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혁신
한국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올해의 큐레이터상, 김복진미술이론상을 받은 큐레이터 겸 미술평론가 김종길의 첫 미술 평론집이 나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00년대 이후 현장에서 기획되고 전시된 미술작품/현장미술을 중심으로 한 ‘현대사’를 꼼꼼히 기록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책 제목 그대로, 민중미술 ‘이후’의 세계 ‘샤먼 리얼리즘’이다. 샤먼 리얼리즘은 화가 홍성담의 회화 세계에서 얻은 느낌을 개념화한 것이다.
샤먼/리얼리즘의 비밀은 ‘/’에 있다. 샤먼 리얼리즘이 비평적 사유의 사리라면 샤먼/리얼리즘은 예술과 행동에 대한 사유 혹은 실천 자체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두 개의 최병수론에서 최병수라는 예술가의 삶과 내면에서 샤먼적 속성과 행동가적 속성을 찾아내려 한다. 예술이 또는 예술가가 하나의 비평적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기에 차라리 예술 또는 예술가에게서 많은 속성들을 찾아내는 것이 비평가 고유의 책무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논리로는 샤먼과 행동주의가 양립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그것은 논리 이전에 실재하는 것이기에 저자는 샤먼과 리얼리즘 사이에 ‘/’를 그어 넣는다. 그래서 그것은 공존 가능한 것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으로서 포스트민중미술 이후의 샤먼/리얼리즘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술평론집인지, 현장 르뽀문학인지, 우리 현대사에 대한 길라잡이인지 잠깐 어리둥절해지는 것은 희한하게 유쾌한 독서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그렇다. 일단 제목의 목차를 훑어보는 것 자체가 이 책의 스케일과 고민 지점을 어렴풋이 짐작 가능케 한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독자는 분명 다른 책을 집어 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무릇 독서란 지적 혹은 정서적 사유를 한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 혹은 영역으로 유목을 하게 하는 것 아니었던가?
샤먼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혁신
한국평론가협회 신인평론상, 올해의 큐레이터상, 김복진미술이론상을 받은 큐레이터 겸 미술평론가 김종길의 첫 미술 평론집 『포스트민중미술 샤먼/리얼리즘』이 나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2000년대 이후 현장에서 기획되고 전시된 미술작품/현장미술을 중심으로 한 ‘현대사’를 꼼꼼히 기록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책 제목 그대로, 민중미술 ‘이후’의 세계 ‘샤먼 리얼리즘’이다. 샤먼 리얼리즘은 화가 홍성담의 회화 세계에서 얻은 느낌을 개념화한 것이다.
저자는 홍성담의 회화 세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의 아나키즘은 세계의 부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단으로 치닫는 계급적 자본주의와 생명의 가치를 무참히 짓밟는 전쟁기계들의 잔혹한 욕망, 그리고 종교와 종족, 민족의 이름으로 타종교 타민족을 약탈하는 야만성의 극복에 있다. 그의 회화는 그래서 그것들을 증거하는 욕망과 야만적 풍경을 떠나지 않으나 그렇다고 그곳으로 함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세계의 너머에서 오래된 동아시아와 만나기 때문이다. 오래된 동아시아 바로 그것이 그가, 그의 화화가 추구하는 미학적 원형이다.
_「공동체적 신명의 기억투쟁」에서
여기서 말하는 “동아시아 바로 그것”이 샤먼적 정서를 내포한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샤먼적 세계로의 비약이 내적 여정이 생략된 낭만적 도피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글에서 저자는, 현실 세계의 재현에 몰두해왔던 그간의 리얼리즘을 비판하면서 “리얼리즘을 삶의 예술로 되돌린 뒤 고삐를 풀어 현실의 아수라판에서 뛰어놀게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아수라판”이 전경의 배면에서 작동하는 후경의 세계이며 “후경은 전경의 이면에 펼쳐진 초현실과 비현실의 상징계이다.” “후경의 시간은 직선도, 회귀를 반복하는 나선형도 아니다. 하나의 후경에는 몇 개의 직선과 곡선과 나선형이 몽타주처럼 펼쳐진다.”
즉 현실계인 전경을 가능케 하는 후경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예술가-주체가 “샤먼”인 것이다. “샤먼들은 시간들의 틈새에서 삶의 진리를 엿보았다. 오직 그들만이 후경의 아수라를 볼 수 있었다. 후경은 카오스로 가득했으나 그 가득함에 코스모스(질서)가 있었다. 후경이 전경으로 잠시 건너올 때는, 후경의 힘이 전경으로 뻗칠 때는 샤먼들의 몸을 통해서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과 소름을 몰고 오는 노래와 접신의 공유 속으로 밀어넣는 흥얼거림이 그의 입에서 터진다. 후경의 리얼리즘은 샤먼의 입에서 비로소 형상화된다.”(이상 「리얼리즘은 전경과 후경에 의해서 완성된다」)
샤먼 리얼리즘은 리얼리즘의 혁신, 기왕의 리얼리즘에 다른 벡터를 새겨넣은 비평적 개념이다.
미술로 보는 현대사의 중간 기점 - 샤먼/리얼리즘
앞에서도 말했듯이 김종길의 샤먼 리얼리즘은 단순한 낭만적 도피가 낳은 비평적 개념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 연구의 결과물도 아니다. 그것은 시종일관 현장에서 체득한 비평적 사유의 사리에 해당된다. 저자가 의도했든 안 했든 저자가 다룬 현장은 우리의 현대사와 곧바로 연결된다. 저자는 「4월 혁명 50주년 아카이브전」을 통해 4월 혁명과 민주주의를, 홍성담의 회화를 통해 광주 5월 항쟁과 그것의 궁극적 해방에너지를, 「4?3미술제」를 통해서 4?3 항쟁과 국가폭력을, 대추리를, 강정을, 용산을, 콜트콜텍을 호출해낸다. 이러한 전시와 현장미술을 고집스럽게 통과해 온 저자의 중간 기착지(?)가 샤먼 리얼리즘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현장만 탐색해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해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자기 글의 도반으로 삼은 작가는 다음과 같다. 홍성담, 배인석, 최병수, 이윤엽, 김영글, 전진경, 성효숙. 그들에 대한 길고 혹은 짧은 비평을 통해 자신이 비평적 사유를 채워나가고 있다. 물론 이 중 많은 작가들이 현장미술 혹은 리얼리즘 미술과 깊이 관계하고 있지만, 저자의 눈은 그 작가들의 ‘후경’을 고래의 눈처럼 살피고 있다. 여기서 다시 샤먼 리얼리즘의 다른 층위인 샤먼/리얼리즘이 도출된다.
샤먼/리얼리즘의 비밀은 ‘/’에 있다. 샤먼 리얼리즘이 비평적 사유의 사리라면 샤먼/리얼리즘은 예술과 행동에 대한 사유 혹은 실천 자체를 함유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실린 두 개의 최병수론에서 최병수라는 예술가의 삶과 내면에서 샤먼적 속성과 행동가적 속성을 찾아내려 한다. 예술이 또는 예술가가 하나의 비평적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기에 차라리 예술 또는 예술가에게서 많은 속성들을 찾아내는 것이 비평가 고유의 책무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논리로는 샤먼과 행동주의가 양립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그것은 논리 이전에 실재하는 것이기에 저자는 샤먼과 리얼리즘 사이에 ‘/’를 그어 넣는다. 그래서 그것은 공존 가능한 것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의 결론으로서 포스트민중미술 이후의 샤먼/리얼리즘이 되는 것이다.
현장을 기반으로 한 미술과 시의 만남
어쩌면 현장이 그것을 가능케 했겠지만, 이 책의 특징 중 또다른 하나는 현장을 매개로 만난 미술과 시를 저자 자신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일단 이 책에서 동원된(?) 시인의 이름만 열거해 보면 이기형, 고은, (시인은 아니지만) 박경리와 조세희, 김준태, 김용택, 박영근, 백무산, 박노해, 류외향, 손세실리아, 황규관, 폴 엘뤼아르, 옥타비오 파스 등이다. 물론 이 시인들의 시가 책의 기본 뼈대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시적 사유와 형상미술적 사유가 어떻게 습합되는지 하나의 진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미술, 역사, 투쟁현장, 시 등등이 묘하게 뒤섞인 패치워크라 부를 만하다.
물론 여기서 다른 모든 것들은 우리의 현실에 복무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 나름의 성좌를 이루면서 현실을 비추기도 하고 현실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의 다양하고 어지러운 모습을 펼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