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들이 시간을 생성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이 시사하듯, 일상적으로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면서 삼라만상의 흥망성쇠를 관장하는 하나의 독립적인 객관적 작인이라고 생각한다. 『반시대적 객체』에서 그레이엄 하먼과 크리스토퍼 위트모어는 시간이란 그 안에서 ‘존재의 스펙터클’이 연출되는 어떤 선재적 무대라는 직관적 견해를 거부한다.
이 책은 시간 및 시간과 객체들의 관계에 관한 사유에서 혁명적인 전환을 이루어낸다. 하먼과 위트모어는 객체들과 무관하고 객체들에 선행하는 하나의 텅 빈 용기로서의 시간 안에 객체들이 ‘담겨 있다’는 견해를 거부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히려 객체들이 시간에 우선하는 것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형성하는 것이다.
‘반시대적’(untimely)의 의미
하먼과 위트모어는 『반시대적 고찰』이라는 니체의 유명한 에세이 모음집의 제목에서 ‘반시대적’(untimely)이라는 형용사를 차용했다. 이러한 표현은 저자들의 생각이 철학과 고고학의 주류 사조들에 어긋나고 또 시대의 유행을 거스른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다.
‘비주류 철학자’ 그레이엄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 OOO)은 “실재는 끊임없는 유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믿는 많은 현대 철학자들의 확신에 도전한다. 하먼은 오히려 객체들이 ‘실재의 기반’이라고 단언한다. 또 하먼에 따르면 “시간은 실재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오늘날 지배적이다. 하먼은 이에 맞서서 객체들로부터 창발하는 ‘표면적인’ 시간을 부각함으로써 시간의 ‘비실재성’을 말한다. 따라서 『반시대적 객체』는 ‘연속적인’ 유동이나 과정을 우선시하는 철학에 맞서 ‘이산적인’ 객체들을 옹호하는 그레이엄 하먼의 철학적 행보를 부각하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다.
공저자이자 고고학자인 크리스토퍼 위트모어의 경우는 어떨까. 통상 고고학은 “인간이 남긴 물질적 유물을 통해서 인간의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간주된다. 이 책에서 위트모어는 고고학에 관한 이런 일반적인 견해가 여러 가지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고고학에 대한 이런 통념이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고 연구하는 객체들을 “어떤 과거로의 운반체라는 부차적인 지위”로 격하함으로써 현실적 객체들의 역할을 경시한다는 것이다.
위트모어에 따르면 고고학적 객체들은 현재의 인류가 과거에 도달하는 데 사용하는 ‘운반체’에 불과하지 않다. 오히려 고고학적 객체들은 다양한 시간적 차원들을 포함하면서 ‘현재 여기에 있는’ 객체들로서 그 자체로 관심을 받을 만하다. 위트모어에게 고고학은 “과거의 모습을 구상하기 위해 우리가 아직 입수할 수 있는 단서로부터 과거를 탐구하는 현재에 관한 분과학문”이다.
보통 고고학자들은 “유적지들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형시킨 형성 과정, 엔트로피적 과정, 그리고 누적 과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위트모어는 말한다. 위트모어는 새로운 고고학에서는 그러한 변형 과정, 엔트로피적 과정, 누적 과정이 포괄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의 다양성
우리는 보통 시간에 대한 선형적 구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란, “과거를 뒤에 남기는 식으로 전진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먼과 위트모어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외양 및 용도와 관련하여 정위된 객체들의 기반을 배경으로 삼고서” 시간성을 비선형적 방식으로 개념화하는 다양한 방식을 논의한다. 무엇보다 이들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를 참조하면서 ‘삼투하는 시간성’ 개념과 ‘위상학적 시간성’ 개념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위트모어와 ‘삼투하는 시간성’
위트모어는 ‘삼투하는 시간성’ 개념이 자신이 옹호하는 ‘새로운’ 고고학의 목적에 적절하다고 본다. “조용한 가속, 우레와 같은 가속, 그리고 역류와 맴돌이의 시기들로 특징지어지는 시간은 ‘삼투한다.’ 선형적 시간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이 삼투하는 시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꽤 가까이 있을 수 있다.” 위트모어는 삼투로서의 시간을 “저수지에 고여 있거나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시간, 걸러지고 흡수되는 시간, 갑자기 가속하고 서서히 흘러가는 시간, 참신성과 반복의 소용돌이 내에서 파열되고 되돌아오는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위트모어는 삼투하는 시간성의 일례로서 그리스의 카자르마(Kazarma)에서 발굴된 고대 무덤을 고찰하는데, 여기서는 미케네 문명의 유물이 그 이후 문화들의 잔해 및 최근의 객체들과 공존한다. “미케네에서는 역류 또는 소용돌이가 그 방, 그 품목들, 그 그릇, 그 내용물, 이전에 그것들을 품은 토양, 그리고 그것들을 발굴하기 위해 작업한 고고학자들의 내부에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서 형성된다.” 위트모어는 ‘삼투’로서의 시간 개념이 “시간에 관한 격동적인 이미지, 심지어 날씨 같은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라는 이유로 그 개념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위트모어는 이렇게 말한다. “저에게 삼투는 현실적 객체들보다 아무튼 더 깊거나 그것들과 분리된 어떤 원초적 유동을 수반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시간을 사물들 내부와 사이에 있는 활동력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삼투를 이런 활동력들의 총합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먼과 ‘위상학적 시간’
그레이엄 하먼은 위상학적 시간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위상학적 시간은 선형적 시간에서 서로 떨어진 거리와는 무관하게 객체들 사이의 형태적 유사성에 의지한다. 이 개념은 그레이엄 하먼이 형태(형상, form) 개념을 선호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하먼은 “형태의 이동, 존속, 그리고 번역에 매혹되었다”라고 말한다. 심지어 하먼은 물질(질료)이라는 범주를 철저히 경시하는 데까지 이른다. “당신이 사물들에 관해 작업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런 사물들의 형태들에 관해 작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질과 같은 것은 결코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373쪽).
위상학적 시간에서는 “연대기적으로 멀리 떨어진 시점들이 형식적 유사성을 통해서 서로 가까워진다.” 예컨대, 하먼에 따르면 “1950년대에 ‘치킨’ 게임을 벌이는 두 명의 만취한 십 대 청소년과 중세 기사들 사이의 연대기적 거리를 제거함으로써 위상학은 시간을 수축시킬 수” 있다. 또한, 위상학은 “외관상 공존하는 요소들 사이의 방대한 시간적 차이를 강조할 수” 있다. 하먼은 선사 시대 기술(불), 신석기 시대 기술(바퀴, 유리), 19세기 기술(피스톤), 그리고 20세기 기술(컴퓨터, 에어백)의 회집체로서의 자동차를 위상학적 시간의 일례로서 제시한다. 그리하여 “삼투는 주로, 시간이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게 함으로써 선형적 시간을 뒤엎는 반면에 위상학적 시간은 다른 방식으로, 시간적 거리를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킴으로써 선형적 시간을 뒤엎는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객체지향 존재론의 사중체 모형과 시간론
『쿼드러플 오브젝트』, 『예술과 객체』 등 한국어판이 출간된 하먼의 많은 주저들을 통해 이제는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그레이엄 하먼의 사중구조는 다음과 같이 존재를 설명한다.
우선 하먼의 객체지향 존재론(Object Oriented Ontology, OOO)에 따르면 생명체든 생기 없는 사물이든 추상적·상상적 존재자든 사회적 집합체든 간에 현존하는 모든 것은 객체이다. 객체는 모두 두 가지 ‘균열’에서 비롯되는 어떤 한 공통적인 존재론적 구조, 하나의 사중 구조를 공유한다.
첫 번째 균열은 실재적인 것(Real, 모든 관계에서 물러서 있는 것)과 감각적인 것(Sensual, 관계적인 것) 사이에 있다. 두 번째 균열은 객체(Object)와 성질들(Quality) 사이에 있다. OOO는 이 두 가지 균열로써 우주 속의 모든 객체를 특징짓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사중체 모형을 구성한다.
그 모형은 실재적 객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