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생생하게 들려 주는
복잡계 물리학과 과학의 의미!
-김범준(성균관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조르조 파리시는 비범한 과학자다.”
-카를로 로벨리
(패리미터 연구소 객원 연구 의장,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저
언제나 더 많은 질문, 더 많은 도전을 찾아 헤매었던
한 물리학자의 명석한 마음속으로 떠나는 여행
인류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 왔던 생각이 하나 있다. 이 세상을 이루는 참된 이치인 진리(眞理)가 우주와 대자연의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작위와 무질서를 특징으로 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이며, 진리도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평생의 연구를 통해 밝혀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원자에서 행성까지 물리계의 무질서와 변동 간 상호 작용, 무질서한 물질과 무작위 과정에 대한 기여와 공로”로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르조 파리시(Giorgio Parisi) 이탈리아 사피엔차 대학교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지구 기후의 물리학적 모형 연구를 통해 복잡계에 기여한 마나베 슈쿠로(真鍋淑郎), 클라우스 하셀만(Klaus Hasselmann)과 공동 수상했다.)
복잡계는 무질서한 상호 작용을 통해 많은 수의 행위자(agent)가 연결된 계를 말한다. 이때 행위자는 원자에서부터 일종의 합금인 스핀 유리(spin glasss), 신경 세포, 유전자, 단백질, 사람이나 동물까지 실로 다양하다. 상대성 이론으로 뉴턴이 해결 못 한 우주의 시공간에 담긴 비밀을 풀고, 양자 역학으로 상상도 못 했던 불확실성의 세계도 정복한 물리학자들의 쾌진격도 1960년대 이후 과학계 곳곳에서 분출하는 복잡계라는 난제에 가로막혀 멈추고 말았다.
원래 입자 물리학자였던 조르조 파리시는 자신이 원래 풀고 있던 이론 물리학적 문제를 풀기 위해 복잡계를 다룬 통계 물리학적 방법론을 들여다보다가, 1980년경 스핀 유리처럼 무질서하고 복잡한 물질들의 상전이 같은 기묘한 거동을 다루는 복제 기법(replica method) 같은 방법론을 발견하고 개발함으로써 통계 물리학뿐만 아니라 수학, 생물학, 신경 과학 및 기계 학습과 같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완전히 무작위적인 갖가지 재료와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길을 열었다.
이번에 ㈜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무질서와 질서 사이에서: 한 복잡계 물리학자의 이야기(In Un Volo Di Storni: Le Meraviglie Dei Sistemi Complessi Copertina Flessibile)』는 이탈리아인 역사상 스무 번째 노벨상 수상자이자 이탈리아 물리학자로는 여섯 번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조르조 파리시의 첫 번째 대중 과학서이자 그의 첫 한국어판 단행본이기도 하다. 동시에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와 관련된 책 가운데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기도 하다.
파리시의 처음이자 최신의 에세이인 이 책은 그가 1966년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입학 후 68 혁명의 한복판에서 맛보았던 격변의 기억, 수수께끼 같은 상전이 현상에 쏟았던 관심, 스핀 유리를 분석하는 복제 기법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던 과정에 대한 고찰, 25세의 나이에 노벨상을 코앞에서 놓쳤던 경험, 그렇지만 결국 노벨상 수상자로 우뚝 서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을 담은 8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이탈리아 외에도 미국, 영국,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루마니아 등지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는 이 책은, 과학을 실험실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흥분 넘치는 발견의 여정으로 독자를 이끈다.
찌르레기 떼에서 스핀 유리까지
파리시가 회고하는 물리학자로서의 자신
우리 연구는 지금까지 동물의 무리나 떼, 군중(群衆) 연구에 사용되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상호 작용이 거리에 의존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우리 연구 이후로 상호 작용은 언제나 이웃한 존재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아마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수천 마리 새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동시에 그 자료에서 동물의 행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리라. ―30쪽에서
1장 「찌르레기의 비행」에서는 파리시가 2000년대 초 로마에서 진행한 찌르레기 떼의 행동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원제 “In Un Volo Di Storni”가 직역하면 “찌르레기의 비행에서”인 것처럼 파리시의 대표 연구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많은 대중 과학 콘텐츠에서 복잡계 하면 항상 나오는 새 떼의 비행 모습이 그의 연구에서 유래했다. 물리학자와 조류학자, 경제학자의 연합 팀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통계 물리학의 개념, 사고의 틀과 최근 급격히 발전한 영상과 데이터 처리 기술의 놀라운 결합을 이루어 냈다. 과학자의 머릿속에서 상상한 단순한 규칙으로 이루어졌던 기존 모형에 비해 실제로 새 떼가 따르는 규칙을 밝힌 파리시 연구진의 연구는, 복잡계 물리학이 다른 과학 분야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멋진 사례이다.
예전에는 국제 전화 요금이 엄청났다.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전화하는 데 분당 1,200리라였는데, 내가 연구원으로 입사해 받은 첫 월급이 12만 5000리라였다. 그러니까 1시간 30분 정도 통화하면 한 달 월급이 다 날아가는 셈이었다. 팩스는 존재도 하지 않았고, 대신 물리학부에는 굉장히 무겁고 불편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신 타자기(사실상 전신 단말기)가 있었다. ―42쪽에서
2장 「50여 년 전 로마의 물리학」에서 그는 자신이 로마 사피엔차 대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1966년으로 시간을 되돌려, 요즘 세대라면 상상하기도 힘들 연구 환경과 그 속에서도 이뤄낸 이탈리아 물리학의 ‘영광의 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빠르게 언급되었다 사라지는 많은 과학자의 이름에 어질어질할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는 책말미에 추가된 한국어판만의 「인명 찾아보기」가 독자를 도와줄 것이다.
고해상도 현미경으로 물을 관찰한다고 생각해 보자. 약간 구부러진 아령 형태의 분자들이 서로를 움직이고 끌어당기고 돌리고 멀어지며 빠른 속도로 진동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물에 대한 분자 차원의 설명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는 물은 특정한 온도에서는 냉각되어 응고되고, 또 어떤 온도에서는 증발해 기체가 된다. 각 원자의 행동이 계 전체의 거동으로 전환되는 방법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문제다. ―61쪽에서
3장 「상전이, 혹은 집단 현상」은 청년 시절 파리시가 천착했던 상전이 연구를 소개하고 4장에 등장할 스핀 유리 이론의 이해를 도울 배경 지식을 설명하는 문단이다. 여기서 나온 이징 모형(Ising model)은 통계 물리학에서 상전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널리 이용되고 있는 모형이다. 제목과 초록에 ‘이징 모형’이 들어간 논문이 한 해에 1만 편을 훌쩍 넘게 여전히 출판되고 있을 정도로 널리 애용되고 있다.
연구자 인생 최고의 성과는 가끔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한다. 다른 길로 가려던 참에 마주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다. 내가 물리학에 한 공헌 중 가장 크다고 여겨지는 것이 스핀 유리 이론인데, 바로 입자 문제 연구 중에 개발한 것이다. ―79쪽에서
4장 「스핀 유리, 무질서의 도입」은 202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사유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스핀 유리 모형에서 이뤄낸 파리시의 업적을 당사자에게 직접 들을 놀라운 기회이다. 스핀 유리는 비자성 물질에 자성(磁性)을 띤 불순물을 섞은, 그 자체로는 사실상 산업적 용도가 거의 없는 금속 합금의 일종을 말한다.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스핀 유리의 자성 원리를 풀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구조 내의 미세한 철 원자들은 완전히 무작위적인 형태로 정렬하는 것처럼 보였다. 파리시는 그 패턴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