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시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정 동안 마주치는 순간 이전의 순간, 자유 이전의 자유 희곡과 시를 오가며 시의 지평을 넓혀 온 이지아 시인의 신작 시집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가 민음의 시 318번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 제4회 박상륭상을 수상하며 시적 영토의 고유함을 증명한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이지아 시인에게 시 쓰기란, 그가 자서에서 밝히듯 “BC 390년에서부터 날아온 시의 구름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는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에 맞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시의 시원을 좇는다.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는 시인이 시를 쓰고 있는 현재와 시가 탄생한 기원전의 어느 때라는 긴 시간이 시편마다 함께 녹아든 독특한 시간성 위에 서 있다. 일상의 무게로 점철된 삶에 찾아와 준 시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오직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기원부터 좇는 시인의 태도에는 경외감과 동시에 찾아오는 슬픔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삶을 이루는 소중한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렇게 일상에 잠식되어 간다. 이지아의 시는 지독한 일상의 무게를 떨치고 시를 마주한다. 그때 비로소 찾아오는 기이한 자유가 있다. 어쩌면 자유 이전의 무엇일지 모르는 자유가. ■ 거꾸로 걷기 텍스트,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생각 내 식탁 위의 바게트, 바게트 연구, 왜 오늘의 아침 식사는 나무보다 바게트에 더 관심이 가는지 행여, 텍스트의 구조와 뼈대, 얼마든지 비극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무질서, 공포, ―「번역 불가능한 혼합인격과 극시」에서 모든 예술은 형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텍스트가 시가 될 수 있을지라도 시라는 형식에 대한 거대한 합의 없이 시가 완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손에 쥐어진 모든 시편들은 형식에 대한 인식과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쓰였다. 형식은 이지아 시인에게도 오랜 화두였다.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에는 “서사시의 형식으로”, 혹은 “극시의 형식으로”라는 부제를 단 장시들이 등장한다. 언뜻 ‘나의 시’를 위한 최적의 형식은 무엇일까라는, 예술가들의 오랜 고민을 반복하는 듯 보이는 그의 시편들을 가만 들여다보면 그 방향성이 정반대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지아는 형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시를 완성하고자 하기보다는 형식 그 자체를 탐구하기 위해 거꾸로 길을 걷는다. “식탁 위의 바게트”에 대해 쓰기보다는 “왜 오늘의 아침 식사는 나무보다 바게트에 더 관심이 가는지” 그 근원을 향하는 시. 불확실로 점철된 이 여정은 때때로 “무질서”와 “공포”에 휩싸이지만 시인은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 차창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풍경들처럼 그렇다면 누가 이걸 다 정해 놨을까 마음대로를 산소라고 배웠지 커 가는 내내 도저히, 안되는 건 멈춰야 한다고 하지만 다시는 갖지 못할, 나는 요컨대 자유 이전의 그것을 알아 ―「아기 미소, 아기 자유」에서 시적 여정은 끝날 기미가 없다. 목적지가 너무 멀리 있어서라기보다는 목적지에 다름 아닌 “다시는 갖지 못할” “요컨대 자유 이전의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화자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아기 늑대와 걸어가기』는 여행이 무한히 이어질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알고 출발한 여행자 특유의 단호함과 여유를 등에 업은 채 수많은 장면들을 보여 준다.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빠르게 전환, 변환”되는(문학평론가 양순모) 이미지들은 개체가 아닌 연속성에 그 의미가 있다. 이지아의 시는 차창 밖으로 수많은 풍경들이 쏟아져 내리는 기차를 탄 것처럼 질주한다. 우리는 승객이 되어 하나의 장면과도 같은 시편들을 연쇄적으로 읽어 내며 그의 시가 새롭게 정의한 시간성의 의미를 가늠해 본다. 끝을 향해 내달리는 것이 아닌, 무한히 이어지는 여정 동안 마주치는 장면들을 만나기 위한 시, 그리고 시의 시간. 낯설고도 친근한 아기 늑대와 동행하며 시의 시원으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해 보자. 뜻밖의 장면들과의 만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