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부활한 정통 세계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을유문화사가 새로운 세계문학전집을 내놓았다. 올해로 창립 63주년을 맞은 을유문화사가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기 시작한 지 50년 만이다. 1959년에 1권 『젊은 사자들』로부터 시작하여 1975년 100권 『독일민담설화집』을 끝으로 1백 권으로 완간된 을유세계문학전집은 다수의 출판상을 수상하며 한국 출판 역사의 이정표가 되었다. 새로운 을유세계문학전집은 기존의 을유세계문학전집에서 재수록한 것은 한 권도 없고 목록을 모두 새롭게 선정하고 완전히 새로 번역한 것이다. 매월 두세 권씩 출간하며, 올해 말까지 열여섯 권, 2020년까지 3백 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을유세계문학전집의 제6권인 『시인의 죽음』은 신중국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이자 우리에게는 『사람아 아, 사람아』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다이허우잉의 처녀작으로, 1960년대 중국 문화 대혁명의 한복판을 관통한 작가 자신의 뼈아픈 체험이 녹아 있다. 격랑의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당시 지식인들이 치러야 했던 희생과 고뇌, 혁명의 상처, 정치적 광기 등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상흔 문학에 속한다. 이 작품은 반체제적 내용으로 인해 출간되기까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는데, 다이허우잉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사람아 아, 사람아』, 『하늘의 발자국 소리』를 잇달아 완성함으로써 격변기 중국 지식인의 운명을 그린 3부작을 완성했다.
이 책의 번역은 1999년 안후이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다이허우잉 문집(戴厚英文集)』에 수록된 것을 저본으로 했다. 안후이문예출판사 판은 다이허우잉의 막역한 친구이자 저명한 중문학 연구자인 우중졔(吳中杰)가 책임 편집한 것으로, 지금까지 나온 판본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문화 대혁명의 뒤안길을 담은, 중국 현대 휴머니즘 문학의 대표작
『시인의 죽음』은 다이허우잉과 저명한 시인 원졔(聞捷) 간의 비극적인 사랑이 바탕이 되었다. 이 작품에는 작가 자신의 개인사가 진하게 투영되어 있다. 일찍부터 당과 마오쩌둥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가지고 시대의 나팔수 노릇을 담당한 다이허우잉은 문화 대혁명이 일어났을 때는 상하이작가협회 혁명지도소조에 서열 4위로 참여했다. 당과 혁명에 대한 그녀의 충성은 가히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다이허우잉은 일반 당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했다. 우파로 몰린 가족들과 그녀 자신이 보여 준 우경 착오가 이유였다. 게다가 다이허우잉은 자신의 존엄과 개성을 중시했다. 그런 모습은 그녀를 늘 개인주의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다이허우잉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동 개조’ 처분을 받은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이허우잉은 혁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의식적으로 저버리지는 않았다. 자기 안의 모순과 불안은 그저 자신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원졔와의 연애 사건은 그러한 신뢰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15세 때 혁명에 투신한 원졔는 16세 때 동료들과 함께 국민당에 체포되었다가 공산당의 비밀스런 지도에 따라 전향서를 쓰고 풀려났다. 훗날 이 일은 원졔를 국민당 첩자로 의심받게 했고, 두고두고 그를 괴롭혔다. 다이허우잉은 1968년 원졔가 격리 심사를 받을 때 심사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이때 다이허우잉은 원졔의 인품과 문학에 남다른 감명을 받았고, 혁명의 채찍에 휘둘려 그의 가족이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점차 그를 동정하게 되었다. 후에 5.7 간부 학교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점차 가까워져 마침내 당에 결혼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에서는 두 사람의 사랑을 ‘계급투쟁의 새로운 동향’으로 파악했고, 이에 호응한 노동자 선전대는 혁명을 타락시켰다는 이유로 정치적 비판 대회까지 열었다. 결국 원졔는 분에 이기지 못해 자살했고, 그 충격으로 다이허우잉마저 몸져누웠다. 나중에 문화 대혁명을 주도한 극좌 4인방 내부의 파벌 싸움에 두 사람의 연애 사건이 교묘하게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이허우잉은 더욱 경악했다. 이는 다이허우잉으로 하여금 혁명과 인간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게 했다.
다이허우잉은 이때의 상처를 『시인의 죽음』으로 형상화했다. 주인공인 샹난은 당과 혁명에 대한 낙관적 신뢰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반혁명분자로 몰려 고통스런 대가를 치른 다이허우잉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인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작가의 수기 정도로 여긴다면 오산이다. 여기에는 역사의 격랑을 통과한 지식인들의 운명과 고뇌가 샹난 외에도 여러 인물들 속에 분산 투사되어 있다.
감정과 의리를 중시하여 스스로 우경이 아닌지 자주 회의해야 했던 샹난, 정치적 야심으로 가득한 돤차오친, 순응적인 유뤄빙, 올곧은 지쉐화, 툭 하면 동료를 물어뜯는 펑원펑, 선량하지만 가까운 동료를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왕유이, 남편에게 반동으로 비판받고 이혼당하는 루원디, 순진한 혁명 열정을 간직한 샤오징과 유윈, 이와 아울러 수없이 자행된 탄핵과 광기와 자살. 이는 문화 대혁명을 관통한 지식인들의 생생한 역사적 자화상과도 같다.
혁명의 끝자락에서 다이허우잉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다이허우잉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 혁명일진대, 자신들의 혁명은 오히려 인간의 인간다움을 박탈하고 모든 것을 ‘계급성’으로 대체해 버렸다고 보았다. 혁명은 그 자신들의 목표인 인간을 궁극적으로 소외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이허우잉은 이념 이전에 인간성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 혁명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이러한 성찰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정치화’가 아닌 ‘정치의 인간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