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들 퀴어와 같은 비규범적 성적 주체가 국가 폭력과 언론의 심문, 사회적 낙인, 문화적 소외, 경제적 빈곤에 노출되어온 사실을 거의 처음으로 드러낸 연구가 시도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의 글들은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와 젠더변이 역시 생명정치적 가족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개인주의라는 자본주의 발전의 두 가지 모순된 힘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와 근대화의 역사를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이 책은 독자를 탐정으로 만든다. 처음엔 사건을 의뢰하러 탐정 사무소를 찾아갔지만 막상 탐정 사무소에 들어서고 보니 그곳엔 내가 그토록 찾던 증거들이 가득하다. 눈앞의 종이 한 장을 무심결에 들었다가 그만 주저앉고 만다. 한국 역사가 이렇게 흥미진진했다고? 그동안 주류 사회는 ‘다이내믹 코리아’를 떠들어왔지만 탐정이 된 독자들은 이내 눈치챌 것이다. 우리의 역사가 퀴어한 삶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엉킨 ‘퀴어 코리아’였는지를. 저자들의 다양한 이력과 생생한 연구 활동이 그대로 담겨 있기에 독자들도 역사의 숨겨진 뒷장을 열어보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독자들이 탐정처럼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자기만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책, 너무나도 기다렸던 책이 마침내 우리에게 왔다. ―한채윤·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 역사의 기록에서 소외되거나 누락된, 그리고 주변화되었던 한국 근현대사 속 퀴어들의 불안정했으나 역동적이었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 책은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비규범적 주체와 퀴어 분석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기 위해, 역사학, 문학, 문화연구, 영화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의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연구자(북미와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백인 미국인, 한국 디아스포라, 대만 출신의 비백인) 들이 쓴 아홉 편의 글을 묶었다. 성소수자의 삶은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역사 기록에서 대부분 누락되었고, 종종 암암리에 퀴어성을 국가적·종교적·성애적/젠더적 자아의 집단적 이미지에 대한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식민 지배 아래 근대적 민족주의에서부터 권위주의 시대의 반공주의, 현대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난동꾼 자경주의 시대의 국가 안보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든, 38선의 양쪽과 디아스포라에서의 집단적 생존을 위한 반복된 투쟁은 젠더변이와 동성애 등 비규범적인 삶의 형태를 평가절하하고 비인간화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 책에서는 비규범적 주체가 국가 폭력과 언론의 심문, 사회적 낙인, 문화적 소외, 경제적 빈곤에 지나치게 노출되어온 방식을 강조함으로써, 퀴어의 불안정한 존재 방식을 다룬다. 분명 개인의 젠더와 계급, 섹스, 지향, 세대, 지역 등에 따라 경험이 다르겠지만, 한국인 LGBTI들은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 혐오, 유독한 남성성, 여성 혐오 등 주변화의 압력이 퀴어(와 다른 소외된 시민)의 심각하게 높은 자살이나 자해를 조장하는 사회 속에 살면서 무수한 장애물에 직면했다. 민주적 제도가 명목상으로 개인의 필요와 욕구를 표명하도록 하는 절차적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오늘날에도, 한국에서 LGBTI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정체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거나, 권리 기반의 인정 정치에 관여하는 것 이상을 수반한다. 이 책은 이러한 비규범적 섹슈얼리티와 젠더변이 들이 겪은 사회문화적 불안이 가득했던 순간을 상기시키는 역사화된 설명을 제공하며, “비규범적 표현과 욕망을 모두 침묵시키고 지우고 동화시키려는 권력의 장”에서 이들 과거의 지속적인 영향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면밀한 독해, 아카이브 연구, 시각적 분석 및 문화기술지적 현장 연구와 같은 학제 간 방법론을 사용하여 그동안 잘 연구되지 않은 한국에서의 퀴어성의 재현과 이러한 재현이 자주 가족 및 공동체의 이상화된 관념을 공고히 하거나 혹은 개발이나 시민권 등의 경로를 강요하는 데 착취적으로 악용되었던 과정을 추적한다. 아울러 비규범적 주체와 젠더변이에 대한 담론과 실천의 도구주의적 성격을 탐구함으로써, 민족주의적 궤도와 이와 유사한 균질화하는 권력의 작동을 진전시키는 경향을 가져온, 기존의 특권적이지만 제한적인 형태의 지식에 도전한다. 또한 이 책은 종속된 사람과 집단 들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배 양식을 어떻게 가로질러 왔는지 조명하면서, 오늘날 절망의 정치에 휘말린 개인과 집단에게 긍정의 힘을 불어넣는 서사를 제공하고, 새로운 형태의 친밀성, 생존을 위한 의미 있는 연대, 더 인도적인 삶의 양식을 창출할 잠재력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하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퀴어 주체들의 역사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제1부 식민지와 후기 식민지 근대성의 규율할 수 없는 주체들 제1장 식민주의 드래그의 의례(儀禮) 전문가들 ― 1920년대 조선의 샤머니즘적 개입들 제1장은 샤머니즘에 대한 글로, 훗날 한국인의 본질적인 정신으로 묘사되었지만 그동안 잘 연구되지 않았던 이 민속 종교가 제국주의 권력자와 식민화된 민족주의자 모두의 규율적 상상 속에서 행했던 역할을 입증함으로써 중요한 지점을 밝혀낸다. 조선총독부 경찰의 감시와 조선 지식인의 지적 심문 아래에서 주술사와 점쟁이, 여성 예능인의 퀴어성을, 영적 치유의 대중적 관행을 미신으로 치부했던 엘리트 지배적이고 남성 지배적이었던 식민지 근대성의 공식을 교란하는 능력으로 위치시킨다. 저자는 식민지 규율과 민족주의 정치의 강력하지만 모순된 역동을 폭로하는 대중적 무속인의 전복적 성격을 강조하며 샤먼들에게 정신적/의례적 행위 주체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고, 제국주의 신민이자 문화민족주의의 상징으로서 샤먼들이 퀴어적 근대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반규범적 보고(寶庫)를 창조했다고 본다. 제2장 이성애 제국에서 퀴어의 시간을 이야기하기 ― 이상의 「날개」(1936) 제2장에서는 민족주의적인 해석을 넘어서기 위해, 퀴어적 시간(queer time) 개념을 적용하여 이상의 1936년 단편소설 「날개」를 독해한다. 저자는 작품 자체의 분리된 시간성을 강조하고, 이것이 후기 식민주의적 및 퀴어 문체론의 중층 결정된 중첩성을 폭로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모더니즘 소설이 가지는 이동적 성격을 중시하면서, 경성역 시계와 같은 공공의 아이콘에 배태된 식민지 근대성의 이성애-선형적 시간(straight time)이 식민지 수도인 서울과 제국의 메트로폴리스 동경을 넘나드는 저자의 소요하는 움직임을 강조하는 제목인 「날개」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변위(變位)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규율할 수 없는 실천을 통해 남성 화자 ‘나’와 그의 아내는 일제 식민지 지배자와 조선 민족주의자 모두에 의해 제도화된 권력 체계인 일부일처제와 재생산 섹슈얼리티의 이성애규범적 생애 주기에서 가까스로 일탈하게 된다. 제3장 사랑을 문제화하기 ― 식민지 조선의 친밀성 사건과 동성 간 사랑 제3장에서는 식민지 근대성 아래에서의 퀴어적 표현에 대해 엘리자베스 포비넬리의 친밀성 사건(intimate event)이라는 개념을 차용하여 20세기 초반이라는 격변기에 생산된, 친밀성 사건으로서의 사랑에 관한 공적 논의와 문학적 재현 들을 살펴본다. 더욱 중요하게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식민지적 개념화에서 동성 간 사랑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살펴본다. 서양에서 일본을 거쳐 조선에 도착한 낭만적 자유의 표현은 문명과 계몽의 근대화 체제 아래에서 보급된 성과학적 틀에 의해 심각하게 구속되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의 한국 문학과 미디어 재현에 대한 분석에서 남성 작가들이 성과학의 과학적 패러다임 아래에서 자신들이 “도착적”인 것으로 보게 된 것을 회피하는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