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국의 국가 상징 이미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국가 상징 이미지’란 말 그대로 국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가 그 대표적인 이미지로, 지금의 우리에게는 새삼스레 그 의미를 물을 만한 가치가 없을 만큼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19세기 말 근대의 초입에서 창안된 근대적인 이미지들로, 모두 각각의 특수한 맥락에서 만들어져야만 했던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국가를 상징하는 이 같은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군주의 통치권을 나타냈던 용(龍)과 봉황이 있었을 뿐이고, 그조차도 모두 중화 문화의 상징체계에서 비롯된 전근대적 이미지였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한국의 국가 상징 이미지의 탄생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것들의 의미와 그 변천 과정을 꼼꼼하게 밝혀내고 있다.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 이미지는 조선이 근대국가로 성립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에 편입하기 위한 치열한 상징 투쟁의 산물이었다. 이를테면 태극기의 경우 현재까지도 여러 ‘창안설’이 존재할 만큼 만만치 않은 제정 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열강이 간섭할 만큼 긴박한 정치적 역학 관계 또한 작동했다.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 이미지는 조선/대한제국이 근대적인 여러 제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도 필수적인 장치로 활용되어, 근대적인 일상과 시각문화의 풍경을 일신했다. 나아가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시기에는 단순한 국가 상징 이미지를 넘어 또 다른 의미들을 획득하기도 했다. 시각적 기호체계에 기반한 교류와 근대적인 제도의 시각적 장치 돌이켜보면 조선은 19세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주로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한자 문화권에 기반해 교류해왔다. 그런데 19세기 말 개항을 계기로 조선/대한제국은 중국과 일본 이외의 다른 많은 나라와 교류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그동안 “한자를 매개로 공유했던 문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했다.”(8쪽) 근대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 문자를 통한 교류 외에도 ‘국가 상징물’이라는 시각적 기호체계에 기반한 교류를 요구했다. 이러한 요청에 가장 신속하게 대응해 제정한 것이 바로 태극기였다. 태극기는 대외적으로 ‘Corea/Korea’의 존재와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각인시켜야 했고, 국내적으로도 “국가의 재정비에 대한 인식과 통합을 이끌어낼 필요성”(11쪽)에 부합해야 했다. 1장과 2장에서는 태극기가 국기로 창안되는 배경, 태극기 제정을 둘러싼 당시의 논의, 태극기가 국내외에서 사용된 방식과 그에 대한 시각적 인식 및 반응 등을 살펴보고 있다. 태극기라는 국가 상징물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에, 서구의 근대 국민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국가 상징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맥락과 시기 및 성격이 우리와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도 개괄적으로 살펴본다. 3장과 4장에서는 우표와 화폐라는 근대적인 제도에 국가 상징 이미지가 도입되는 구체적인 과정을 살펴본다. 특히 근대적인 화폐 제조 과정에서 처음으로 오얏꽃이라는 국가 상징 이미지가 채택된 경위를 고찰한다. 5장과 6장에서는 대한제국기에 들어 군주의 격을 왕(王)에서 황제(皇帝)로 변화시킴에 따라 일어난 상징의 변화와, 군주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황제의 초상사진 및 기념물(monument)을 포함한 여러 근대적인 시각 장치들이 동원된 양상을 살펴본다. 7장에서는 국가 상징 이미지가 군복(軍服)이나 관복(官服)에도 채택되어 대외적으로 표상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특히 서구식으로 제정된 문관 대례복에서 무궁화 문양이 새로운 국가 상징 이미지의 하나로 채택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8장에서는 국가에 공로를 세운 내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에 국가 상징 이미지가 활용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있으며, 여기에서 태극이 ‘국표(國標)’로, 오얏꽃이 ‘국문(國文)’으로 표현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망국과 국가 표상의 의미 변화 국가 상징 이미지는 국가의 필요에 의해서 창안된 만큼 그 주도적인 의미 역시 국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기호의 의미를 생산하고 결정한 주체인 국가의 주권이 위협받는 위기 상황에서는 국가 상징의 의미가 더는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고, 따라서 제정 당시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는 일련의 사태는 국가 상징을 둘러싼 심대한 의미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 8장까지가 주로 국가가 주체가 되어 국가 상징 이미지를 만들고 활용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다면, 9장부터는 국권 쇠퇴의 시기에 국가 상징 이미지의 의미가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고 있다. 특히 이 시기는 “국민과 국가에 관한 관념과 더불어 민족 또는 동포의 관념이 형성되면서 국가나 황실 중심의 국가관에도 변화가 일어났다.”(345쪽) 즉, 국민들이 급변하는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에 처음 제정되었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0장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식민정치가 본격화되고 자본주의가 심화됨에 따라 국가 상징과 그 의미가 어떻게 은폐되고 숨어드는지, 그리고 어떻게 상업적인 방식으로 전용되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태극기, 오얏꽃, 무궁화로 대표되는 한국의 국가 상징 이미지가 창안된 지도 한 세기 반이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날 이들 국가 상징 이미지가 더는 국가가 제정한 의미에 머물지 않는 양상은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에서부터 최근의 ‘태극기부대’에 이르는 일련의 사회문화 현상에서도 목도할 수 있다. 최근에는 문화재청이 적극적인 역사·학술 가치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요청에 따라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서울 진관사 태극기’ 3점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 책은 그 의미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 문화적으로 진지하게 주목받지 못했던 국가 상징 이미지가 과거의 우리에게 무엇이었으며, 오늘날 우리에게는 무엇일 수 있는가를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