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의 매일에 태연히 스미어 일상의 소란을 삼키는 초월적 순간들 2019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조용우의 첫 시집 『세컨드핸드』가 ‘민음의 시’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들뜸이나 과장이 없이 자기의 세계를 거머쥐고 들여다보는 시선의 깊이”가 놀랍다는 데뷔 당시 심사평처럼 조용우는 그만의 깨끗하고 묵묵한 시 세계로 첫 시집 출간 전부터 2022년 ‘문지문학상’ 후보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주목을 받아 왔다. “조용우는 스스로를 최대한 기꺼이 작게 만든다. 요란과 과장 같은 건 절대 금물이다.”(임솔아 시인)라는 추천의 말은 조용우의 시 세계가 데뷔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얼굴로 오래도록 쌓여 왔음을 예상케 한다. 조용우 시는 미동조차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고요로 오히려 이목을 끈다. 모두 바삐 오가는 거리 위에 우뚝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한 번씩 돌아보기 마련이듯 그의 고요는 가만히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에 대해 침묵하는지, 무엇을 기다리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렇게 서 있는 것인지 어느새 먼저 묻게 만든다. 마침내 신중히 말을 고르던 자가 입을 연다. 『세컨드핸드』는 그 첫 번째 이야기다. ■ 초월적 순간이 일상적인 현실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 주스, 요거트, 구름, 구름들 ―「세컨드핸드」에서 『세컨드핸드』의 제목을 직역하면 ‘두 번째 손’이 되듯, 조용우의 시적 화자는 어느 행렬의 가운데 들어와 있다. 첫 번째에 서서 행렬을 이끌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뒤로 처져 전체를 가늠해 보기 어렵지도 않은 두 번째의 자리.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상의 행렬을 한시도 멈출 수가 없기에, 그는 앞으로 쉼 없이 걸으면서도 자신의 앞과 뒤를 살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렇게 내민 손에 때때로 이상한 것이 포착된다. 시장에서 사 입은 오래된 중고 코트에 들어 있던 식료품 쇼핑 목록 끝에 천연덕스럽게 “구름, 구름들”이 적힌 것을 목격하거나, 식당에서 국수를 먹다 고개를 드니 “유리문 바깥 식당 안을 들여다보는/ 키가 큰 천사 몇몇”을 발견하는 식이다. 도무지 이곳에 속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은 그렇게 화자의 앞과 뒤에 슬며시 자리한다. 침투의 방식이 무척이나 고요한 덕분에 화자는,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것을 하나의 일상으로 이해하게 된다. 초월적 순간들을 일상의 바로 곁에 두기. 이는 조용우가 지난한 현실을 구성하고 겪어 내는 방법이다. ■ 고요하고 뜨거운 기다림 우리는 발소리를 죽이고 기다린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이런 생활이 익숙하다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더 잘 드는 도끼가 필요할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서 조용우는 시를 통해 미래에 대한 단서를 여럿 제공한다. 미래는 가까이에 있으며, “배가 홀쭉”하다. 또한 미래는 다가가면 “그르렁 소리를” 내며, 계속 “끓고 있는 소리”를 낸다. 끓는 소리로 존재의 기미를 끊임없이 내비치면서도 그르렁 소리로 접근을 막는 미래에 대해서라면,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조용우의 화자들은 끈기 있게, 한편으로는 별수 없이 기다리기로 한다. 미래가 너무 놀라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이고” 이제는 익숙해진 기다림을 지속해 나간다. 오래 이어질 기다림이 결코 풍족하고 안락할 리 없으므로 화자들에게는 “잘 드는 도끼”가 한 자루씩 쥐어진다. 시인 강성은이 조용우의 시를 두고 “소리도 미동도 없”으며 “여전히 뜨겁”다고 평한 지점은 미래에 대한 시인의 이와 같은 태도에 있다. 우리는 다소 사납게 끓고 있는 미래 곁에서 숨을 죽이며, 마침내 미래가 다 끓고 완성되어 우리에게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우리를 해하려는 것들에게는 도끼날을 세워 가면서, 초월적인 존재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