따위의 건축과 조각 사이의 매개적인 건축물’이 생겨나고, 그 다음에 인도와 이집트의 지하건축물, 피라미드 같은 죽은 자들을 위한 거처, 실용적인 건축물과 함께 ‘독자적인 건축에서 고전적인 건축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지게 된다. 두번째 장 「건축적 은유」에서는 바타유의 반건축적 사상의 근원을 추적해 간다. 올리에는 바타유가 가장 처음 발표한 글인 1918년 소책자로 발행된 『랭스의 노트르담 대성당(Notre-Dame de Rheims)』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전문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헤겔의 건축관을 모른 채 쓴 이 글에서 바타유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프랑스의 상징이자 모성과 순결, 신앙과 안전의 상징으로 상정하고,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한 처참한 파괴를 안타까워하며 복원을 촉구한다. 대성당의 ‘부정에 대한 부정’으로서 지양(Aufhebung)과 정반합의 도식을 취하고 있는 이 글은 건축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찬양이라는 점에서 친(親)건축적이다. 젊은 바타유가 쓴 생애 최초의 글은 ‘건축에 의해 상징되고 지지되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체계’의 소산이었으며, 그것의 무의식적 추종이었다. 긴 침묵 끝에 바타유는 이 최초의 자기 글을 부정하는 글쓰기를 재개한다. 이후 그의 작업 전체는 그 텍스트를 부인하고 다시 쓰는 것이 되었다. 건축적 구조를 흐트러뜨리기 위한 바타유의 글쓰기는, 감화시키고 교화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 도발하는 반건축적 행위였다. 1929년과 1930년에 걸쳐 바타유는 『도퀴망』에 동료들과 함께 「비평 사전」을 만들었다. 그는 사전에서 말의 의미가 아니라 ‘작용’에 주목한다. 미완성으로 끝난 이 사전편찬의 기획에서 바타유는 열네 개의 항목을 집필하는데 그 첫 항목을 ‘건축(Architecture)’에 할애한다. 여기서 바타유는 건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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