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마작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본래 우리 엄마의 자리였던 동쪽,
모든 것이 시작한다는 그곳에”
김하나, 정혜윤 작가 추천
백 년 뒤에도 유효할 엄마와 나의 이야기, 『조이 럭 클럽』
전 세계 17개 언어로 번역되고 77주 동안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며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네 모녀의 이야기가 다시 돌아온다. 중국계 미국인 이민 2세대 여성 작가 에이미 탄의 장편소설 『조이 럭 클럽』은 오늘까지 대표적인 여성 문학이자, 디아스포라 문학 작품으로 손꼽힌다. 웨인 왕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엄마와 딸은 아마 평생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아주 희미한 이해의 실마리에 가닿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그 지점에 가슴 벅찬 감격과 숨 막힐 정도로 압도적인 생명력의 근원이 있다.
소설 속 엄마들은 중국이 전쟁과 사회 격변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다. 느릿한 기선을 타거나, “홍콩, 베트남, 필리핀, 하와이 등 정말 오만 군데를 다”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서. 그때 그들의 가슴에는 희망이 있었다. ‘미국에 가면 날 닮은 딸을 낳을 거야. 그곳에서는 늘상 풍족할 테니 슬픔으로 배 채울 일이 없고, 그 애를 얕잡아볼 사람도 없어. 그 애가 완벽한 미국식 영어만 하게끔 가르칠 테니까.’
‘조이 럭 클럽’은 그렇게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엄마들의 마작 모임이다. 조이 럭 클럽에서 그들은 배 터지게 먹고, 웃고, 마작을 한다. 다시 배 터지게 먹고, 웃고,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다. 지나간 과거의 좋은 날들과 앞으로 찾아올 더더욱 좋은 날들에 대하여. 비록 가슴속에는 중국에서 겪은 가슴 아픈 사연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으나, 그 희망과 기쁨이 있었기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여자는 늙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딸이 있다.” 엄마의 바람대로 제대로 된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슬픔보다는 코카콜라를 더 많이 마시며 자란” 딸, 엄마의 사연을 알지 못하고,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정체성 사이에서 다소 혼란스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딸이. 엄마는 딸이 중국과 미국의 좋은 점만을 추려 제 것으로 삼기를 바랐으나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한편 미국에서 나고 자란 딸은 중국에서 온 엄마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때까지도 엄마가 딸에게 차마 자신의 사연을 제대로 말해주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것들은 모두 너무나도 아프고 슬픈 이야기들이었으므로. 그래서 이제 딸의 눈에 비친 엄마는 “가게 주인들과 옥신각신하며 물건 값을 깎고, 공공장소에서 이를 쑤시고, 레몬색과 연분홍은 겨울옷으로 좋은 색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기인’일 뿐이다. 엄마가 중국어로 말하는 것을 견딜 수 없지만, 엉터리 영어로 무언가 설명하려 드는 것도 한심스럽다. 엄마와 딸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만 같고, 실제로도 그랬다. 엄마가 중국어로 말하면 딸은 영어로 대답했으니까. 하지만 삶의 중요한 시기와 여러 혼란스러운 순간들 속에서는 어김없이 엄마를 생각하고 마침내 엄마의 진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는 순간에 도달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딸은 정말 엄마의 자리에 앉아, 온전히 엄마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을까? 과거에 엄마를 살게 했던 소망이 오늘의 딸을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이 될 수 있을까? 소설 『조이 럭 클럽』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어머니에서 딸에게로 이어져온 삶의 역사
그 모든 이야기 속에서 빛나고 있는 소망과
넘쳐 흐르는 해류처럼 강인한 생명력
총 4장으로 이루어지는 소설은 네 명의 딸과 세 엄마의 시점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세상을 떠난 엄마 수위안의 이야기는 그의 딸 징메이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수위안은 과거 중국에서 전쟁 중 난리통에 잃어버린 두 딸을 평생 찾아 헤맸다. 그리고 엄마가 죽고 없는 이제, 징메이는 엄마의 두 딸이 중국에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웨벌리는 태어난 이래로 줄곧 엄마와 마치 체스를 하듯 수싸움을 벌여왔던 것 같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흑이고 그는 백이다. 웨벌리가 아무리 전략을 짜도 말판을 건너 나를 향해 거침없이 진군해 오는 엄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차이나타운에서 태어난 ‘위대한 미국의 최연소 체스 챔피언’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세무 전문 변호사가 된 지금까지 쭉. 하지만 사실 그의 엄마 린도가 바라는 것은 그저 딸이 자신의 이야기를 정확히 이해해주는 것뿐이다.
로즈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통보받고 혼란스러워한다. 엄마 안메이는 그런 딸에게 충고한다. 네 생각을 똑바로 말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주어진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된다고. 자신도 어린 날 하마터면 그렇게 될 뻔했기에 잘 알고 있다고.
레나의 결혼 생활은 위태롭다. 연애 시절부터 ‘더치페이 아닌 더치페이’를 했던 그들은 결혼 뒤에도 그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레나는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생각한다. ‘남편이 이번 주에 차량용품을 사는 데 100달러를 썼으니 내가 50달러를 줘야겠네. 아, 내가 50달러어치 원예용품을 샀으니까 25달러만 줘도 되겠구나.’ 비록 남편의 연봉이 레나보다 일곱 배나 높지만, 모든 비용을 철저히 반반씩 내는 것이 ‘공평’이니까. 레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생활에 이유 모를 회의를 느끼면서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해 힘들어한다. 범띠 엄마 잉잉은 그 모습을 보며 다짐한다. 스스로도 외면해왔던 아픈 과거를 딸에게 모두 들려주겠다고. 그로써 딸에게 범의 기운을 일깨워주겠노라고.
네 모녀의 이야기를 인물별로 각각 들려주는 구성을 취하지만, 읽다 보면 결국 모든 이야기가 하나로 통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이들의 이야기는 결코 픽션에 머물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도 연결된다. 결국 『조이 럭 클럽』은 여성의 계보로 이어져 내려온 삶의 역사다.
천 리 너머에서 온 깃털과
눈물을 마시고 살아가는 까치,
금색 면과 검은 면을 동시에 지닌 호랑이가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신화의 세계
『조이 럭 클럽』을 쓴 작가 에이미 탄은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는 순간, 작가로서의 삶이 열렸다고 회고한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이 세상 모든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보고이자, 파도처럼 강한 힘이 도사리고 있는 신비의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천 리 너머에서 온 깃털’ ‘연못을 들여다보던 어린 소녀가 자라 엄마가 되고 다시 그 딸이 연못을 들여다볼 때까지 그 속에 살았다는 거북이’ ‘눈물을 마시고 자란다는 까치’ ‘모든 삶을 집어삼켜버리는 강과 그런 강의 흐름까지 바꾸는 바람’ ‘자신의 금색 면을 숨기며 나무 사이에 숨은 호랑이’ 등 여러 동양 신화적 모티프를 차용한다. 그 위에 이 세상에서 제일 강인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날실과 씨실처럼 하나로 얽혀든다. 그렇게 이루어낸 생이라는 무엇보다 강렬한 신화가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한다. 깊은 영감과, 삶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다시 계속 살아내게 하는 힘이 바로 『조이 럭 클럽』에 있다.
김필립
4.0
네 모녀의 이야기를 한 번씩 듣고 나면 세상 모든 종류의 모녀들이 조금씩 담겨 있다.
ㅈㅐ
4.0
엄마와 딸이란 도대체 뭘까. 왜 모든 책에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언젠가 겪어본 일처럼, 내 기억인 것처럼 느낄까. 책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엄마가 보고 싶고 가족이 그리워진다. 가까이 있으면 대체로 지긋지긋하고 금세 미워지면서 이렇게 멀리 있을 땐 얼마나 애틋한지. 닳아지지 않는 서로의 모서리에 찔려 통증 호소하면서도 다시 닿고 싶어하다니. 그런 일을 평생 동안 반복하다니. 얼마나 괴상한 관계인가. 그런 마음은 얼마나 징그럽고 사랑스러운가….
발등튀김
3.5
지난 봄에 종영한 넷플릭스 두뇌 서바이벌 프로그램 <데블스 플랜 2>의 출연진이자 아시안-아메리칸 배우이자 다독가로 알려진 ‘저스틴 민’의 인생책 중 하나로 꼽힌 <조이 럭 클럽>. 산뜻한 분위기의 소설 제목은 역사적 혼란기였던 1940년대에 중국으로부터 미국으로 이민 온 후 새로운 규칙에 적응하느라 진땀을 빼던 이들이 모이는 한 판의 마작 게임장이자, 중국식 규칙이 통용되는 작은 세계를 뜻한다. 이 모임은 친정집에서 아주 향기로운 붉은 나무로 만들어진 마작 테이블을 챙겨온 ‘수위안 우’에 의해 시작 됐다. 그 시절 수위안과 이웃 여성들은 “뭐가 더 나쁜 일일까? 올바르게 슬픈 얼굴을 하고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나를 위해 행복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라는 질문을 서로 주고 받는다. 녹록지 않은 이민자 생활 속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자, 일단 모임 이름부터 밝게 짓는다. 수위안 우의 딸인 ‘징메이 우’는 영어에 “조이 럭(joy luck)” 같은 말은 애초에 없다는 걸 안다. 중국인의 피가 몸에 흐르지만 태어나보니 미국이었고 미국 사람들과 상호작용 하며 자란 징메이는,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엄마의 과도한 기대와 낙관을 읽는다. 그 놀이판은 철저히 엄마 세대만의 유희다. 하지만, 엄마 수위안이 죽은 뒤 아빠는 딸 징메이에게 엄마 대신 조이 럭 클럽의 신규 멤버가 되어달라고 권한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너무 화려하고, 미국 파티에서 입기에는 너무 이상할 것 같은 옷”을 입은 마작 멤버들을 보며 징메이는 생각한다. 다들 아는 얼굴들이구먼. 거기에는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아줌마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포옹이나 입맞춤이 아니라 뜨거운 김이 오르는 만두나 오리 모래집, 게 따위를 먹으라고 엄히 권함으로써 사랑을 표현”하는 이들이다. <조이 럭 클럽>은 마작 모임을 함께하던 엄마들, 그리고 모임 구성원은 아니지만 근황과 생존이 엄마들의 입을 통해 빠짐없이 전해지는 딸들의 시선을 서로 교차하면서 옴니버스식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네 쌍의 모녀가 등장하는데 딸들은 번번히 엄마들을 실망시키고, 엄마들은 딸들을 향해수준급으로 고압적이다. 그 갈등의 시간을 ‘재미(joy)’ 있게 회고하며 자신이 ‘운(luck)’이 좋은 사람이라고 결론내리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일것이다. 그러나, 마작 테이블이 되기 전의 무엇. 아주 향기로운 붉은 나무에서 뻗어나온 잔뿌리들이 있다. 이 소설은 그걸 깨닫게 만든다. 그게 바로 우리 같은 딸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 안에도 분명 문법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말, ‘조이 럭’의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
1.5
뭔가 나랑 안맞아 근데 공감 돼 근데 또 심금은 안울려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