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 영화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동시대에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시나리오 완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2004 한국시나리오선집'.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 사기꾼 창혁(박신양)과 김 선생(백윤식) 등이 한국은행에서 50억 원을 털기 위해 사기극을 벌이는 이야기로, 장르의 역사로부터 길어 올린 대중 영화의 정수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의 정사와 기록을 발굴하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제작된 극영화 가운데 우수한 시나리오를 선정하여 1983년부터 매년 ≪한국 시나리오 선집≫을 발간하고 있다. 2004년 한국시나리오 선집에는 총 10편의 시나리오가 선정되어, <귀여워>,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빈집>, <송환>, <아는 여자>, <알포인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인어공주>, <태극기 휘날리며>가 수록되었다. ≪한국 시나리오 선집≫은 2004년 한국 영화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동시대에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시나리오 완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이다.
장르의 공식은 상투가 아니라 전형이다. 그것은 오랜 기간 관객이 영화와 가장 쉽고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한 결과물이며, 만국 영화의 공통 언어이고, 쾌락의 최초 단위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치밀한 작전과 전략이 시나리오에서 펼쳐져야 하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을 단연 2004 시나리오 베스트 10에 꼽는 이유는 그래서다. 사기꾼 창혁(박신양)과 김 선생(백윤식) 등이 한국은행에서 50억 원을 털기 위해 사기극을 벌이는 이 영화 속엔 스토리의 정밀한 직조만으로도 얼마든지 관객의 혼을 빼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그것은 이 영화가 장르의 역사로부터 길어 올린 대중 영화의 정수들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의 재구성>은 한 편의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 장르로 손색없는 다층적이고도 통쾌한 이야기 구성과 반전의 장치들, 그리고 이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편집 미학으로 우뚝 선다.
최동훈 감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범죄의 재구성>은 장르를 불문하고 관객이 환영하는 현대 영화의 여러 장치들을 골고루 혼합시킨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한국은행 사기 사건이 벌어진 한 달 후에 다시 그 범죄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때 범죄의 재구성은 과거를 돌이키는 관련 인물들의 주관적 시점에 따라 펼쳐지는데,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에서 브라이언 싱어의 <유주얼 서스펙트>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선의 교란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진실과 거짓의 쾌감을 만들어내는 건 현대 영화의 숙련된 세공법 중 하나다. 최동훈은 배우 박신양으로 하여금 사기꾼 창혁과 그의 형 창호, 두 캐릭터를 동시에 연기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교란 장치를 만든다.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미스터리가 중첩되고, 각각의 미스터리들은 고전 범죄 영화의 형식적 기교들을 활용한 연출의 덕을 입어 관객을 점점 더 몰입시킨다. (중략)
_<작품 해설>중에서
[저자 소개]
편찬위원(가나다 순)
유동훈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
이유진 (주)영화사 봄 프로듀서
이정국 영화감독
이지훈 ≪필름2.0≫ 편집장
황조윤 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