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실 없이 진실을 알 수 없고 진실 없이 신뢰할 수 없다.
이 세 가지가 없으면 공유하는 현실을 가질 수 없으며,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와 모든 의미 있는 노력은 끝장나고 만다.” - 마리아 레사
★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마리아 레사의 회고록
★ 유네스코 세계언론자유상, 세계신문협회 자유의황금펜상, 국제언론인센터 나이트국제저널리즘상
★ 〈타임〉 선정 올해의 인물, 〈프로스펙트〉 〈블룸버그〉 선정 50대 사상가
★ 전 세계가 주목해야 할 저널리즘의 최전선!
자극적인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시대
‘사실’을 지키기 위한 한 저널리스트의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의 기록
이는 곧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것이다
“기자로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물러서지 않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전 세계 모든 언론인을 대표하여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연설 첫마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157센티미터의 작은 키로 연단에 선 마리아 레사는 곧이어 떨리는 목소리로 추방당하거나 감옥에 있거나 살해당한 동료 기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언론인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1935년 독일 기자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86년 만의 일이었다. 마리아 레사는 이를 우리의 언론과 민주주의가 나치 지배하의 시대와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며,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거짓말이 사실보다 더 빠르게 전파되는” 소셜미디어와 이러한 경향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는 기술 기업을 경계해야 한다고 전 세계를 향해 절박하게 호소했다.
마리아 레사의 삶 자체가, 그녀가 기자로서 걸어온 길이, 소셜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강력하고 문제적인지, 그 기술을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마리아 레사는 특유의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의 조국 필리핀의 현실이 곧 우리 모두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과 낡은 권력이 결합하고 서로를 이용하면서, 한때 시민 참여와 새로운 시대의 민주주의를 열어젖힐 도구로 환영받았던 소셜미디어는 우리를 둘로 나누는 무기가 되었다. 우리는 사실보다는 (소셜미디어의) ‘친구의 친구들’ 말을 더 신뢰하며, 이를 강화하는 알고리즘은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를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로 확산시키고 있다. 한때 정보의 문지기 역할을 하던 언론은 영향력을 상실했으며, 그와 더불어 우리가 공유하던 현실도 무너지고 있다. 이 모든 흐름은 민주주의의 몰락이라는 디스토피아적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당장 필리핀에서, 러시아에서 헝가리에서, 그리고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에서도 그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예외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기술 기업이 언론의 기능을 대체하는 시대, 민주주의가 ‘천 개의 상처’로 찢겨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임상적으로 해부한 보고서이다. 책에 담긴 분노와 불안이 그 어느 때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는 사실이 우리가 지금, 마리아 레사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이유다. 그리고 이 생생한 취재 현장의 말미에, 우리는 ‘사실’을 지키기 위한 최전선에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한 저널리스트의 용기를 보며 공동의 위기를 넘어설 통찰과 희망 역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CNN에서 래플러까지, 당대 언론의 최전선에서
시대의 흐름을 읽고 혁신을 이끌어낸 저널리즘의 개척자
사실의 보도를 넘어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다
열 살에 어머니에게 이끌려 필리핀을 떠났던 마리아 레사가 고국에 돌아온 건 1986년, 독재자 마르코스를 끌어내린 시민 혁명 ‘피플파워’의 성공 이후 필리핀 사회가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꿈틀대던 때였다. 피플파워의 유산이기도 한 국영방송국 PTV4에서 뉴스 연출로 경력을 시작한 마리아 레사는 1990년대 CNN에서 두 개의 동남아시아 지국(마닐라 지국과 자카르타 지국)을 이끌었다. 당시 동남아시아는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필리핀에서는 정부를 전복하려는 쿠데타 시도가 끊이지 않았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수하르토의 실각 이후 인종 간, 종교 간 갈등이 폭력적으로 분출했으며 동티모르는 독립을 선언한 이후에도 극심한 내전에 시달렸다. 마리아 레사는 이 모든 사건이 발생하는 현장에 있었고, 때로는 종군 기자로 목숨을 건 취재에 나섰다. 2001년에는 9‧11과 필리핀 내 알카에다 조직의 연관성을 밝히는 특종을 잇달아 보도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ABS-CBN 방송국에서 필리핀 최대의 뉴스 그룹을 이끌면서 마리아 레사는 본격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상에 발맞추어 혁신을 거듭했다. 휴대전화 보급률과 인터넷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발 빠르게 읽어 이 새로운 기술을 통해 뉴스를 실어 나르고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방법을 생각했다. 2010년 선거를 앞두고 시작한 투표 독려 캠페인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활동 속도를 늦춰달라고 요청할 만큼 성공적이었고, 마찬가지로 새롭게 도입한 시민 저널리즘 프로그램은 선거일 전까지 약 9만 명의 시민이 기자로 등록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후보자들 간의 토론 문화가 존재하지 않던 필리핀에 텔레비전 방송과 뉴스 웹사이트, 그리고 소셜미디어 등의 다중 채널을 이용해 실시간 참여가 가능한 공개 토론회를 정착시키기도 했다.
이 모든 혁신을 이끄는 과정에서 마리아 레사는 필리핀의 정치뿐 아니라 거의 모든 조직에 스며들어 있던 봉건주의와 후원 중심 문화에 맞서 뉴스 조직이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이러한 변화는 조직 내에만 머물지 않고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사회변화에 대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참여형 언론’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탁월한 언론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그녀는 변화의 방법론도 가지고 있었다. 2011년 7월, 세 명의 마낭들(필리핀어로 ‘언니들’)과 함께 설립한 디지털 기반의 뉴스 웹사이트, ‘래플러Rappler’가 그 방법론의 실체였다. ‘떠들다’를 뜻하는 ‘rap’과 ‘물결을 일으키다’를 뜻하는 ‘ripple’의 혼성어인 래플러의 창립 목적은 분명했다. “래플러가 행동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우리가 그 커뮤니티에 언론이라는 양식을 공급한다”는 것이었다. 탐사 보도, 기술, 커뮤니티라는 세 개의 원이 만나는 중심에 래플러가 있었다. 그리고 기술의 주요 파트너로 당시 필리핀에서 급성장하고 있던 페이스북을 선택했다. 언론이 사실과 정보의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고, 소셜미디어가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에게 힘을 부여하던 저널리즘의 황금기였다.
“혐오와 분노는 그들에게 돈이 된다”
페이스북의 든든한 파트너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수로
‘더 많은 정보의 더 빠른 확산’이 불러올 디스토피아를 예견하다
시작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벌인 ‘마약과의 전쟁’에서부터였다. 두테르테 당선 이후 매일 밤 거리에서, 특히 빈곤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마약과의 전쟁은 민간인에 대한 초법적인 살인에 다름 아니었다. 전쟁을 선포한 첫 3년간 2만 7.000명에 달하는 이들이 살해당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개인이나 기자는 온라인상에서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두테르테’나 ‘마약과의 전쟁’을 언급이라도 하면 어디서 경보라도 울리는 듯 곧바로 공격적인 댓글이 달렸다. 전례 없는 규모와 속도였다. 래플러는 공격이 이루어지는 경로와 거점이 되는 계정들을 낱낱이 추적하여 페이스북(現 메타)이 훗날 ‘조직화한 허위 행위’라고 부르게 될 정보 작전의 전모를 세상에 공개했다.
‘인터넷의 무기화’라는 제목을 붙인 이 연속 기사에서 가짜 페이스북 계정 하나가 300만~400만 명에게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래플러가 추적한 가짜 계정만 26개였다. 이러한 정보 작전의 주 무대는 페이스북이었고, 이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