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13세기의 몽골 제국에 대한 생생한 증언 / 마르코 폴로보다 먼저 몽골 제국을
다녀간 두 수도사의 여행기를 통해서 드러난 몽골 제국
1230년대에 몽골의 기마군단의 갑작스런 출현과 정복으로 유럽의 기독교 세계는 경악과 공포에 떨게 되었다. 그래서 이 미지의 민족이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 수도사들이 파견되었다. 한 세대 뒤에 중국을 다녀간 마르코 폴로의 선구자들인 셈이다. 특히 카르피니와 루브룩이라는 두 수도사가 몽골 제국의 수도를 방문하고 돌아와서 남긴 글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개되는 흥미진진한 여행기이자, 선교 보고서이며, 동시에 진귀한 가치를 가진 역사적 기록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이 두 수도사와 동행했던 다른 수도사들의 기록까지 들어 있어 13세기 초의 몽골 제국에 대한 수도사들의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주요 내용
13세기 초반 몽골의 침략으로 유럽은 공포에 떨게 되었다. 칭기스 칸의 큰아들 주치의 장자인 바투의 서방 원정군은 러시아를 치고 폴란드로 들어와서 유럽 연합군을 괴멸시켰고, 헝가리의 국왕을 패주시켰다. 헝가리 국왕은 교황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당시 유럽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와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의 반목으로 인해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몽골에 대한 공포는 점점 커져갔다. 교황은 직면한 전쟁 위험에 앞서 수도사를 몽골 제국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2명의 수도사에게 각각 친서를 주어 몽골 제국으로 향하도록 했다.
교황이 보낸 2명의 수도사 중 한 사람이 바로 카르피니이다. 카르피니는 1245년 4월 16일 리옹을 출발했다. 1246년 2월 3일, 키예프를 출발한 지 두 달 뒤인 4월 4일 마침내 볼가 강 부근에 있던 바투의 군영에 도착했다. 바투는 카르피니 일행을 마침 그해 여름에 열릴 구육의 즉위식에 참석시키기 위해서 매우 빠른 속도로 카라코룸으로 이동시켰다. 몽골 제국의 효율적인 역참제도를 이용하여 카르피니 일행은 100일 만에 3,000-4,000킬로미터를 여행하여 마침내 7월 22일 카라코룸 부근에 도착했다. 카르피니는 8월에 열린 구육의 즉위식에 참석했고, 교황의 친서를 구육 칸에게 전달했다. 카르피니 일행은 11월 13일에야 귀국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겨울 내내 이동해서 1247년 5월 9일 마침내 바투의 군영에 도착했다. 6월 9일에는 키예프로 들어가서 주민들의 환영을 받았고, 11월에 최종 목적지인 리옹에 도착하여 교황을 알현하게 되었다. 리옹에서 키예프까지 2,500킬로미터, 다시 키예프에서 카라코룸까지 4,000킬로미터 거리를 왕복했으니, 모두 1만3,000킬로미터의 대장정을 완수한 셈이다. 카르피니는 여행하면서 자신이 겪은 일들과 본 것들 그리고 몽골 제국에서 체험한 일들을 정리하여 『몽골의 역사』를 작성했다.
윌리엄 루브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그는 국왕 루이 9세의 후원으로 1253년 3월경 몽골 제국으로 향했다. 루브룩 일행은 7월 31일에 바투의 아들인 사르탁의 둔영에 도착했다. 며칠 뒤 그곳을 떠나서 다시 동쪽으로 여행을 계속하여 8월 초순에는 드디어 볼가 강가에 있는 바투의 군영에 도착했다. 바투는 국왕 루이가 보낸 편지를 번역하게 하여 읽고 또 그의 여행 목적을 물어본 뒤 루브룩 일행을 뭉케 칸이 있는 카라코룸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마침내 12월 27일에 뭉케의 둔영이 있는 곳에 도착한 루브룩은 1254년 1월 4일 뭉케와 최초의 회견을 한 뒤 칸의 둔영을 따라 함께 이동을 시작했고, 4월 5일에는 카라코룸으로 들어갔다. 루브룩은 7월 10일경에 카라코룸을 떠나서 귀환의 길에 올랐다. 그는 1255년 초에 서아시아에 도착했다. 그 후 국왕 루이를 알현하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했고, 국왕에게 보고하는 형식으로 『몽골 기행』을 작성했다.
마르코 폴로보다 먼저 몽골 제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 두 수도사의 글은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가진다. 몽골 제국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들의 풍습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이들의 글은 독자들에게 13세기 몽골의 진면목을 낱낱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