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세대를 초월한 프랑스의 연인 언제나 오직 콜레트 콜레트는 아마도 ‘콜레트’라는 단일명(名)으로 알려진 유일한 여성 작가일 것이다. 그녀는 언제나 그리고 오직 콜레트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는 어떻게 단지 콜레트가 되었을까. 그녀의 첫 소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남편 필명인 ‘윌리’로 출간된다. 그녀의 삶은 온전히 자기 이름을 얻기 위한 혹독한 도전이었다. , 프랑스 작가들의 유례없는 사랑을 받아온 작가를 감싸고 있는 것은 비옥한 생산성, 매혹적인 기질, 마음의 신비에 천착하고 자신을 전혀 감추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쓰려는 그 열망이었다. 콜레트의 모든 작품은 온전히 콜레트다. 콜레트의 수많은 얼굴이 그의 작품 속에 있다. 그렇게 콜레트와 그녀의 작품은 하나가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느끼는 모든 것, 나를 매혹하고, 내게 상처 주고, 나를 놀라게 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하고 싶다.”_<포도 덩굴손> 중에서 콜레트의 거침없는 삶과 작품을 관통하는 화살 같은 이야기들 사랑, 애착, 욕망의 현란한 뉘앙스 『슬픔의 긍지』 이 작품은 현대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매혹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프랑스 자전 소설의 선구자로 새로운 문학의 길을 개척한 콜레트는 자신의 일상생활, 관계, 사적인 경험에 대한 관찰과 성찰을 통해 미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성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여성의 강인함과 취약성, 그리고 여성을 둘러싸고 있는 강제된 사회적 기대를 드러낸다. 짧은 산문들 속에서 콜레트는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분석을 통해 사랑, 애착, 욕망의 미묘한 뉘앙스를 파헤치고 사랑의 열망과 씁쓸함, 그리고 달콤한 순간들을 조명한다. 독자는 관계와 감정의 풍경화로서의 사랑, 그 연약한 사랑에 대한 통찰과 피할 수 없는 소멸로 이끄는 시간의 흐름, 노화에 대한 깊은 숙고를 동반하는 생기 넘치는 여행으로 인도 된다. 헤아릴 수 없는 인간 감정을 조망하기 위해 일상적인 관계의 표면 아래에 감춰진 애정과 상처, 그리고 개인들 사이의 까다로운 관계를 드러내는 시각적 산문이 돋보인다. 감정의 아름다운 풍경화 생각을 탐구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일상의 은밀한 세부를 기록하기 작품 전반에 걸쳐 콜레트는 연인, 친구, 고양이, 개, 주변인 등 자신이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를 관찰하며, 각각의 관계는 웃음과 냉담함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묘사된다. 사랑은 예리하게 해부되어 도취이자 덧없음이라는 사랑의 속성이 경쾌하고도 서늘하게 드러난다.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에 놓인 애정과 호의, 애착과 감정적 혼란, 그들의 연약함이 등장인물의 감정, 생각, 내면의 섬세한 묘사와 깊은 성찰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콜레트에게 글쓰기는 고립된 개인이 주변 세계와 교감하며 자기 발견을 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행위이다. 콜레트 글쓰기의 정수 사후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도 여전히 독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콜레트. 그 우아한 문체와 예리한 통찰 덕분에 『슬픔의 긍지』는 시대를 초월해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가 비로소 자유롭고 독립적인 작가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던 작품이자 이후 콜레트 문학의 정수가 담겨있는 이 작품집은 콜레트라는 작가를 탐구할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프랑스어로 이 작품집을 낭독하는 수많은 유튜브 영상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프랑스어라 알려진 이 작품집은 콜레트 작품 중에서도 유일하게 르 몽드 신문이 뽑은 세기의 책 100선에 올라 있다. 작가 콜레트에 관하여 콜레트 Sidonie-Gabrielle Colette(1873년–1954년), 프랑스의 작가, 마임배우, 무용수, 저널리스트. 20세기 전반기에 가장 독보적인 프랑스 작가. 프랑스 역사상 국장으로 장례를 치른 최초의 여성. 20대인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클로딘 연작 4편을 썼고(거의 감금된 상황에서) 남편의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1년에 1편씩 썼으니 엄청난 생산성에 가혹한 노동 착취라 할 만하다. 이 클로딘 연작은 당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세기 최초의 사춘기 소녀'가 탄생한 것이다. 일상의 경험, 내밀한 감정, 사적 관계를 탐구하는 유연하고 서술적인 산문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문학적 경향, 내면의 복잡성을 포착하고 일상생활의 세부 사항을 조사하려는 당시의 문학적 경향에 딱 들어맞았다. 콜레트는 일곱 살에 발자크를 비롯해 코르네이유 등 프랑스의 고전을 탐독한다. 전직 군인이자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은 세금 징수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프랑스어와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 부모의 따듯한 사랑 속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특히 집 안뜰의 정원에서 관찰 기술을 터득한다. 부르고뉴의 숲과 정원, 그 향수는 평생 콜레트 글쓰기의 근원에 자리 잡았다. 남편 윌리(Willy)는 당대의 영향력 있는 음악 평론가이자 작가, 그리고 출판 업자였다. 그는 젊은 아내를 파리의 문학계와 음악계에 소개했는데, 그곳에서 가브리엘은 부르고뉴의 거친 악센트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젊은 아내의 글쓰기 능력에 놀란 Willy는 그녀를 쉐도우 대필작가로 이용한다. 클로딘 시리즈는 당시 문화현상이 될 정도였다. 클로딘의 단발머리가 도처에서 튀어나와 파리를 휘젓고 다녔다. 1906년 자신의 글에 관한 그 어떤 권리도 얻지 못한 채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후 콜레트는 뮤직홀에서 당대 최초의 여성 마임 배우가 된다. 그녀의 의상, 그리고 동료 여배우와의 키스 등으로 쇼는 경찰로부터 공연 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1906년 윌리와 헤어진 후에 쓰기 시작한 글들이 바로 출간을 앞둔 <les vrilles de la vigne 포도덩굴손>이다. 스무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어린 시절의 정원과 숲의 기억, 그리고 당시의 파트너인 마틸드 드 모니(미시)와의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이 시기 콜레트는 작가로서의 직업적인 성취도 이루기 시작한다. 1912년 콜레트는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Henry de Jouvenel을 만나 결혼한다. 외동딸 Colette Renee de Jouvenel을 두었지만 남편이 바람을 피우자 40세의 나이에도 당시 16세였던 남편의 아들 베르트랑 드 주브넬 (Bertrand de Jouvenel)과 5년 동안 연인관계로 지낸다. 이때의 이야기가 1920년 소설 '셰리'로 출간된다. 소설은 베르트랑 드 주브넬과 관계를 맺기 몇 년 전인 1912년에 구상했다고 해서 환상이 현실이 된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두 번째 남편과는 1923년에 이혼) 1910년대 후반엔 신문의 평론 기고와 연극 각색에도 참여하고 Maurice Ravel과 음악 작업도 함께하면서 배우, 작가, 가수이자 작곡가로 벨 에포크의 유명 인사가 된다. 1929년엔 대공황 속에서 생계를 위해서 파리의 rue de Miromesnil 에 '미용 연구소' 일종의 뷰티샵을 열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향수와 화장품을 만들고 여성들의 피부관리를 직접 해주기도 했다. 물론 기대했던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1년 만에 문을 닫는다. 그 해 콜레트는 자신보다 16살 적은 나이의 세 번째 남편인 Maurice Goudeket을 만나 결혼한다. 전쟁 중에는 남편 모리스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자 비시 정부의 유력 인사들을 비롯해 각계의 인물들을 동원해서 남편을 수용소에서 구출해낸다. 고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그녀는 주로 침대에서 수많은 신문에 글을 쓰고 소설을 출판한다. 그녀의 비정치적 성향과 재정적 필요로 인해 독일 점령기의 협력주의 신문, 페탱주의 신문에도 글을 썼고 지하 언론의 저항 세력으로부터는 거친 비난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