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예술은 없다!
TV 뉴스, 술잔을 나누었던 친구의 한 마디, 심지어는 우리 집 쓰레기통까지 심상치 않다.
식당에 걸린 싸구려 그림에도 피가 돌고 예측불허의 바람이 분다.
우리가 간과하는 동안, 누군가는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본 투 킬> 시나리오를 썼으며, 연극, 방송, 소설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전방위 영화예술인 이무영 감독의 열정적인 조언이 챕터마다 가득하다. 가득하지만 알기 쉽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은 물론, 영화 스크린 뒤편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독자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창작 안내서.
1. 시나리오의 영감 - 소재와 주제
“나는 이야기 도둑질의 선수다. KBS 아나운서 출신 선배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전두환 정권의 방송검열을 소재로 소설 <각하는 로맨티스트>(2013년)를 썼다. 산후우울증으로 빚어진 유아 살해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은 시나리오 <겨울 방랑자>(미발표) 역시 장물이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훔쳐야 한다. 술자리 등에서 되도록이면 떠들지 말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래야 이야기를 도둑질당하지 않고, 역으로 훔칠 수 있다.“ -P.18
“주제라는 옷에 몸을 끼워 맞추듯 스토리라인을 억지로 생각해 쑤셔 넣는 방식으로 시나리오
를 쓰는 건 자학이며 고문이다. 훌륭한 시나리오 작업은 이와 반대로 진행돼야 한다. 먼저
삼빡한 아이러니가 동반된 얘깃거리에서 시작, 점차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을 형성해나가고, 궁극적으로 그 위에 자연스럽게 주제의식이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 -P.24
1장에서부터 귀기울어야 한다. 저자는 영감의 원천에 관해 몇 마디 하며, 예술가의 생존 기술을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2. 영화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주인공, 환경, 사건, 관계”
영화적 아이디어와 작품의 에너지를 결정하는 네 가지 요소이다. 자신이 집필할 시나리오의 영감을 얻었다면, 거기에 취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소중한 아이디어를 체계화하고, 드라마의 지평에 올려놓아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나 그가 놓인 환경, 그와 관계를 맺는 주요 인물, 또는 기폭제가 되는 사건 등이 떠올랐다면, 이제 작가는 그 아이디어를 점차 확장시키며 드라마의 틀을 만들어가야 한다. -p.39
아이디어를 하나둘씩 쌓다 보면 그 위에 작가가 담고 싶은 생각이 무엇인지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초반에 별 콘셉트 없이 그저 재미있는 아이디어 상태 정도에 머문다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어차피 아이디어가 확장되면서 작가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스며들기 마련이다.
시나리오는 항상 작가 꼴대로 나오게끔 돼있으니까 말이다. -pp.42-43
3. 스토리텔링의 비법
<밀양>, <마더>, <복수는 나의 것>
이무영 감독은 걸출한 한국영화 세 편을 주축으로 하여 ‘시나리오 창작론’을 펼친다. 다양한 사례를 거론하기는 하지만, 시나리오 창작의 지론을 대중 앞에 풀어놓고자 하는 ‘작가 이무영’ 의 성에 차는 영화는 이 세 편이 대표적인 듯하다. 이무영 감독의 영화 분석을 따라가며, ‘좋은 서사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하여 함께 고민해 보자. 저자는 기존 작품을 예로 들며 책을 이끌어가면서도, 스토리텔링에 대한 보편적 언급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세상 그 어떤 예술형식보다 오래 존재한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아마 언어가 없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손짓발짓으로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흥미로운 얘깃거리에 매료된다. 친구나 가족 간에 매우 슬프거나, 유쾌하거나, 무서운 얘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둘이 모여 그곳에 없는 제3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을 때도 스토리텔링의 형식을 취한다 -p.46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지금까지 연극과 영화, TV드라마 등에서 쓰이는 스토리텔링의 6가지 요소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1. 주인공이 있다. (인물)
2, 그는 무언가를 원한다. (목표)
3. 그래서 그는 그걸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행동)
4. 하지만 그 노력은 장애물, 또는 방해로 위기를 맞는다. (대립과 마찰)
5. 그는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클라이맥스)
6. 성공이든 실패든, 그는 결말에 도달한다. (결말)
-p.47
4.영화 속 인물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갈등 구조를 그대로 체화한다(재현한다). 이들은 백 퍼센트 선하지도 완전히 악하지도 않으며, 선의로 행한 일이 최악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운명 앞에서 무력한 인간은 우리 모두가 그렇듯 주어진 삶의 조건들로부터 출발하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고자 고군분투하나, 의지를 관철시키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중첩된 난관 가운데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다름 아닌 생의 의지이다.
이 책의 독자이자 독립된 시나리오 작가인 여러분은 등장인물에게 입체적인 서사를 부여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만의 감정으로 희로애락의 순간을 마주한다. 어떤 이는 아내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만, 어떤 이는 쾌재를 부른다. 크나큰 행운을 맞이할 때 드러나는 감정도 각기 다
다르다. 감정만큼이나, 삶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한 인간을 잘 말해주는 척도가 된다. 어떤 특별한 일이 발생할 때 개개인이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각자의 선택과 행동이 달라진다. -p.72
‘관객 공감’은 주요 캐릭터가 관객들이 익숙해하는 감정, 즉 사랑, 기쁨, 행복, 불행, 미움, 질투, 공포, 모욕감 등을 느낄 때 이뤄진다. 이런 인간의 감정들은 범우주적이며 영원하다. -p.75
5.시나리오의 구성 - 플롯
‘플롯’ 과 ‘캐릭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플롯’은 이야기의 구조를 말하며, ‘캐릭터’는 주인공의 인격과 성향을 의미한다. 섬세한 캐릭터 설정은 플롯의 재미를 넘어서기도 하며, 잘 만든 캐릭터 하나가 새로운 플롯을 생성하기도 한다. 진정한 시나리오 작가는 플롯과 캐릭터 사이를 넘나들며 이야기의 흐름 -‘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려내야 한다. 플롯의 의미는 ‘스토리’와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날 때에 비로소 온전해진다.
잘 쓴 시나리오라면, 아무리 플롯을 어수선하게 흐트러 놓아도 영화 마지막 즈음에 관객은 자신들이 본 작품의 스토리라인과 그 안에 담긴 뜻을 명확히 깨우치게 된다. -p.93
각기 처한 상황에 대한 주인공들의 반응을 통해 관객은 그들의 정서적 상태를 이해하며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플롯을 짤 때 스토리라인만을 구축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각 인물의 감성을 드라마타이즈해내는 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p.106
6. 씬과 대사 쓰기
씬과 대사는 시나리오의 디테일이다!
좋은 시나리오라면 씬과 캐릭터, 씬과 플롯, 씬과 스토리 라인, 그리고 각 씬 별 대사가 완벽하게 상응해야 한다. 저자는 ‘씬을 건축한다’ 는 표현을 쓴다. 씬 하나하나가 벽돌에 비견될 만큼, 모든 세부 표현이 다 중요한 장르가 영화이다. 각각의 씬에 담기는 정보, 씬 목표, 맺고 끊음 등 모든 요소가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등장인물들의 대사 역시도, 씬과 플롯의 맥락으로부터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 시나리오는 ‘정교한 거짓말’ 이다. 당연히 그 거짓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