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본학자의 치밀한 논증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거를 실증적으로 비판하다
계량 분석 및 계층 간 이해?유착관계 포착으로 식민지 경제의 내막을 밝힌 화제작
수탈론의 발전적 계승이자 새로운 이론 정립의 서막
일본학자의 눈으로 일제강점기 토목업을 둘러싼 조선 경제의 실상을 실증적인 방법론으로 탐구한 문제작이 출간된다.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이태진.사사가와 노리카쓰 공편, 2019)에서 일제가 조선에 뒤늦게 투자를 시작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선전했음을 지적한 도리우미 유타카 한국역사연구원 상임연구원(선문대학교 강사)은 이 책에서 그 장밋빛 발전의 허구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본인으로서 양심에서 우러나오는 차분한 사색과 일본학자 특유의 정치한 논리는 독자들을 이내 사로잡는다.
청부업자를 축으로 꿰뚫은 식민지 경제 발전의 허상
철도 등이 건설되고 근대적 법제가 도입되었음에도 왜 당시 조선인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까?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 지배가 경제적으로는 조선에 도움이 되었으며 조선 빈곤의 책임을 전통 사회로 돌린다(《반일종족주의》). 그러나 저자는 그 반례로 재정 분야의 정치권력 개입 사례인 철도 및 수리조합사업에 주목한다. 일본인 토목청부업자들은 재정을 들여 조선 경제의 인프라를 확장시킨다는 총독부와 유착하여 많은 이익을 취하고 경인?경부철도 공사에서 보듯 조선인 청부업자들을 배제시켜 나갔다. 저자는 총독부 통계자료와 칙령은 물론, 당시 토목건축업협회 잡지의 실태 조사를 샅샅이 훑어 논지를 입증해 나간다. 이때 일제와 일본인 지주의 이익구조를 꿰뚫는 경제학자의 예리함이 돋보인다. 담합사건을 유죄로 하면서 정무통감 통첩의 형태로 지명경쟁입찰을 도입, 청부업자를 구제하는 ‘악의 시스템’을 고발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결국 조선으로 투자된 막대한 자금의 상당 부분은 일본인 청부업자와 지주의 손아귀에 들어가 조선인들은 가난에 허덕였던 것이다.
통계와 수치 그 행간을 읽다
허수열 교수도 지적한바(2017) 강점기 통계 문서들은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그럼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본인이 1945년에 작성한 표를 들어 강제징용 때 조선인 탄광부의 임금이 상당히 높았다고 주장한다(《반일종족주의》). 이에 저자는 통계 자료가 미처 제시하지 못하는 정황이나 데이터의 행간을 읽음으로써 식민지 경제의 민낯을 세세히 그려낸다. 조선인 노동자의 임금을 추정하면서 그 실태와 조선총독부 통계 자료 사이의 간극을 찾아내고, 체험담, 수기나 신문 보도 등을 근거로 일본인 청부업자 편에서 이루어진 조사의 한계를 밝히는 것이다. 임금 미지급과 그로 말미암은 저임금의 유지는 ‘보이지 않는’ 착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료 수치상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국가권력의 간섭?폭력이나 일본인끼리의 연대감 등은, 곧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언급하는 ‘일상의 자발적 거래’까지도 방해하는 장애물이자 ‘이중구조’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수탈론에서 부당 이익론으로
계량 분석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통계의 함정과 일상 거래의 경우의 수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정연태 교수가 지적(2011)한 ‘식민지 수탈론의 연구방법상의 낙후성이나 실증상의 한계’를 극복한 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특히 근대화론자들의 비판을 받아왔던 ‘수탈’이라는 개념 대신 정치권력에 의한 경제 분야의 부당 관여, 부당 이익, 부당한 방치, 부작위 등 구조적 폭력을 직시하자고 제안한다. 제4장에 언급한 금융 분야에 대한 사례가 더해지고 조선 후기와 해방 후 경제 조사가 보강된다면, 앞으로의 저자 연구는 근대화론의 맹점을 효과적으로 타파하는 정론正論이 될 뿐만 아니라 이 시기 경제 연구의 신개척이 될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가 전방위에 걸쳐서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반일’ 혹은 ‘친일’ 모두 현 상황을 타개하는 궁극적인 대안은 아닐 듯하다. 갈등의 근원은 과거사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아마도 가장 근본적으로 긴요한 첫걸음은 실사구시에 입각한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일 것이다. 따라서 ‘일본인도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하고자 한 이 책이 역사학계,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 던지는 파문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