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제2부
주
해설: 가장 개인적인, 하지만 사회적인
판본 소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연보
젊은 베르터의 고통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소설
232p

서울대 독문과 강사 정현규가 번역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외래어 표기 규정대로, 베르테르를 '베르터'라고 표기했다. 일제 시대 때 우리말로 처음 번역된 이후로 이 작품은 수십여 종의 번역본이 있었다. 그동안 이 작품의 제목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관행처럼 정착되었다. 본 책에서는 관행처럼 사용해 온 이러한 역어들을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정본에 부합하도록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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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작품이다. 외래어 표기 규정대로, ‘베르터’라고 했음. 번역자는 정현규 서울대 독문과 강사.이 작품은 괴테의 체험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만큼 작가와 작품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적 자의식이 활짝 만개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인공 베르터의 자살로 끝나는 비극적 결말은 괴테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1772년 봄 괴테는 베츨라의 고등 법원에서 견습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법관인 부프의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곧 부프의 둘째 딸인 샤를로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샤를로테는 이미 외교관인 케스트너와 약혼한 사이였다. 괴테는 걷잡을 수 없는 정념에 사로잡혀 괴로워했고, 결국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두 사람에게 편지를 남기고 베츨라를 떠났다. 그런데 얼마 뒤 역시 베츨라에서 브라운슈바이크 공사의 비서로 있던 예루살렘의 자살 소식을 들은 괴테는 큰 충격에 사로잡혔다. 예루살렘은 괴테와 라이프치히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친구의 부인을 사랑하다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괴테는 자신의 체험과 예루살렘의 죽음을 엮어 『젊은 베르터의 고통』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연관된 수많은 예술 작품이 쏟아져 나왔고, 독일에서만 무려 140종이 넘는 변종이 출현했다. 나폴레옹이 이 작품을 일곱 번이이나 읽었고, 괴테를 만났을 때 베르터를 먼저 화제로 올렸다는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화다. 가히 베르터 열병이라 할 정도로 이 작품은 당시 유럽인들의 삶을 지배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많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본 번역은 에리히 트룬츠가 편집하고, 트룬츠와 베노 폰 비제가 해제를 쓴 14권짜리 함부르크 판본의 제6권을 대본으로 했다.



꿈꾸는카프카
4.0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의 우울함. 당대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뇌를 느낄 수 있다
Rapture
4.5
감수성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다 겨우겨우 뭍을 발견하고 숨을 돌린다. 아마 젊은 날의 괴테, 혹은 베르터가 바라 본 세상은 나 같은 범인이 바라 본 세상과는 소리의 음계, 색의 채도 수준에서부터 달랐음이 틀림 없었을 것이다. 혹자는 베르터의 생각과 행동을 독선적이고 유난스럽다 느껴 오히려 주변인인 롯테나 알베르트의 입장에 공감하여 베르터를 부정적으로 보고 더 나아가 이 소설 자체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로지, 그리고 온전히 베르터의 입장에서 그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기쁨, 슬픔, 분노, 질투 등의 모든 인간적 감정들을 가슴에 창을 내고 선보이듯 적나라하게 기술한 작품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르터는 괴테이자 괴테가 아니다. 이 책이 자살을 하나의 당연한 소재처럼 활용하는 일본의 고전 문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은, 일본의 작가들 또한 괴테와 베르터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작품 속 주인공을 스스로와 동일시하면서도 그 주인공과 동일한 우울감과 고독감을 평생 극복하지 못하고 같은 길을 택하는 경우가 파다하다면, 괴테는 오히려 <젊은 베르터의 고통>이라는 작품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들을 토해냄으로써 세상을 더욱 더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괴테는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는 베르터라는 인물보다는 그의 말로를 담담하게 전달하는 편집자에 빙의함으로써 스스로와 베르터라는 인물 사이에 거리를 두고, 독자는 마치 스스로가 빌헬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잊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이 사랑에 좌절한 청년들의 자살을 종용하는 문제작이 아닌, 당시 사회에 염증을 느끼고 사랑마저 거머쥐지 못한 그 누구보다도 감수성이 풍부했던 한 청년의 지극히 건강한 성장통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나는 환희를 느낀다. 예로부터 서양에서 운명적 사랑을 수많은 아름답고 감상주의적인 어휘들로 노래한 작품들은 수없이 존재해왔지만, 유독 <젊은 베르터의 고통>만이 내게 제대로 와닿은 까닭은 베르터의 감정과 고뇌의 과정을 마치 스스로를 해부하듯 적나라하고 자세하게 기술한 덕분도 있겠지만 당시 사회의 분위기나 알베르트 같은 주인공과 대립되는 존재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좌절하고, 그들을 설득시키려 하는 베르터의 본능적이고 처절한 입장이 분명 나와는 연이 없는 깊이의 감정과 이야기임에도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없이 사랑을 노래하다 비극적으로 끝나버리는 서양의 고전적인 이야기들이 자칫 규칙과 전통 등에 얽매인 동양인들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감상주의적으로 느껴져 완전히 딴 세상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던 상황 속에서 이 작품은 특유의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감정들의 묘사를 통해 '대체 어떤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저토록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기쁨과 고통이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감정의 격류를 유발하고 삶을 포기하게끔 만들 수 있는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궁금증을 느끼게 되는 과정 속에서 괴테를 향한 일종의 부러움마저 슬쩍 고개를 내민다. 1700년대에 쓰여진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린다는 건 정말이지 일상이라 부르는 것과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경험이었다.
이영광
5.0
'제발 부탁인데, 이 이야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 줘' 어떤 이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고통과 부조리로 다가와 신, 아버지를 부르짖으며 침묵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왜 침묵하겠는가) 그러나 거리낌 없고 자유로운 순진함이여 이 방법밖엔 없던 것인가 아니다 알베르트 처럼 이해 불이해의 대상으로 그를 여기지 말자 그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고 슬퍼해본다
동우
3.5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슬픔이라기보다는 고통
태형
인간 정신의 한 극단을 보여주는 감성의 순례자 베르테르. 그에게 눈물어린 감사를 보낸다.
Didi
4.5
감정과 이성 , 현실과 이상 사이 끝없는 갈등
박웅기
4.0
이성주의가 우세하던 시절, 괴테의 감성주의가 날라들다. 아, 청춘이여.
전병준
4.5
" '오늘도 그녀를 만날거야!' 모든 것이.이 한 가지 소망에 묶여있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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