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사랑하고 있어
우리가 웃으면 막이 오르듯 슬픈 일들이 벗겨지니까”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바꿀 수 없는
‘너’라는 존재에 도달하려는 시의 날갯짓
여름의 시인 최백규,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이후 3년 만의 신작!
문학동네시인선 238번으로 최백규의 『여름은 사랑의 천사』를 펴낸다. 첫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창비, 2022)를 펴낸 2022년에 알라딘에서 진행한 ‘한국문학의 얼굴들’ 시 부문 1위에 선정되며 신인으로서는 눈에 띄는 약진을 보인 시인 최백규의 반가운 두번째 시집이다. 첫 시집 『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에서 시인이 불우한 청춘의 한 시절을 특유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풀어냈다면, 『여름은 사랑의 천사』에서는 ‘너’라는 시적 대상과 함께한 ‘여름’이라는 계절의 속성, 그것과 닮은 뜨거운 사랑의 모습들을 더욱 호소력 짙은 감성으로 그려낸다. 또한 유년, 가족, 노동, 생활의 이력 등에 대한 시인의 자전적인 면모가 담긴 시를 읽는 기쁨도 크다. 『여름은 사랑의 천사』는 사랑과 청춘, 이별과 그리움, 가난과 허무, 그리고 슬픔과 정념이 넘실거리는 여름의 한복판으로 독자를 데려가는 그야말로 ‘여름 시집’이다.
서로를 보면
열이 오른다 자취방 창가로 불어오는 여름
높이 들어 잔이 넘치도록 마시는 여름
거리에 쏟아지는 여름이
마음을 와락 적신다
어느 날은 햇살 아래 빛나는 너의 웃음이
여름이구나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러한 여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의 여러모로 비슷한 일상이
뜨거운 시절이라는 사실을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을 기억하자
이 여름이 우리의 첫사랑이니까
이제 시작이니까
너와 함께 있으면 내 삶이 다 망쳐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그래서
네가 좋아
_「사랑은 여름의 천사」 전문
시집의 문을 여는 「사랑은 여름의 천사」에는 “너”와 함께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여름”이라는 순간을 기억하려는 시적 화자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내 삶이 다 망쳐질 것 같다”는 파괴적인 “예감”이 들 정도로 “네가 좋다”는, 강렬하게 내리쬐는 여름의 태양빛처럼 정념이 넘실거리는 시적 고백이 인상적이다. ‘여름의 천사’로 찾아온 ‘너’와 ‘나’의 ‘사랑’이 “여러모로 비슷한 일상”으로 쌓여 마침내 ‘여름’이라는 ‘사랑의 천사’ 그 자체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시는 왜 시집의 제목이 ‘사랑은 여름의 천사’가 아니라 ‘여름은 사랑의 천사’가 되었는지를 엿보게 하는 듯하다.
시적 화자에게 “햇살 아래 빛나는 너의 웃음”을 닮은 “여름”은 “첫사랑”과 동의어로 보인다. 그러나 “첫사랑”은 영원한 사랑과는 반대되는 ‘첫’의 속성을 띠기에 아름다운 것임을 독자는 뒤이은 시를 읽어나가면서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최백규의 시 속 ‘사랑’은 「사랑은 여름의 천사」에서처럼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설레는 첫사랑, 그후 맞닥뜨리는 이별과 후회, 그리움과 절망의 장면들이 시집 편편에서 펼쳐진다.
“젊음만 믿고 섣불리 색을 칠하고 번지”던 “우리”는 “낙원을 덧그리려 해봐도” 사랑이란 “마음처럼 되지 않는”(「스무 살」) 것임을 깨닫는다. “불꽃은 영화였고 붙잡으려 하면 눈이 시린”(「미래의 빛」) 미숙했던 시절을 지나, ‘나’는 종내에 ‘너’라는 대상과 나눈 “사랑”뿐만 아니라 “인사도 없이”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아득”한 “수평선”(「영원과 작별이 서로의 끝에 마주서서」)을 응시하며 사랑이 무엇이고 또 무엇이었는지를 반추한다. “시리도록 화창한 시절이 다 휩쓸려”갔다고, “진 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영원한 침묵」)라고 질문하는 회한의 자리에서 시적 화자는 마침내 “여름을/ 시작했다”(「서시」)고 말한다. 불타는 그 여름을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최백규의 시 속 화자들은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사랑을 멈출 수 없음을, 그것만이 “사는 것같이”(「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사는 것임을 일러주는 것이 아닐까.
*
최전방 철책에서 마주했다
비무장지대 위로 미확인 무인기가
저공비행하는 것을 발목 잘린
간첩을 파도를 해변을 멀리서 젊은 남녀들이 함부로 낭비하는
폭죽 불꽃을 수류탄과 자동소총을
혼신으로 끌어안고서
없는 너의 웃음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전역 후에는 시험을 준비하거나 유학을 가는 친구들을 보며 막연해졌고
버스와 전철의 뒤엉킨 사람들 사이에서 퇴근하다가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생각했다
(…)
사지를 늘어뜨린 새벽에도 강은 흐르고 철새가 날고 문득
애틋한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나의 고향……
_「모든 여름이 유서였다」 부분
한편, 「모든 여름이 유서였다」는 시인이 그간 살아온 삶을 회고하는 일종의 자서(自敍)와도 같은 시이다. “최전방 철책”을 지키다 군대를 전역하고, “버스와 전철의 뒤엉킨 사람들 사이에서 퇴근”을 하던 직장 시절,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시적 화자는 “애틋”하지만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살아 있는 거야?/ 살고 싶어”(같은 시)라고 외치는 화자의 목소리는 절망과 좌절을 버텨온 한 가난한 청춘의 울음을 들려준다.
자고 일어나면 손발이 붓고 말라붙은 눈물자국
포켓몬스터와 원피스
스타크래프트와 메이플스토리
WWE의 선수들
일 세대 아이돌의 은퇴와 복귀
비산동부터 고성동까지 쏘다니느라
떨어진 신발 밑창
수창초등학교 앞에 있던 나이트클럽과 홍등가
동창들이 일하게 될 곳들
첫 애인 첫 데이트 첫 이별
다음
(…)
얻어걸린 등단
처음 친해진 선배
대구 시인 형들을 만나고
여정 시인이 가르쳐준 것
아직 우리에게 첫 시집도 없던 시절
안지랑 곱창 골목에서의 합평들
_「체험판 게임」 부분
이러한 자전적인 시의 면모는 “비산동부터 고성동까지 쏘다니”던 시인의 고향 대구의 모습을 묘사한 「체험판 게임」에서도 드러난다. “아직” “첫 시집도 없던” 그 시절, “안지랑 곱창 골목에서” “합평”하던 나날을 떠올리는 화자는 이 시절을 ‘체험판 게임’이라 명명한다. 삶이 일종의 게임이라면, 본래의 삶을 살기 이전에 미리 연습해본 과거는 화자가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데 큰 힘을 북돋아주는 시간일 것이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며 사람들이 전시하는 삶의 휘황찬란한 껍데기 깊은 곳, “사랑 노래를 올려놓고 질질 짜는 밤들”(같은 시)에 가려진 하루하루의 절박한 읊조림이 시인 특유의 섬세한 고백체로 전해지는 듯하다.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무명 권투선수들의 시합을 본 적 있습니다
사각 링 안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비틀거리는 인간들
그때 관중들이 외치던 구호가 세상을 구하라는 말로 기억됩니다
서 있기만 한다면 패배하지 못한 것 아닙니까
죽어가도록 사랑하거나
사랑하다가 죽어가거나
청춘이 계속되는 한 누구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두 발로 서서 떠올려내야만 하겠지요 앞으로 걸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내가 구한 천국 위에서
_「지옥에도 아침은 온다」 부분
“가난하다면서 돈 못 버는 시인 따위 되겠다고” “죽을 때까지 몸부림치겠다고 다짐”(「습작생」)한 시적 화자의 절박한 음성은 읽는 이로 하여금 “악착같이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