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읽는 건 하나의 특권이다.”_타임스
살아 있는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 6년 만의 장편소설!
― 김연수, 김겨울 추천!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줄리언 반스의 신작 장편소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가 다산책방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연애의 기억』 이후 국내에 6년 만에 선보이는 줄리언 반스의 작품으로 “이것이 줄리언 반스다”라는 극찬과 함께 다시 한번 그만이 가능한 독보적인 이야기로 문학적 성취를 거두었음을 증명했다.
소설은 결혼생활과 직업적 실패를 겪고 고비를 맞은 한 남자가 삶에 큰 영감을 주는 교수를 운명처럼 만나면서 시작한다. 언제나 압도적인 일인칭 화자를 내세워 강렬한 질문을 던지는 줄리언 반스는 이번 작품에서도‘닐’이라는 화자를 앞세워 매혹적인 허구의 인물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와 역사의 승자에 의해 배교자로 불리는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에 대해 탐색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지 못했던 물음에 직면하게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가?’
어느덧 여든에 가까운 줄리언 반스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글을 쓰며 천착해 온 화두의 정수가 모두 담긴 이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을 과감히 넘나들며 기억의 한계와 역사의 왜곡, 그리고 인간과 삶의 다면성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펼쳐낸다. 누군가는 이 작품을 두고 장르 불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 말고는 달리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다. 감히 줄리언 반스 40년 문학의 결정판이자 그의 문학적 지문과도 같은 작품이다.
한 남자가 매듭지어야 할 두 사람을 향한 필멸의 과제,
선명해질수록 희미해지는 진실의 아이러니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며 삶에 어떤 결핍을 느끼던 닐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강좌에서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를 만난다. 거위 배 속에 사료를 채우듯 머릿속에 이런저런 사실을 주입하는 수업은 하지 않을 거라는 그녀를 보며 닐은 깨닫는다. 살면서 이번 한 번만큼은 자기 자리를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기대처럼 핀치는 특별한 교수였다. 학생들을 조금도 깎아내리지 않으면서 그들의 작은 생각을 흥미로운 것으로 바꿔주는 ‘어른’이었다. 닐은 자신보다 훨씬 똑똑한 그녀를 흠모하며 졸업 후에도 약 20년간 만남을 이어간다. 둘은 75분이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함께 점심을 먹으며 철학과 역사에 대해 깊이 토론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핀치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닐은 그녀가 평생 써온 서류와 노트 들을 유품으로 전해 받는다. 그는 여기에 어떤 신호가 있다고 느끼며 이에 대해 진지한 탐문을 해나간다. 이전에 미완성 과제로 제출했던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관한 에세이를 완성하는 것, 그리고 엘리자베스 핀치를 회고하는 것. 그러면서 점점 예상치 못했던 진실에 다가간다.
“우연이라는 불가해한 힘 앞에
삶은 얼마나 파편 된 진실이며 필연적 거짓인가?”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가 평생에 걸쳐 답하고 이해하고자 했던 주제를 지금껏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관계의 역학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처음 작가로서 글을 쓰기 시작할 당시, 학원 소설이 유행했는데 반스는 이를 보며 자신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는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와 학생 닐의 이야기를 통해 40년 동안 골몰했던 문학의 주제 의식을 더 깊고 더 도전적으로 펼쳐내기에 이른다.
닐에게 엘리자베스 핀치는 “조언하는 벼락이었다”. 신비롭고 엄청난 힘을 가진 인물로 그의 생각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선생이었다. 닐은 엘리자베스 핀치를 회고하며 그녀라는 사람을 일관된 서사로 만들려는 시도를 해나가는데, 이는 엘리자베스 핀치가 가장 경계했던 ‘일신(一信)주의’와 배치되는 아이러니한 지점이다. 결국 다른 학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닐이 생각하는 엘리자베스 핀치는 그의 고집스러운 기억에만 존재했음이 역설된다.
이 소설은 단일한 믿음과 편의적 회피를 오가는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다. 우연이 틈입하는 이 세계에서 더 잘 이해했다고 믿는 이의 생각은 얼마나 무력한지, 역사는 왜 해석에 불과한지 끈질기게 되짚으며 성찰해 간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에서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해볼 수 없다”는 깨달음에 다다른다. 우연이 자기 뜻대로 하게 놓아두는 것이야말로 삶을 견디는 인간의 필연적 숙명이므로.
읽을수록 새로운 층위를 발견하게 되는
줄리언 반스의 가장 지적이고 가장 매혹적인 소설
명실상부 살아 있는 영국 문학의 전설, 줄리언 반스의 신작은 언제나 문학계의 큰 사건이다. 소설과 에세이, 전기 등 장르를 자유롭게 오가는 하이브리드 작가로서 그가 써내는 글은 평단의 단골 연구 주제로 올려진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반스의 소설이 뛰어난 작품이 아니라고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가디언),“줄리언 반스의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특권”(타임스)이라는 격찬으로 이어진다.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는 철학을 향한 줄리언 반스의 진심 어린 애정이 돋보이는 책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허물면서 역사에 기독교의 배신자로 기록된 율리아누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해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제대로 평가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 과정에서 불려 나오는 플라톤, 소크라테스, 볼테르 등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자, 작가의 이야기는 지적인 즐거움을 안긴다.
줄리언 반스는 내내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고 명료한 문장을 세공해 왔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아이러니로 이야기를 치밀하게 직조해 펼치며 독자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닐과 엘리자베스 핀치 그리고 율리아누스까지 세 인물이 맞물리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생각의 닻을 깊게 내릴수록 새로운 층위를 발견하게 한다. 단언컨대 “생각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보물” 같은 소설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