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는 쉽게 해묵은 농담으로 취급되곤 한다. 정글 같은 사회, 전쟁 같은 일상에 치이는 우리에게 이 책은 다시 한번 사랑을 믿게 한다. 사랑할 용기를 준다. (…)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내가 위로를 받았다. _홍승은(작가)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내가 위로를 받았다”_홍승은(작가)
편견과 우울 너머 빛나는 순간들에 대한 아주 사소한 기록
2006년,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자문을 했던 김비 작가의 인터뷰가 한 매체에 실렸다. 이룰 수 없는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그녀는 ‘사랑’이라고 답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 김비 작가는 박조건형 작가와 혼인신고를 했다.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은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드로잉 작가 박조건형 부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혼자의 삶에서 부부의 삶으로,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이란 이름이 익숙해지기까지 김비 박조건형 부부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았다. 책은 총 3부로 나눠져 있다. 1부에선 작가와 팬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영화 같은 러브 스토리와 결혼 이야기, 2부에선 편견과 우울로부터 싸워온 각자의 유년시절, 3부에선 가족에서 이웃으로 확장되는 두 사람의 세계를 전한다. 크고 거창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구호가 있을 때만 소환되어 각종 진영의 지지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닌, 아무 일 없이 둘이서 삶의 주체가 되어 잘 살고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부부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억지로 누군가와 관계 맺으려 하지도, 남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시간 위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올려둔다. 결혼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 함께 식사를 한 적 없는 가족, 아이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 등,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또 같이 써 내려가며 가족과 삶에 있어 가장 솔직한 이야기들을 전한다.
그 밖에도 10여 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해온 친구, 마을 카페의 대표님을 비롯한 이웃들, 독서모임이나 공동체 생활 실험 등을 함께하는 지인까지 책 속엔 부부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다정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삶이 사랑이라는 이름을 만나 둘이 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연대로까지 이어져 점점 커지고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글 같은 사회, 전쟁 같은 일상에 치이는
우리를 위한 사랑과 회복의 이야기
《슬플 땐 둘이서 양산을》은 연약한 두 사람이 서로의 위태로움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으며 함께 공존해 나가는 씩씩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호적정정으로 많은 것이 바뀌리라 생각했지만 결코 ‘형수님’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던 김비 작가도, 공장을 다니며 우울증 상담을 받던 중 ‘짝지의 칭찬’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박조건형 작가도 모두 서로가 있었기에 상상을 넘어선 삶에 닿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쉽게 해묵은 농담으로 취급되는 요즘, 이 부부가 보여주는 이야기들은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는 수많은 우리에게 위로를 전한다. 더불어 이 책을 통해 두 작가는 사소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나 상황 속에 녹아 있는 일상 속의 차별과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힘겨운 우울증의 심연을 오르내리는 신랑을 지켜보며 그의 말이나 마음을 짚어내거나 재단하지 않으려 하는 김비 작가의 모습은 각자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천천히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위로나 힐링의 메시지를 전하지는 않지만, 이 부부가 걸어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나에게 펼쳐진 지금 이 순간에 감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어제와 같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그 순간이 외롭고 허탈하게 느껴지진 않는가? 만약 이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다면, 이 책을 펼치길 권한다. 사랑, 이웃, 환대, 행복. 정글 같은 사회, 전쟁 같은 일상에 치여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단어들을 다시금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