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명세서

김나연 · 인문학
228p
구매 가능한 곳

저자/역자

코멘트

1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

목차

프롤로그 Part 1 10월 카드명세서 작업용 노트북 61,900원 엄마 병원비 73,319원 전화 영어 17,600원 오키나와 왕복 항공권 34,100원 향수 29,400원 책장 10,600원 필름 공구 10,100원 가다실 2차 접종 63,400원 여름 원피스 19,600원 바디로션 10,630원 도시락 11,000원 Part 2 일시불 항목: 티끌 모아 태산 정신건강의학과의원 44,400원 보은이 선물 8,000원 대중교통 117,700원 시사 주간지 4,000원 생활 잡화 10,000원 식대 312,060원 에필로그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에게 가난은 유령이 되는 일이었다” 빈곤과 대결하는 자아, 그러는 사이 정체성이 되어버린 빈곤 물질과 실존의 빈곤 속에서 불안해하는 가난의 ‘유령’이 제 주머니를 털어 보여주는 어떤 결핍의 세부 내역 “나는 줄곧 가난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며 끊임없이 가난과 거리를 두었다. 가난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혐오의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것을 내 삶과 관련 없는 단어로 만들고 싶었다. 아무리 가족의 일일지언정 타인의 선택과 그로 인한 결과를 내가 책임지지는 않겠노라고 억지를 부렸다. 이 가난은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니 내게 책임 지우지 말라고 정색했고, 엄마가 ‘빤쓰’가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든 아니든, 그건 엄마의 형편이니 내 알 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 어떻게 해서든 나한테서 가난의 냄새가 나지 않게, 나에게 가난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못하게 옷매무새며 말투, 가치관까지 관리해왔다. 가난을 이야깃거리가 필요할 때만 잠깐 꺼내 쓰는 ‘어려서 한때 고생한 사연’ 정도로 묻어두고 싶었다. 가난은 뗐다 붙였다 하는 스티커가 아니라 문신처럼 세포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성질의 무언가라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아니 모르고 싶었다.” ― 에필로그 “나연 씨,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써요?” 그 한마디에서 이 모든 얘기가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난의 명세서』는 무슨 돈을 어떻게 얼마나 썼는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써놓고 보니 이 이야기는 ‘소비의 목록’이 아닌 ‘가난의 명세서’가 되어 있었다. ‘나연’은 노트북 구입비, 엄마 병원비, 전화 영어, 교통비, 여행비, 정신과 진료비 등 지난 10여 년의 지출 내역을 탈탈 털어 어떤 빈곤의 서사를 풀어놓는다. 그것은 사람을 삶의 극단으로 내모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빈곤이 아니다. 그보다 끊임없이 생활을 제약하고 자아를 위축되게 만드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빈곤 상태’가 이 책에 적힌 가난이다. 말하자면 어쩐지 ‘진짜 가난’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가난. 무언가 소명해야 할 것 같은 빈곤.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불완전하고 어중간하고 임시적인 느낌. 그래서 떳떳해지지 못하고 자꾸만 죄스러워지는 마음. 그러나 이 자질구레한 가난의 명세서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 감정들이야말로 저자의 빈곤 체험을 관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가난은 우리를 어떤 인간으로 만드는가?’ 가난하게, ‘나’로 살기 ―당사자성과 정체성 가난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다루어질 때 그것은 눈에 띄는 결핍으로 시각화되고, 구조적 문제로 도식화된다. 반면 그것이 누군가의 사적 서사가 되었을 때 드러나는 구체적인 하루하루의 내용, 그 내용이 동세대, 전후세대와 얽히며 종횡으로 만들어낸 삶의 패턴은 그 빈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띤다.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위협, 누군가에게는 생활의 제약, 누군가에게는 부서진 관계, 누군가에게는 희망 없음인 그것을, 이 책의 저자는 “유령이 되는 일”이었다고 적는다. 풀어 쓰자면 그에게 가난은 자아가 왜곡되고 위축되고 축소되다 못해 소멸되는 일. 저자에게 빈곤은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살기’와 관련이 있는 문제였다. 여느 당사자 서사가 그러하듯 이 책도 청년 빈곤의 일상적 풍경을 소상하게 담아낸다. 특유의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문체로. 눈앞에 있는 과자의 최저가를 찾겠다고 네이버와 쿠팡을 들락거리는 소비자, 6만 원짜리 운동화도 일시불로 못 사는 빈털터리, 중고 노트북으로 자소서 쓰고 부업도 하는 취준생, 떠나기 전 ‘기초생활수급자 해외여행금지’ 국민청원을 찾아보는 여행객, 회사생활을 병행하며 이삭토스트로 대학원 4학기를 버틴 고학생,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의 치료비와 간병비를 책임지는 보호자, 병원비가 무서워 정신과 진료를 10년이나 미룬 환자…… 그런 ‘빈자’로 사는 동안 ‘나’는 삶의 여러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결핍을 감각한다. 언제나 계산하며 살아야 하고, 시간 감각은 ‘지금’에 고정되며, 끊임없이 기대하지 않기를 학습해야 하는 생활. 저자는 이런 생활 속에서 내면에 쌓여온 묵은 감정을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화내고, 슬퍼하고, 서러워한다. 자기연민에 빠졌다가 다시 그 연민을 혐오하고, 가난을 멋대로 대상화했다가 또 정체성 삼기도 한다. 이 혼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가난의 당사자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에게는 되고 싶은 ‘나’가 있다. 스스로에게 ‘깨끗한 사람’이고 싶고, 앞뒤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고운 안목”(129)이 있는 사람이고 싶고, 그런 안목으로 탁월하고 지속가능하며 윤리적인 소비를 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계산 없이 베풀고 싶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같이 행복해하는 사람이고 싶다. “내 선택에 대해서만 책임지면 되는” 사람(115), “교양 있고 친절하며 마음에 여유가 가득한 사회 공동체원.”(186) “내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100)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가난은 끊임없이 ‘되고 싶은 나 되기’에 제동을 건다. 가난이 싫은 이유로 치자면 가난 때문에 욕구를 유예하는 일쯤 대단히 중한 것도 아니다. 욕구를 절제하는 일은 한때 청렴하고 검소하다고 칭송받던 태도니까. 하지만 가난으로 인해 내 존엄에, 자존감에, 사람들과의 친밀감에 한계가 지어지는 것, 그것이 숨통을 조여와도 타격이 없는 척, 원래 좁고 초라한 자아를 타고난 척해야 하는 것―이것이야말로 절망스럽고 견딜 수 없는 것이다. _94쪽 나는 다시 한번, 말라붙은 얄팍한 지갑 때문에 내 가치관에 위배되는 행동만 골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난 속에 있는 한, 나는 비윤리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으며, 환경 파괴를 가속화하는 소비자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의 마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옷도, 아름다운 몸도, 아름다운 태도도 가질 수 없는, 그래서 타인이 욕망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하는 스스로를 끝없이 혐오하게 만들었다. 윤리도, 도덕도, 아름다움도, 정치적 올바름도,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는 자질처럼 느껴졌다. _131쪽 자기실현이 거듭 좌절될수록 ‘나’는 세상이 가르쳐준 가난의 문법을 내면 깊숙이 학습한다. 시선에 예민해지고, 스스로를 작게 느끼며, 타인을 믿지 못하는 동시에 자기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는 날들. 선택은 늘 불안하고 두려운 것, 하고 나서도 찜찜한 것. 그렇게 그의 존재는 늘 시험대 위에 있게 되고, 언제나 존재를 시험당하는 자아는 경직될 수밖에 없다. “내가 욕망하는 이상적인 선택에 부합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아야 괴로움과 절망의 길로 흘러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127) “타인은 설령 부모나 친인척이라 할지라도 믿어서는 안 되며, 내가 직접 알아보지 않은 일은 덜컥 시작해선 안 된다는 것,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직접 성취해야 한다는 사실.”(64-65) 가난이 정체성이 되면, 빈곤은 더 이상 물질적 차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래선지 저자가 구체적인 숫자로, 돈 얘기라며 펼쳐놓는 빈곤의 경험은 오히려 실존적 빈곤에 관한 이야기일 때가 많다. 동화 「아기 돼지 삼형제」를 인용하며 그는 말한다. “첫째와 둘째는 과연 벽돌이 가장 단단하고 튼튼한 자재라는 사실을 몰라서 짚과 나무로 집을 지었을까? (…) 나는 벽돌집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어떻게 해서든 벽돌을 손에 쥐고야 마는 돼지였다. 그것이 형제들의 고통에 눈을 감고 엄마 돼지의 호소에 귀를 막는 일일지라도.”(37) 그렇게 어엿한 직장을 얻고 남들 버는 만큼 벌며 독립해 집을 얻고 그 집에 꿈꾸던 가구를 들인 뒤에도 ‘나’의 질문은 계속된다. “다른 사회로의 환승을 추구하는 나의 속물 근성과 나는 앞으로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116) 이

이 작품이 담긴 컬렉션

1

본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왓챠피디아의 자산이며, 사전 동의 없이 복제, 전재, 재배포, 인용, 크롤링, AI학습, 데이터 수집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 주식회사 왓챠
  • 대표 박태훈
  • 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대로 343 신덕빌딩 3층
  • 사업자 등록 번호 211-88-66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