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독재

윌리엄 이스털리
5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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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일어나지 못한 논쟁 제1장 서문 제2장 두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 그들은 한 번도 논쟁하지 않았다 제2부 논쟁은 왜 일어나지 않았는가: 발전 사상의 실제 역사 제3장 옛날 옛적 중국에서는 제4장 인종과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의 운명 제5장 보고타의 어느 날 제3부 빈 서판에 쓸 것인가 역사에서 배울 것인가 제6장 가치: 개인의 권리를 위한 기나긴 투쟁 제7장 제도: 할 수만 있다면 억압하고야 만다 제8장 다수의 꿈 제4부 국가인가 개인인가 제9장 집인가 감옥인가? 국가와 이민 제10장 국가는 얼마나 중요한가? 제5부 의도적인 설계인가 자생적인 해법인가 제11장 시장: 문제 해결자들의 연합 제12장 기술: 방법을 모른 채 성공하는 방법 제13장 지도자들: 우리는 어떻게 인자한 독재자들에게 현혹되는가 제14장 결론 감사의 글 주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독재자는 성장을 견인하지 않는다. 독재자에게 자문을 해주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독재는 국가 발전에 필요한가 경제 발전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뒤집어 놓는 책. 저소득 국가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해 제프리 삭스와 논쟁을 벌였던 미국의 발전 경제학자 윌리엄 이스털리는 이 책에서 한 나라를 발전시키는 진정한 요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요인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어째서 사라지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이스털리에 따르면 발전은 개인의 권리가 자유롭게 행사될 때 일어난다. 독재자 집권기에 고도성장을 달성했던 한국의 역사와는 정반대로, 발전에 독재 권력은 필요 없다고, 그것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함으로써 오히려 발전을 가로막을 뿐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는 수많은 국가의 개인들이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명분으로 해당 국가를 통치하는 독재자들과 더불어 독재 정부에 자문을 하고 부족한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독재 권력의 횡포에 동참하는 게이츠 재단과 세계은행 등의 전문가 집단이 개인들을 억압하고 있다. 이스털리는 아시아의 한국과 중국, 싱가포르, 유럽의 이탈리아, 아프리카의 가나와 에티오피아, 아메리카 대륙의 콜롬비아와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의 역사를 근거로 삼아, 독재자와 전문가 집단의 정치적 이해가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개인들의 권리를 핍박해 왔다는 사실을 입증해 낸다. 동시에 발전은 독재자 덕분이 아니라 독재자의 굴레를 극복한 결과이며, 서로의 권리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확산된 곳만이 장기적으로 번영을 구가해 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권위주의적 발전 Vs 자유로운 발전 독재 권력은 어떤 방법으로 국가를 발전시키고자 하는가? 이스털리는 하이에크와 뮈르달의 주장을 대비시킴으로써 독재자와 전문가가 선호하는 발전 방식인 <권위주의적 발전>을 설명한다. 정부가 중앙에 필요한 전문가들을 지명하고, 이 전문가들이 대표자가 되어 무엇이 문제이고 시행해야 할 해결책은 무엇인지 정부에 알려 줌으로써 발전을 성취해 나가는 형식이 이것의 메커니즘이다. 전문가들의 판단이 사회에 강제되기 쉬운, 즉 전문가의 독재가 손쉽게 일어날 수 있는 구조를 띤다. 이것의 반대는 <자유로운 발전>이다. 정부와 전문가 대신 개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행사함으로써 발전을 성취해 나가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미국, 영국 등 서양의 부국에서는 자유로운 발전이 득세했다.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던 탓에 권위주의적 접근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그 밖의 세계에서는 권위주의적 노선이 발전의 원리로 자리매김했다. 정치적 이해 때문이었다. 20세기 중반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지에서 식민지적 특권을 누리고 있던 영국과 미국의 정부와 전문가들은 피지배 국가에 대한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자 발전을 내세웠다. 자신들이 보유한 앞선 기술력으로 사회를 번영시켜 주겠다며 피지배 지역에 대한 정치적 강압을 물질적 발전으로 포장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피지배 국가에서 권력을 모으던 독재자에게도 아주 솔깃한 것이었다.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더 많은 권력을 얻는 데 아주 유용한 명분이었기 때문이다. 정치적 특권을 유지, 강화하려 했던 이들의 발전 방식은 현재의 세계은행, 게이츠 재단 등의 서구 전문가 집단에게까지 전승됐다. 권위주의적 발전 논리가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고 다양한 집단에 의해 애용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실상 이 논리가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자신의 정치적 잇속을 위해 개인들의 권리만 침해할 뿐이었다. 전문가의 한계 이스털리에 따르면 게이츠 재단이나 세계은행 같은 전문가들에게는 특정 지역의 발전을 도모할 만한 충분한 지식이 없다. 사례를 보자. 세계은행은 예전에 아프리카 남부의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세계은행 전문가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곳 토양이 굉장히 척박하다는 점이었다. 현지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농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좀 더 좋은 기회가 있는 광산 노동자로 일하기를 원했다. 이처럼 특정 지역의 발전을 위한 지식은 내부자들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부적이기 때문에 외부 전문가들이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도록 외부 전문가들을 고무할 유인이 없다는 것이다. 이스털리는 이것을 동기 유발의 문제라고 정의한다. 에티오피아를 원조하는 게이츠 재단을 보자. 게이츠 재단은 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티오피아 정부에 원조금을 줬는데, 그 기간에 어린이 사망률이 대폭 감소되었다는 통계를 보고 기뻐했다. 하지만 그들이 본 어린이 사망률은 부정확하기로 악명 높은 통계였다. 더불어 에티오피아 정부 통계청은 나라의 출생과 사망을 전수 조사로 폭넓게 기록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사실상 사망률이 그들이 만족할 만큼 떨어졌는지 알 수 없고, 그들의 원조가 효과적이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실제로 효과는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티오피아의 독재자 멜레스 제나위가 외부 원조를 이용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부정 선거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이츠 재단과 같은 서구의 전문가 집단은 위처럼 잘못된 원조를 하더라도 해당 정부로부터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효과가 있는 방안을 내더라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의 실패를 예방할 동기도 그들의 성공을 고무할 유인도 없으니, 그들에게 국가를 발전시켜 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에 가깝다. 고도성장은 독재자의 능력 덕분인가 독재자가 국가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은 최근에 일어난 저성장의 대부분이 독재자 집권기에 일어났다는 점만 알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김일성과 세습 후계자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 그 밖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독재자들이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독재자가 국가를 발전시킨다고 믿는다. 중국의 덩샤오핑, 싱가포르의 리콴유, 한국의 박정희 등 고도성장을 일으킨 독재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독재자를 신뢰하는 경향이 강한 이유는, 너무 최근의 자료만을 근거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장기간을 두고 보면 민주주의 국가의 성장 실적이 더 뛰어나다. 최근에 급속도로 성장한 중국과 지금은 완만한 성장률을 보이지만 훨씬 이전부터 발전해 온 미국을 비교해 보면 쉽게 파악된다. 이스털리는 대니얼 카너먼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을 활용해 왜 우리가 발전을 독재자들의 공으로 돌리는지 분석한다. 카너먼에 따르면, 우리는 서로 다른 확률을 자주 혼동한다. 《성장의 기적은 대부분 독재자 하에서 일어난다》라는 진술과 《독재자들 대부분은 성장의 기적을 이룩한다》라는 진술을 혼동하는 것이다. 성장의 기적은 보통 가난한 나라에서 일어나고 가난한 나라는 대부분 독재자가 통치하므로 전자는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후자는 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저성장을 기록한 독재자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집권기와 호황기가 조금이라도 겹치면 집권기 경제 성장률이 상승하기 때문에 고성장의 원인을 특정 독재자로 여기기 쉬워진다. 하지만 고도성장을 달성했다고 평가받는 독재자의 집권 기간과 연간 성장률 자료를 종합해 보면, 호황기는 보통 독재자들의 임기 전에 시작됐다가 임기 종료 후에 끝난다. 즉, 호황은 독재자의 능력과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도 똑같다.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독재자가 필요하다는 관념이 있었지만, 이것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이다. 오히려 독재자는 발전은커녕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수한 개인들의 권리를 억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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