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최현숙
2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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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생애사 전문 작가라고 하지만 한 손에 모아지지 않는 삶을 살아온 최현숙 작가의 에세이집은 제목처럼 힘차게 자신의 삶을 한 지점에 모아내고 있다. 똑바로 마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두렵고, 괴롭고, 지루하거나 아프거나 아무튼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똑바로 마주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자기 고백적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고백 서사가 아니다. 사적인 삶을 정치적으로 살아내려는 세월 속에서 나온 자기 성찰적 결들을 띤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관한 한 ‘사회적 쓸모’라는 공적 자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처음에 천주교 운동을 통해 가난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그녀는 진보정당 운동, 요양노동, 구술사 작업 등을 통해 빈곤을 견디는 힘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함께 내왔다. 노인들과의 만남은 특히나 각별하다. 마지막에 전 생애를 되돌아본다는 건 볕들지 않았던 삶에 서사를 구축하면서 제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다. 이야기는 힘이 있다. 꿰어지지 않았을 땐 몰랐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상처로 버무려진 관계투성이였다면 그것을 희석시키는 힘도 기억과 재해석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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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이런 삶은 모른다고 하는 당신에게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 속도와 효율에 대한 강박 두려움과 혐오를 티 내지 않고 감춰서 문제에 휘말리지 않은 날에 대한 되새김질 빈곤을 견디는 힘 퀴어 환갑쟁이의 미풍양속 도벽의 퇴로 금연 13일차 장애 여성 구술생애사 작업에 들어가며 천주교회의 내일은 얼마나 걸려야 올까 덜 불행한 삶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 아닌 시민 2부 치열하게 중심을 잡고 살기 중하위 계층 5060세대 여성들이 나누는 세월호 이야기 새끼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자기 통곡을 삼킨 에미가 밑불을 놓았다-‘비온뒤무지개재단’ 창립총회에 참석하고 와서 “내 살은 거럴 우예 다 말로 합니꺼?” 엄마의 일기를 읽으며 밀려난 삶: 근로자로도 자궁으로도 쓸모없는 혁명의 징후를 보여주는 출산파업 3부 비하와 경멸은 당신들 몫이다 “선생님들요, 듣고 계십니까?:『숫자가 된 사람들』을 읽고 모든 개인은 구구절절 각별하다: 가난 속으로 들어가는 구술생애사 한만삼을 빼돌린 형들 조직 최근 일련의 기억투쟁들 예수는 세상의 모든 지옥 속에 있다: 교회에 갇혀 모독당하는 예수 가슴에 올라타 망치로 내리찍어 4부 사적이고 정치적인 늙음과 죽음 그래 갱년기야, 내 몸 안에서 놀아라 “너희끼리 잘 살고 우린 내버려둬” 복귀 불가능한 하강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자기가 뭐라고 울분에 서러움까지 죽음의 경로를 결단해야: 노인을 집에 둘 수 없는 세상에서 엄마 노릇 딸 노릇 사람 노릇 5부 나의 가족에 관하여 하루 세끼니 꼬박 64일간 192개를 모은 쿠폰: 엄마, 이번 여행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그러고 나서 담배 이야기는 서로 간에 처음이다: 2015년 5월 친정 식구들과 부산여행 서자 춘섭과 양반집 셋째 여자 서당골댁 안가네 막내 시누이와 둘째 큰올케 두 번째 책을 아버지에게 선물하다 두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은 엄마 엄마의 해체를 관찰하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물러날 곳이 없는 데서는 맞선다 그 치열함이 우리를 만든다 예순두 살의 여자가 있다. 그는 24년간 혈육인 가족과 살았고 24년간 스스로 만든 가족과 살았으며 또 14년간 이리저리 떠돌면서 살았다. 그렇게 예순두 살인 그녀는 지금 수원에 위치한 원룸에 살면서 근처 실버타운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뵙고 있다. 그녀는 노숙자, 시골 노인, 시장 상인 등 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온 구술생애사 전문 작가다. 『할배의 탄생』이란 책도 펴낸 바 있다. 지금은 “교양을 부리며” 살아온 가난하지 않은 실버타운의 나이든 노인도 삶을 관찰하고 있다. 그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 구술생애사 전문 작가라고 하지만 한 손에 모아지지 않는 삶을 살아온 최현숙 작가의 에세이집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는 제목처럼 힘차게 자신의 삶을 한 지점에 모아내고 있다. 똑바로 마주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두렵고, 괴롭고, 지루하거나 아프거나 아무튼 굉장히 힘들다. 하지만 똑바로 마주한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이 책에 담긴 것은 그러한 깨달음들이다. 동성애, 가난, 종교, 장애 등 “한국 사회의 지뢰만 골라 밟아온” 그녀가 자신의 “사적이고 정치적인” 에세이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려 한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이런 삶은 모른다고 하는 당신에게’ 말을 거는 1부의 첫 글은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여자’는 ‘좋은 엄마’라는 막중한 이데올로기와 겹치는 문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과연 어떤 삶을 걸었을까. 그녀의 작은아들은 17세에 가출을 했다. 좋은 엄마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남편은 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는, 혹은 자기처럼 걱정하지 않는 그녀를 향해 심한 비난을 했다. ‘자기 발로 나간 아이가 자기 발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 생각을 정리해내는 동안 그녀는 많이 힘들었고, 그런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힘들었다. 그녀는 사실 훨씬 더 독한 각오까지 했다. ‘아들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그리하여 내 남은 삶이 자책과 주변의 원망에 짓눌리는 것까지도 나는 감수하겠다’는 각오였다. 이것이 당시 그녀가 작은아들의 가출을 마주하고 홀로 정리해낸 감성과 이성의 경합물이었다. 그때의 불안과 이질감과 죄책감은 이후로 그녀 안에 계속 남아 있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끌어내져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 구실을 해왔다. 저자의 글은 삶의 굽이마다 패여 있는, 옹이가 되어 있는 지난날의 자책과 상처로 가득하다. 그것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와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자신의 이성과 감성을 검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 엄마이면서 퀴어이면서 어릴 적 자기와 맞서는 태어나보니 가부장적 가족과 사회 한가운데였고, 타고난 성정 또한 고분고분하지 않아 지뢰밭 같은 세상에서 피하기보단 치열하게 맞서 살아왔다. 그것들은 안팎으로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삶을 똑바로 마주하고 공공적 자아로서의 자기 삶도 잊지 않으며 테두리를 잘 지어온 생애라 그 삶은 가장 사적이면서도 윤리적 의미까지 적잖이 내비치고 있다. 결혼생활 24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그걸 못다했기 때문일까. 예순이 넘은 지금 30대의 두 아들이 꿈속에서 갓난아기로 나온다. 아이들은 칭얼대며 엄마한테 보살핌을 바란다. 기저귀 갈아준 지 오래됐는데 그녀는 다른 일로 무척 바쁘다. ‘이러다간 누가 미친년이라고 하겠어.’ 죄책감과 조바심이 바닥에서 치고 올라오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아이는 먹이지 못하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좋은 여자와 미친년 사이>를 계속 살펴보자. 약간 함몰된 젖꼭지라 아이를 낳았을 때 주변 사람들은 우유 수유를 권했지만 그녀는 모유 수유를 했다. 살갗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그땐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런 꿈을 꾸는 건 왜일까. 그녀는 의심한다, 모성애의 명확한 의미와 유래, 쓸모와 그 공공성을. 하지만 딱 잘라 규정하기 어렵다. 모성애는 본능적인 것이라서 아무리 ‘모성 이데올로기’를 벗겨내려 해도 죄책감과 뒤엉키고 나면 통곡을 자아내고 그래서 그녀는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자기분열적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폐적이고 자기중심적 모습을 드러내는 모성애, 그 학습된 수치심에서 벗어나”자고 말한다. 물론 이런 엄마는 보통 엄마와는 다른 이물감을 일으키는 존재지만 그것이 한 여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엄마로서의 그녀는 퀴어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해 24년의 결혼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는 한 정당의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직과도 연결되어 성소수자 관련 정책에 목소리를 내왔다. 개인적으로는 두 아들과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두 아들의 결혼식을 모두 참석하지 않은 엄마>라는 글에서 아들들과의 단절된 관계, 그걸 회복하고 싶은 바람, 아들 결혼식 당일 눈물을 터뜨린 이유,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이야기된다. 결혼 전 저자는 원原가족과 24년을 살았다. 맏딸로서 오빠와의 차별을 감내해야 했던 그녀에게 세상은 지뢰밭이나 다름없었다. 큰딸을 양반집 규수에 현모양처로 키우겠다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자기 길을 만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녀. 지뢰를 밟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치열하게 맞붙는 삶을 택했고, 거기서 무수한 갈래길이 만들어져 공적/사적 자아로서 제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엔 타고난 성정도 있으리라. 이젠 아흔이 다 된 아버지와 예순이 넘은 딸은 서로 무릎 사이의 간격을 좁히며 때론 언어로, 때론 눈물로 서로를 이해해보려 시도한다. 사무쳤던 기억들은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려 하고 있다. 치열하게 중심을 잡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 책에 등장하는 자기 고백적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고백 서사가 아니다. 사적인 삶을 정치적으로 살아내려는 세월 속에서 나온 자기 성찰적 결들을 띤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관한 한 ‘사회적 쓸모’라는 공적 자아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처음에 천주교 운동을 통해 가난 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그녀는 진보정당 운동, 요양노동, 구술사 작업 등을 통해 빈곤을 견디는 힘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함께 내왔다. 노인들과의 만남은 특히나 각별하다. 마지막에 전 생애를 되돌아본다는 건 볕들지 않았던 삶에 서사를 구축하면서 제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다. 이야기는 힘이 있다. 꿰어지지 않았을 땐 몰랐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의 정체성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상처로 버무려진 관계투성이였다면 그것을 희석시키는 힘도 기억과 재해석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전작 『할배의 탄생』에서 어떤 독자들은 그리 도덕적이지도 않고 타인에게 열려 있지도 않은 존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삶들을 왜 기록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하지만 저자는 되묻는다. 유부남에게 속아 스물다섯에 낳은 딸 하나를 혼자 키웠고 아직도 밥벌이를 하는 70대의 간병인 할머니가 왜 비정상이란 말인가? 홀아비 목수가 노가다로 번 돈을 술집 여편네들한테 퍼주며 평생 공사장을 떠돌았기로서니, 그게 대체 누구에게 죄이며 피해란 말인가? 화신백화점을 구경 왔다 삼팔선과 임신으로 끈이 떨어진 열아홉 평양 처자가 남의 나라 전쟁에 팔려온 미군에게 몸을 팔며 새끼를 목사로 키웠기로서니, 뭐가 어쨌다고 왈가왈부들인가? “빈곤에 대한 동정은 혐오이자 자기 불안이다.” 빈곤과 무엇이든 할 거면 그것을 견디는 힘을 직시하면 된다. 고단한 노동으로 세상을 떠받치며 되는대로 나눠먹으며 질기게 살아온 삶들이다. 혹 세상의 희망이 있다면, 바로 이들에게서 나올 것이며, 걸고넘어지자면 가진 자들이 사회에, 지구 생태계에 끼친 해가 훨씬 막대하다. 또 다른 치열한 삶에 시선을 옮겨보자. 여기 평범하지 않은 자식과 부모가 있다. 고등학생 아들은 자기가 아무래도 여자인 것 같다고 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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