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은 친절해야 돼, 그게 저 사람들 직업이니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
웃다가 병든 사람들에 관한 웃음과 망각의 보고서!
스튜어디스부터 대형 마트의 판매직 사원까지,
친절과 미소라는 가면의 뒤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감정의 상품화와 감정 관리가 노동의 일부분이 된 감정노동사회!
“사랑합니다, 고객님” ― 웃어야 사는 사람들, 웃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막무가내 고객들한테 심하게 시달린 날은 남편이나 애들한테 자주 짜증을 내게 돼요. 그리고 내가 손님 입장에서 식당 가서 밥 먹을 때도 서비스가 조금만 거슬려도 소리부터 지르게 되더라고요. 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성격이 변하나 봐요.” 백화점에서 5년째 일하는 어느 여성의 고백이다. 식당, 백화점, 마트, 서점, 주차장, 114, 홈쇼핑, 비행기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한 서비스를 만난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한 몸짓, 그 이면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까?
낯선 이에게 늘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웃어야 사는 사람들, 웃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바로 ‘감정노동자’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배우가 연기를 하듯 원래 감정을 숨긴 채 직업상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늘 긴장하며 자기감정을 관리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지만 ‘진상’에게도 웃음으로 대해야 한다. 바로 ‘감정노동’이다.
감정노동과 감정노동사회에 관한 최초의 심층 보고서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 혹실드는 세계 최대 항공사인 델타 항공의 임원과 승무원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참여관찰을 했다. 여기에 노동조합 관계자, 성 문제 치료 전문가, 연수센터 강사 등 다양한 관련자들과 다양한 직업에서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난 결과까지 모두 모아 이 책 《감정노동》을 썼다. 1983년 초판이 나온 뒤 지금까지 감정노동과 관련된 논의를 이끌어온 이 책은, 감정이 지니는 심리적 측면과 그런 감정이 시장에 상품으로 등장하게 된 사회적 흐름을 살펴보고, ‘감정노동’을 최초로 개념화했다. 이 책이 출간되면서 ‘감정노동자’, ‘감정 관리’, ‘감정 체계’, ‘감정 프롤레타리아트’ 등 여러 신조어가 탄생했으며, 미국사회학회에서는 감정사회학 분과를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은 감정노동이라는 개인적 행위와 사회적인 감정 법칙,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에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다양한 교환 행위로 구성된 감정노동 체계를 통해 감정노동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한다. 또한 감정노동이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많이 부과된다는 사실도 분석한다. 시장과 기업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감정’이 매우 미묘한 문제인 만큼, 혹실드는 감정노동자와 그 결과물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감정 그 자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기업과 조직의 원리에 따라 관리되고 상품화된 감정과 인간 본연의 감정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진짜 감정에서 소외돼서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면 쓰고 연기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감정 프롤레타리아트
혹실드는 ‘감정노동’을 통해 그동안 사적 차원에서는 개인의 자질 또는 인간적인 특성으로만 여겨지던 ‘감정’이 어떻게 시장 속에서 상품화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뀌었는지, 시장에서 사람들이 그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리고 감정을 상품으로 판다는 것이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찾아간다. 감정노동의 양극단에 서 있는 승무원과 추심원의 노동을 묘사하는 과정을 통해 감정 관리가 노동의 일부가 된 사회적 맥락을 드러내고 있는 저자는, 감정의 관리와 감정의 상업화라는 감정노동의 원리가 전혀 다른 직업의 전혀 다른 감정들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프로이트의 신호 기능을 감정에 관한 논의로 확대해, 사적 차원의 감정 관리가 사회적으로 조직되고 임금을 얻기 위한 감정노동으로 변형될 때 이 신호 기능이 손상되면서 인간성의 쇠진이 일어난다고 분석한다. 그 결과 쇠진, 스트레스, 신체적 쇠약은 감정노동사회에서 살아가는 감정노동자의 특성이 된다. 그러나 친절과 미소라는 가면 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직시하고, 꾸며내고 관리되어 상품화된 감정과 인간 본연의 감정을 구별하면, 감정을 팔면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라고, 이 책 《감정노동》은 말하고 있다.
둘 중 하나, 감정을 팔고 죽음을 사는 우리는 감정노동자
한국의 서비스 산업 종사자는 5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스튜어디스, 비서, 웨이트리스, 웨이터, 여행 가이드, 호텔리어, 사회복지사, 영업사원, 보험 판매인, 장의사, 목사, 놀이동산 직원, 경찰, 미용사, 간호사, 변호사 등 직간접적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들을 합치면 이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다. 자신이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감정노동자로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서비스 산업 종사자 실태조사(2007년) 결과를 보면, 백화점 노동자 중 56.2퍼센트는 우울증과 스트레스 질환을 앓고 있다. 또한 2006년 한국여성연구소가 서울 시내 식당 아줌마 4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식당 아줌마들의 25.7퍼센트는 ‘반말·욕설 등 비인격적인 대우가 힘들다’고 했다. 홀 근무자의 19.1퍼센트는 ‘불쾌한 성적 농담’을 겪었다. ‘술 좀 따라봐’(12.6%)라는 말을 듣거나, ‘불쾌한 신체 접촉’(11.7%)을 당한 경우까지 합치면, 감정노동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수반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감정노동자는 감정을 파는 대신 죽음을 사고 있다. 웃어야 사는 사람들, 웃으며 죽어가는 사람들, 감정노동자이자 감정노동의 소비자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