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청춘은 내일을 준비한다.
항구를 출발한 배는 필연적으로 파도를 거슬러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인생이 아니다. 의심이 가지 않는다면 신앙이 아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젊은 청년들이 출발선을 떠나보기도 전에 인생을 포기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일찍 주위를 둘러봤기 때문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주인공이 자신임에도 이 무대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신을 존재하게 만들 수도 있고, 존재하는 신을 저주할 수도 있으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다. 그리스도를 십자가 형틀에 매단 것도 인간이었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도 인간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현상은 오직 인생뿐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고민해서는 곤란하다. 인생과 맺은 젊은 날의 약속을 내가 먼저 파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인생은 나와의 계약을 어기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인생이 베푸는 ‘절망’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인생도 그다지 불가사의한 현상은 아니다, 그다지 불행할 것도, 불편할 것도 없다.
시대는 점점 더 포악스러워지고, 그에 비례하여 인간성까지 날로 강퍅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라는 사람밖에 없다”라는 진리를 가슴에 새긴 사람이라면 이 험한 시대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표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니체, 헤세, 카프카, 카를 융, 프로이트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쇼펜하우어였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절망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절망은 끝이 아니다. 하나의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잉태하고 태어나는 위대한 절망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의 절망은 궁극의 희망이다. 그에게 고통은 소멸해야만 끝나는 아픔이 아니다. 그 아픔 끝에 새 생명이 탄생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새로운 가치관이 성립된다.
거칠고, 때로는 표독스럽기까지 한 쇼펜하우어의 날카로운 언어들이 우리의 시대까지 살아서 약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읽은 한 독자는 “역설적이게도 인생에서 ‘행복’이란 단어를 제거하자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었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왜 꼭 필요한 것인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