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누가 페미니즘의 죽음을 두려워하랴 - 다시 ‘가치’의 문제로
글로벌 시대를 외치는 21세기에 이르렀음에도 한국사회는 한 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80년대 그 때 그 시절로 퇴행하고 있다는 기시감이 든다. 보수 세력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한국사회는 지난 과거 좌파 정부가 힘들게 성취했던 십년의 성과를 분명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수상한 시절을 맞이하면서 페미니즘 또한 죽었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린다. 여성가족부, 여성학과, 여성단체가 해체되거나 해체하자는 의견이 나와도 이해당사자를 제외하고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다면 페미니즘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이런 현상을 단지 반동적인 세월 탓, 보수적인 정권 탓, 젊은 세대의 탈정치적인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주마간산으로 보더라도 한 세대 동안 여성운동은 많은 일을 해왔다고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하지만 모든 가치는 화폐가치로 환원되고 모든 활동은 생산성의 회로에 포획된 시대에, 페미니즘은 어떤 ‘대안적’ 가치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저자는 현 신자유주의 시대를 돈의 포르노그래피가 만연한 폭력의 시대로 규정하고, 그 안에서의 인간은 타자를 삼켜야 하는 식인주체임에도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의 정치’에 비유한다.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정치라는 것은 폭력의 시대 공존의 가치가 결코 만만하지 않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은유다. 채식주의 뱀파이어는 스페인의 망명화가인 레메디오스 바로의 <채식주의 흡혈귀>라는 그림에서 가져온 것이다.
바로의 그림을 보면 퀭한 눈, 훌쭉한 뺨, 빈혈에 시달리면서도 허기를 채식으로 달래고 있는 뱀파이어들의 모습이 묘한 여유와 유머로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이 다름 아닌 폭력의 시대의 뱀파이어이며,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면서까지 결단을 내려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성찰하게 될 것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는 진정 타자와 공존할 수 있는가? 식인주체인 나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도 타자를 삼키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지금 이 폭력의 시대를 절망하기 보다는 유머와 환대로 타자와의 공존을 꿈꾸고 실천하도록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책의 특징>
1. 페미니스트이며 인문학자인 저자가 재야에 머물면서 쌓아온 통찰로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페미니즘 내부의 자기성찰을 제안하는 동시에 ‘채식주의자 뱀파이어’라는 은유로 공존의 가치를 제시한다.
2. 한국적인 상황, 즉 교육의 시장화, 프로젝트화 되는 몸, 모성의 제도화, 정상가족 해체와 다양한 가족의 등장,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에 이론을 접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사고의 지평을 열도록 제안한다.
3. 이 책은 저자가 하고픈 이야기를 위해 문학, 철학, 정신분석, 여성학 등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있지만,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대중문화를 텍스트로 첨가하여 이론서의 난해함을 벗어났으며 따라서 흥미로운 읽기가 가능한 책이다.
이 글의 1부에서는 자본, 국가, 인권, 교육, 가족, 모성, 육체들이 어떻게 폭력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서로 합심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모든 가치를 화폐가치 하나로 평정한 폭력적인 시대가 어떻게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관통하게 되었는가.
그것이 1부의 화두인 셈이다. 2부는 이런 폭력적인 시대에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가에 주목한다. 2부에서는 타자, 환대, 주름, 문학, 유머, 일상 등의 가치를 통해 공존의 시학을 찾는다. 사회가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주체의 존재 자체가 폭력으로부터 탄생하는 것이라면 인간은 궁극적으로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가 폭력에 세례를 받아야만 한 개인이 주체로 탄생하게 된다면 누가 과연 그런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런 딜레마에 빠져 있는 폭력적인 주체가 어떻게 타인과의 공존에 열릴 수 있는가. 자본, 국가, 인권, 학교, 가족, 모성, 육체, 주체. 이 모든 것들이 폭력의 시대와 맞물려 있고 그런 동심원의 가장 아래쪽이자 안쪽에 자리하고 있는 주체 또한 폭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면 말이다. 폭력적인 여러 장치들 뿐만 아니라 인간주체 또한 타자를 먹어치워야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식인주체다. 국가폭력 속에서 탄생하여 폭력을 그리워하는 가운데 식인주체로 탄생하는 인간이 어떻게 공존의 가능성을 찾아갈 수 있는가? 어떻게 자신을 볼모로 잡고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에게 환대를 베풀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