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가짜) 영매사’ 구시비와
솔직털털 미유키가 안내하는
황홀한 퇴마 미스터리의 세계
‘이 시대 최고의 (가짜) 영매사’ 구시비와
언제나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는 조수 미유키가 안내하는
황홀한 퇴마 미스터리의 세계
어두운 밤, 아무도 없는 폐건물에 기분 나쁜 소리가 울린다. 탁, 탁… 귀신이라도 출몰할 것 같은 으슬으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면 언제나 그가 등장한다. 위아래 검은 상복을 차려입고 금장식된 자팡이를 짚으며 요란하게 등장하는 그는 바로, 구시비 주조. 그는 영매사다. 영혼을 볼 수 있고 영혼과 소통도 할 수 있지만 퇴마 능력은 없는 ‘가짜 영매사’. 비록 퇴마는 못 해도 번뜩이는 통찰력과 정확한 추리력, 그리고 ‘간곡한 부탁’이라는 필살기를 활용해 그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그들이 편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박령이 되어버린 영혼들의 이야기가 구시비의 마음을 울려서…는 아니고, 그의 조수 미유키의 등쌀에 못 이기기 때문이다.
사실 구시비는 모든 대충대충 처리하고 귀찮은 일은 질색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의 소속사에서 붙인 별칭 ‘이 시대 최고의 영매사’를 촌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영혼들이 귀찮게 굴면 그 별칭을 적극 활용하여 (“마음만 먹으면 너 정도는 촛불을 훅 불어 끄듯이 소멸시킬 수 있어. 이래 봬도 난 이 시대 최고의 영매사니까.”) 얼렁뚱땅 퇴마를 하려 드는 표리부동한 면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조수 미유키는 “애초에 선생님은 그럴 능력도 없으시잖아요.” 같은 날카로운 돌직구를 던져 결국 구시비가 영혼들의 문제를 돕고 그들이 무사히 떠날 수 있도록 한다. 혹시라도 구시비가 자신의 능력을 악용해 사기나 치는 비열한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싶은 애정 어린 마음에서다.
부탁을 들어주면 즉시 이승을 떠나겠다는 영혼들의 확답을 받은 뒤에야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구시비. 그러나 순리를 어기고 이승에 남아 있는 탓인지 영혼들의 기억은 왜곡되고 불완전해서, 어떤 때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구시비는 자신의 추리력과 통찰력을 이용해 영혼들의 이야기에 나름대로 빈칸을 채워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그런데… 이것도 퇴마라고 할 수 있을까…?
미련해 보이는 고민을 안고 지박령이 된 영혼들
미스터리 초심자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주는 네 편의 퇴마 미스터리
흔히 ‘퇴마’하면 공포스러운 분위기, 인간의 몸을 점령한 악령과 퇴마사의 힘의 대결, 그리고 길고 지난한 구마 의식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가짜 영매사』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 구시비가 퇴마를 못 하는 가짜 영매사인 탓도 있지만 이승에 남은 영혼들 역시, 이승에서의 일들을 해결하고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은 절박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어찌 보면 사소하고 또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성실하지만 우유부단하고 일머리가 없는 중년 남성 영혼. 그는 사소한 실수 하나로 꼬투리 잡혀 오래 다니던 회사에서 잘렸다. 그리고 그날, 한 여성이 떨어트린 지갑을 주워 돌려주려다 폐건물에서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그가 아직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여성의 지갑을 돌려주기 위해서라는데…? (「성실한 남자」)
저승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약혼자를 보고 싶어 약혼자의 원룸에서 그를 기다리는 소녀도 있다. 생전에 약혼자의 집을 찾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려 사망한 그녀는, 자신이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약혼자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그가 오든 오지 않든 떠나겠다고 구시비와 약속한다. 과연 그는 자신의 약혼자를 만나러 올까?(「첫사랑」)
불의의 사고로 반신장애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은 형을 만나기 위해 매일 음산한 쓰레기 산을 오르는 동생과(「자랑스러운 나의 형」), ‘악령이 있는 저택’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괴로움에 신음하는 영혼들도 있다(「엉겨 붙은 그들」). 여기서 만난 영혼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을 해코지하는 악한 영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약간은 어리숙한 모습이다. “영혼은 한때 인간이었기에 인생의 연장선상에 놓인 존재”라는 구시비의 말을 듣고 보면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된다.
그리고 이런 네 편의 연작소설을 마치고 나면, 작가가 숨겨둔 선물 같은 「에필로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또 하나의 짧은 소설 같은 「에필로그」까지 모두 읽은 독자라면 구시비와 미유키의 관계에 대해, 그들이 퇴마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