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의 세계

울리 분덜리히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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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의 죽음을 서양 전통의 '죽음의 춤'(Danse macabre)을 통해 예술적.미시사적 접근 방법으로 인간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그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약 200여 컷의 도판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죽음의 춤'이라는 개념은 예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라틴어 '코레아 마카베오룸'(chorea machabeorum)에 기원을 두며, 중세 때 생겨난 예술 형태로 춤추는 죽음을 묘사한 그림을 가리킨다. '죽음'은 의인화된 해골의 모습으로 등장해 춤을 추면서 산 자를 데려간다. 죽음은 인간에게 생의 종말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불시에 찾아와 데려가기 때문에 이러한 그림에서는 죽음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결국 죽음의 춤은 인간에게 그들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너지기 쉬운지, 지상의 영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상기시킬 목적으로 생겨났다.

저자/역자

목차

옮긴이의 말 5 머리말 24 제1장 죽음의 춤이란 무엇인가 31 제2장 중세의 그림과 텍스트 39 스페인의 죽음의 춤 40 프랑스의 죽음의 춤 48 고지 독일의 죽음의 춤 59 저지 독일의 죽음의 춤 69 여타 나라의 죽음의 춤 76 개념에 대한 정의 시도 78 제3장 원전과 동시적 현상 81 세 명의 산 자와 세 명의 죽은 자에 관한 전설 82 죽음의 승리 86 논쟁.소송.훈계 90 사자들의 밤의 춤에 관한 미신 96 교회의 연례행사에 등장하는 죽음의 춤 공연 101 제4장 세계 곳곳의 죽음의 춤 111 고대의 죽음의 춤 112 라틴 아메리카의 사자 숭배 119 불교에서의 죽음의 춤 122 제5장 한스 홀바인 ― 근대 죽음의 춤 창시자 130 죽음의 춤에 관한 복제화의 전파 144 기념비적인 죽음의 춤에 투영된 죽음의 그림들 157 제6장 바로크 시대 마카브르 예술의 새로운 현상 177 빈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당의 사자 신도회 178 위탁자로서의 수도회 교단 184 제7장 계몽주의 시대 이후 죽음의 세속화 경향 190 죽음의 춤에 등장한 '친구 하인' 192 중세의 재발견 199 도자기 장식품과 일과 후 여흥거리로서 죽음의 춤 204 제8장 죽음의 춤에 나타난 정치, 전쟁 그리고 대재앙 217 알프레트 레텔과 1848년의 혁명 219 정치 만평(漫評)으로서 죽음의 춤 224 전쟁의 참상에 대한 반영 231 나치의 선전 활동 239 제9장 20세기 후반의 죽음의 춤 243 파괴와 종말에 대한 코드로서 죽음의 춤 244 기독교 예술에서 죽음의 춤의 재발견 251 맺음말 258 참고문헌 260 <부록>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의 죽음의 춤에 관한 목록 266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간으로 태어나면 반드시 맞이해야 하는 '죽음', 인류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왔는가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을까, 아니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일단 '몸'으로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너무나도 자명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다만 종교적 귀의나 내세에 대한 믿음으로 정신적 죽음만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음'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을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인간에게 죽음은 태어나면서부터 내재된 자연적 결과로서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것은 두려움의 대상이며 동시에 극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인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죽음을 서양 전통의 '죽음의 춤'(Danse macabre)을 통해 예술적.미시사적 접근 방법으로 인간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으며, 그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약 200여 컷의 풍부한 도판자료를 바탕으로 우리를 '죽음'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저자인 울리 분덜리히(Uli Wunderlich, 1968∼ )가 "유럽 죽음의 춤 협회"(Association Danses Macabres d'Europe) 회장이고, 협회의 기관지인 『죽음의 예술』(L'art macabre)의 발행인이기도 하다니, 서양 학자들의 아주 구체적인 역사에 대한 전문적 탐구열이 돋보이는 역작이기도 하다. 언제나 죽음에 대해 대비하라! ―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교훈 '죽음의 춤'이라는 개념은 예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라틴어 '코레아 마카베오룸'(chorea machabeorum)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중세 때 생겨난 예술 형태로 춤추는 죽음을 묘사한 그림을 가리킨다. '죽음'은 의인화된 해골의 모습으로 등장해 춤을 추면서 산 자를 데려간다. 죽음은 인간에게 생의 종말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고 불시에 찾아와 데려가기 때문에 이러한 그림에서는 죽음을 전혀 예측할 수 없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했다. 결국 죽음의 춤은 인간에게 그들의 삶이 얼마나 허망하고 무너지기 쉬운지, 지상의 영광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상기시킬 목적으로 생겨났다. 특히 '죽음의 춤'의 역사는 당시 유럽의 시대상황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반복되는 기근과 영양실조, 흉작, 백년전쟁(1337~1453), 그리고 1347~53년까지 이어진 끔찍한 페스트로 인한 유럽 인구 1/3가량의 희생이 결정적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인명을 앗아간 재난을 기억하기 위해 생겨난 '죽음의 춤'은 곧 전 유럽으로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죽음의 춤'을 그린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오로지 죽음만이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 자들은 뻣뻣하게, 종종 몸을 돌린 채 조용히 서 있거나 말과 행동으로 죽음을 따라가길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즉 춤과 죽음의 알레고리는 죽음의 불가피성을 상기시키고 언제나 죽음에 대한 준비(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하도록 설파하는 교훈적 내용이 담겨 있다. 중세 시기의 '죽음의 춤' ― 세속 권력과 교회에 의해 더욱 견고화하다 또한 죽음의 춤의 생성 배경에는 세속 권력과 교회 당국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초기 죽음의 춤에서는 교회 묘지의 담장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주를 이루었다. 해골이 춤을 추면서 인간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죽음의 그림들은 교회에 다니는 신도들에게 하느님의 뜻에 따라 경건한 삶을 살도록 훈계한다. 세속 권력과 교회가 죽음의 춤을 이용한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죽음의 공의로움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동일하다는 것, 따라서 죽음의 춤은 민중들에게 죽음의 공평함을 환기시킴으로써 중세 신분사회를 안정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둘째, 신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호소하기 위함이다. 죽음은 그림에 첨가된 텍스트에서 대개 어디로 길이 이어지는지를 예고하고 있는데, 심판의 길이 그것이다. 거기에는 천국이나 지옥뿐만 아니라, '연옥'도 있었는데, 이것은 죄인들이 속죄를 해야만 하는 정죄화(淨罪火)를 일컫는다. 일반 민중들에게 죽음의 공평함과 경건한 삶을 살도록 가르치기 위해 강렬하고 설득력 있는 그림과 운율을 맞춘 간단한 텍스트는 중요한 시각적인 매체였던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춤'은 중세 때 자신이 태어난 신분에 순응하며 살도록 호소하였고, '하느님께 바친' 질서 속에서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영위하도록 호소함으로써 삶과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화가 한스 홀바인의 등장 ― '죽음의 춤'의 일대혁신, 인간의 어리석음을 폭로하는 사회ㆍ도덕비판 이런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죽음의 춤'이 화가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에 의해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이제 '죽음의 춤'은 교회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것으로 탈바꿈한다. 춤추는 죽음은 거의 사라지고, 예전에 피부로 덮여 있던 죽음은 이제 '해골'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죽음은 개인화를 경험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더 이상 각 신분의 대표자와 만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홀바인에게 중요한 문제는 모든 인간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개개인이 어떠한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폭로하는 사회비판과 도덕비판이다. 바로 이 점에서 홀바인의 혁신적인 잠재력이 숨어 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죽음의 춤'의 전범(典範)을 이루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 이제 죽음은 두려움을 상실한다. 죽음의 상징인 해골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해골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내고 죽음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죽음은 이해될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어느 정도 일정한 시점까지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 반전운동, 평화주의, 환경운동에도 여전히 모티프를 제공! 프랑스 혁명 이후 '죽음의 춤'은 정치적인 여론 형성의 수단이 되었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인한 모든 새로운 기술적 성과는 대재앙을 부르는 행위로 묘사되었다. 20세기 양차대전의 경험은 수많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또다시 죽음의 춤에서 모티프를 취하도록 하고, 그들의 작품 제목을 '죽음의 춤'이라고 명명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지금도 마카브르(죽음의 춤) 예술은 반전운동과 평화주의, 생태계 보호와 같은 환경운동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죽음의 춤'은 비록 모든 인간들에게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지만, 또한 그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이중적이다. 즉 죽음의 사명은 모든 인간이 죽어야만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심판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죽음의 춤'의 예술적 형상화를 통해 단순히 죽음이 파괴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죽음을 인간에 대한 신(神)의 계획의 일환으로 연결시킨 알레고리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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