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도록 풍성한 철학 뷔페” ―《더 타임스》
“철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의 필독서” ―《선데이 텔레그래프》
“능수능란한 대가가 쓴 명료함의 전형” ―《파이낸셜 타임스》
“이 책은 독자들이 해당 철학 주제들을 더 깊이 탐구하도록 자극하는 데 성공한다.
독자들은 스크루턴에게서 진정한 사상가의 표식인, 깊은 정직성과 소신을 느낄 수 있다.”
―알랭 드 보통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 이후
최고의 철학개론서
로저 스크루턴은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미학자일 뿐 아니라 런던대학교 버크벡 칼리지에서 20년 넘게 철학을 가르치며 철학교육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작위를 받은 뛰어난 철학교사이기도 하다. 그가 대학에서 행한 현대 철학 강의를 한 권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 《현대 철학 강의》다. 많은 평론가들이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 이후 최고의 철학개론서로 손꼽는 이 책은 기존의 상투적인 철학개론서와는 차별화된다.
이 책은 철학을 몇 가지 핵심 문제나 철학자 혹은 철학사 중심으로 해설하기보다는 ‘진리’ ‘존재’ ‘원인’ ‘과학’ ‘영혼’ ‘도덕’ ‘상상’ ‘역설’ 등 31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기술한다. 각 테마는 하나하나가 특정 철학분과를 대표하기도 하고(가령, ‘수학’이라는 장은 수리철학을, ‘객관정신’은 정치철학을, ‘주관정신’은 미학을 주로 다룬다), 한 가지 테마 아래 여러 분과의 문제가 논의되기도 하며(‘영혼’에서는 인식론·현상학·심리철학의 문제들이, ‘자유’에서는 형이상학·심리철학·윤리학의 문제들이 다루어진다), 한 가지 분과의 문제들이 여러 테마로 나뉘어 논의되기도 한다(‘자아, 마음 그리고 육체’ ‘진리’ ‘필연성과 선천성’ ‘원인’ ‘영혼’ ‘지식’ ‘지각’ ‘자아와 타자’ 등의 장에서 인식론의 문제들이 논의된다).
각 테마의 서술 방식은 철학사의 흐름을 단순히 따라가는 통사적 진행보다는 문제 중심이며, 각 문제의 전개 논리에 따라 대표 철학자들의 논변이 구체적으로 논의된다. 일례로 21장의 ‘죽음’이라는 테마를 살펴보면, 스크루턴은 먼저 죽음과 인격 동일성 문제의 논점을 분석한 후, 죽음이 ‘나’의 종말은 아니라는 견해에 대한 루크레티우스와 흄의 반론을 살펴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토머스 네이글과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예시하고, 죽음의 부재야말로 두려운 것이라는 버나드 윌리엄스의 반론을 소개한다. 그리고 죽음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이론, 그와 맞닿아 있는 니체의 ‘적당한 때의 죽음’, 쇼펜하우어의 자살의 정당화,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 이론으로 논의를 계속 이어간다. 이처럼 한 가지 테마를 축으로 아리스토텔레스부터 토머스 네이글까지 다양한 철학자들의 관련 논의를 자유자재로 연결·확장·심화하며, 해당 주제의 쟁점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모든 장에서 반복되는 특유의 방법론이다.
또한 교과서적 철학개론서들이 주로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같은 전통적 분야만을 주로 다루고, 응용철학 분야는 거의 다루지 않거나 간략하게만 언급하는 데 비해 이 책은 언어철학, 과학철학, 종교철학, 수리철학, 정치철학, 미학을 거의 대등할 정도로 비중 있게 다룬다. 다루는 내용도 양상논리에서 게임이론, 해체주의,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으며, 모두 일정 분량 이상으로 심도 있게 논의된다. 그 결과 책의 분량은 비록 방대해졌으나, 이로써 한 권으로 현대철학의 거의 모든 문제와 논의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철학개론서가 가능해졌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러한 테마별 서술은 각 철학분과의 세부 쟁점은 물론이고 수많은 철학자의 논의와 철학사 전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기술방식이다. 아마도 일반적인 영미철학자라면 이러한 책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언어철학이나 의미론 같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권위자일지라도 철학 전반을 꿰는 안목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스크루턴은 미학자로서, 영미 분석철학에 정통하면서도 그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철학 전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 없이는 어느 분야도 진실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이것이 실제로 영어권 철학의 주요 약점이다. 너무 협소하거나 분석적이라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전문화되었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철학자로 자처하면서 미학이나 정치철학, 도덕이나 종교에 관해 아무런 견해도 갖고 있지 않다면 전공과목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영미 분석철학의 전통에서는 극히 예외적인 총체적 안목을 지닌 철학자가 철학교사로서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한 보기 드문 작품이다.
테마별로 정리한
심도 깊은 현대 철학 강의
무엇보다 이 책의 최고 미덕은 쉽고 재미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는 철학서에 필수적이지만 어렵게 보이게 만드는 주요인인 각주가 전혀 없으며, 상식 수준의 개념 이해만 갖고도 충분히 독서를 시작할 수 있다. (더 깊이 있는 설명을 원하는 독자를 위해서는 책 뒤에 ‘학습안내’를 따로 두어 관련 참고문헌이나 심화된 논의를 보충하고 있다. 물론 이 때문에 책의 분량은 더욱 늘어났지만.)
스크루턴은 현대철학, 특히 영미철학이 학술논문의 형태로, 주로 언어적·논리적 분석이라는 미시적 작업으로 수행됨으로써, 철학 초심자에게는 “인간 영혼의 고통스런 문제에 비해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더러는 무의미해 보이는 논쟁만을 촉발”해왔다고 인정한다. 이제 철학자는 “머리의 문제를 가슴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때에만, 그들이 추상적 관념들의 영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정말로 알게 될 것이다.” 스크루턴은 영미 강단철학의 테크노크라시적 전문용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의 전통에 서서 간결함과 단순명쾌함의 언어를 계승함으로써, 즉 초심자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논점을 명료하게 전달함으로써, 현대 철학의 어려운 주제들이 “무미건조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중요한 인간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재발견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스크루턴은 현대철학이 프레게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적 성취 이후 돌이킬 수 없이 변화되었으며, 난해함이 해당 주제에 본질적인 경우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본래 어려운 내용을 너무 쉽게만 해석하려 들어서도 안 된다고 경계한다. 또한 그는 여러 철학자의 논변을 상당 부분 별도의 인용부호 없이 기술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반론, 특히 논쟁적인 반론들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일례로 그는 28장 ‘객관정신’에서 사적 소유의 권리의 문제를 논의하다가 그동안 간과되어온 사적 소유의 ‘의무’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고(“소유가 남용되거나 낭비되거나 환경을 파괴하는 데 쓰이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그러한 사적 의무를 강요할 필요가 있다.”), 이성적 존재와 비이성적 존재의 차이를 논하다가 동물의 권리에 대한 도발적인 물음을 제기하기도 한다(“그렇다면 동물을 잔인하게 다루면 안 된다는 우리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스크루턴은 “독자는 나의 더 논쟁의 여지 있는 주장에 동의하도록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에 대한 반론을 찾도록 요구된다”고 해명한다.
스크루턴은 플라톤의 《대화》를 패러디한 재기 넘치는 철학소설들을 쓴 작가답게, 딱딱한 철학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솔직하고 재치 있는 표현이나 명제, 사례로 독자의 흥미를 계속 돋운다. 그는 22장 ‘지식’에서 인식론을 지루하고 따분하고 재미없는 분야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23장 ‘지각’에서는 이 또한 지뢰밭이요 현기증을 일으키는 분야이니 독자들에게 신속하지만 조심스럽게 건너갈 것을 당부한다. 미학자답게 수시로 베토벤의 교향곡, 다빈치의 그림, 릴케의 시, 루이스 캐럴의 소설을 예로 들어 이해를 돕는가 하면,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 ‘모긴스’를 여러 명제의 주어로 때로는 귀엽게, 때로는 엽기적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일례로 그는 시간상의 필연적 연결이란 없다는 ‘흄의 법칙’을 공간으로 확장하여, 공간의 경계 안쪽의 세계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