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하고 참담한 이야기
얼마나 비장하고 참담하겠는가. 목숨을 내놓겠다는 사람에게 무슨 충고가 필요하며 무슨 조언이 들리겠는가. 이 책을 기획하고 출간하려고 맘먹을 때도 많이 망설였다. 도대체 책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단 말인가. 그런 고민 와중에도 신문 방송은 연일 자살 소식을 전했다. 학교 폭력이 문제라는 둥, 왕따가 문제라는 둥,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 시스템이 문제라는 둥 분석도 해법도 백 가지 천 가지가 나왔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얘기까지.
무언가 해야 하지 않나
그러나 아무 것도 안하는 것보다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나. 그런 마음이 이 책을 집필하게 했다. 잘 나가던 만능 기획자이며 저술가 이성주는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노숙인이 됐고, 빌딩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처절하고도 외로운 고통 속에서 몸을 떨어야 했다. 그렇게 죽음과 이웃하며 3년을 들개처럼 떠돌았다. 그리고는 피를 토하듯 이 책을 썼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회가 아쉽다
세상을 버리려는 당신들에게 무엇이 보이겠는가. 술이나 담배라면 몰라도 책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래도 읽어보면 좋겠다. 아주 조금이라도….
절망의 끝에 다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당신은 부모인가? 교사인가? 친구인가? 당신 자식의, 당신 제자의, 당신 친구의 얘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 절망 끝에 다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다. 조언하려고 하지 말고,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얘기를 끝까지 들어보자. 그들에게는 따뜻한 표정으로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얘기를 들은 다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줄까
얘기를 다 들은 다음에는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무슨 얘기든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 얘기들을 이 책에 모아놓은 것이다. 자꾸만 터져 나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어서. 적어도 부모에게는, 교사에게는, 친구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
‘그는 미쳤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다. 미친 사회가 그를 죽인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자살 앞에서 앙토냉 아르토가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은 1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친 사회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 미친 사회에서 자살은 일상용어가 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책이 어떤 주의주장을 펼치는 것은 아니다. 자살 현상에 대해 점잖게 분석하고 평가하는 논문이 아니다. 다급하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의 선택이 최선인가? 확실한가?
저자는 자살도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한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원종우도 자살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선택은 단 하나의 선택일 뿐이고 다른 백만 가지 가능성을 최종적으로 버려야 하는 선택인 것이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는 게 인간이다. 수없이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자살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해버린다. 다시 일어나서 폼 나게 살아갈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선택이다. 그 선택이 정녕 최선인가. 확실한가.
이 책의 본심은
이 책은 죽으려면 쪽 팔리게 죽지 말고 럭셔리하게 죽으라고 반복해 말하고 있다. 럭셔리하게 죽기 위해서는 정말 잘 살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폼 나게 죽을 수 있다. 그 과정은 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게 인생이니까. 그러나 쪽 팔리게든 럭셔리하게든 죽으라는 것은 이 책의 본심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