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소란하지 않아도
가만히 마음에 원을 그리는
한낮의 미술관 기행
여행을 꿈꾼다는 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눈을 찾는다는 것
프루스트는 말했다.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는 새로운 풍경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찾고 발견하는 눈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느 때보다 여행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던 지난 시간이었다. 어디론가 떠나지 못하고 매일 반복되는 생활은 일상의 무거움을 더 크게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여행은 이전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꼭 새로운 풍경을 찾아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에서도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을 찾는 ‘눈’이 필요하다.
비로소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예술 여행 기획자 강정모가 제안하는
새로운 미술 여행의 지도
이 책은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상세한 미술 작품 해석만 가득 담긴 전문 미술서도 아니다. 《한낮의 미술관》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하며 ‘무엇이 아름답고 어떠한 삶이 가치 있는지’ 의미를 찾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여행의 지도와 다름없다.
그 지도에는 여행의 신선한 기쁨, 우리가 사랑하는 미술 작품의 위대함도 담겨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결같이 이 길을 따라 걸어온 저자 강정모의 생생한 경험과 감상이 함께 버무려져, 저자의 예술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에 깊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를 통해 예술이 주는 힘과 다채로운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비로소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차분한 빛, 고요한 걸음 속에
예술가들을 만나는 한낮의 시간
그들이 전하는 생생한 삶의 감각과 용기
《한낮의 미술관》은 지금은 위대한 작품들로 높게 평가받는 예술가들이 생전에는 자신만의 아픔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했던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바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이 이러한 믿음을 예술품으로 증명한 삶을 가만히 되짚어보는 여정은 불안한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생생한 삶의 감각과 용기를 전해줄 것이다.
[의도적인 미완을 통해 완성으로 나아간 예술가, 미켈란젤로]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예술가이자 거장으로 평가받는 미켈란젤로. 《한낮의 미술관》에서 만난 그의 작품 중 하나는 ‘론다니니 피에타’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나 ‘피에타상’과는 조금 다르게 미완성된 상태로 남아있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조각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유도 있지만, 그는 활동 후반기로 갈수록 작품을 의도적으로 미완으로 두거나 대상의 일부를 생략하는 ‘논 피니토(non finito)’ 방식을 채택하여 작업했다.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미적 기준에서 바라본다면 이 작품은 작품성을 인정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완벽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의 대표작들에서는 극도의 정교함과 섬세함, 생생함이 돋보였음에도 론다니니 피에타에서는 현대 미술의 추상성까지 느껴질 정도로 과감한 생략이 돋보인다. 하지만 그는 론다니니 피에타의 미완인 상태 그 자체를 아름답다고 보았다. 예술품의 완성은 완벽한 형상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진리에서 비롯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는 미완성된 여백에 투영된 보는 이들의 시선을, 그에 따라 탄생하는 다채로운 의미를 작품의 진정한 완성으로 정의했다. 론다니니 피에타는 관람객들 각자에게 모두 다른 의미로 새겨지고 기억된다. 미켈란젤로는 이미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창작한 자신의 지난 행보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의 기존 가치까지 재정의하며 결국 자신만의 혁신과 창조를 이뤄냈다.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삶의 진실한 얼굴을 담은 화가, 수잔 발라동]
이번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만날 수 있는 화가 수잔 발라동의 삶을 살펴보자. 그녀는 본래 르누아르, 드가, 로트레크와 같은 화가들의 화폭에 담기던 생계형 모델이었다. 평생 가난했고, 제대로 된 교육도 받은 적 없던 그녀는 집세가 싼 몽마르트르에 정착하면서 화가들의 모델로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많은 화가들의 뮤즈로서 그녀는 청초한 소녀로, 또 농염한 여인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단순히 그들의 피사체가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발라동은 어깨너머로 화가들의 그림을 보며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발라동은 겨우 열여덟 살에 사생아를 낳게 되었다. 이 일로 그녀는 르누아르의 화실에서도 쫓겨나게 되면서 그녀의 유일한 꿈도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의 재능을 유일하게 알아봐 준 이는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였다. 백작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선천적인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던 로트레크. 평생 열등감과 상처로 가득 찼던 로트레크는 주변의 상처 입은 영혼들을 바라보았고, 그는 몽마르트르에서 가장 낮고 어두운 삶을 사는 이들을 그리던 화가였다. 그런 로트레크의 시선이 수잔 발라동에게도 향했다. 로트레크는 그림을 그리는 데 절박했던 수잔 발라동이 화가가 되는 길을 전폭 지지하며 함께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수잔 발라동은 비로소 자신의 가능성을 피워내며 화가로 거듭나게 되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로트레크가 붙여준 새로운 이름 ‘수잔 발라동’으로 살아간다.
그녀가 남긴 수많은 자화상에는 남성 작가들의 그림에 담긴 대상화된 이미지의 뮤즈가 아니라 한 아이를 키우며 삶을 이어 나가는 자신의 고단함과 생에 대한 의지, 꺼지지 않는 희망의 얼굴이 오롯이 담겨있다. 수잔 발라동의 그림에서 우리는 자기 삶을 진실하게 직면하는 그녀의 시선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