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의 완역본!
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라 불리는《홍루몽》(全6권 완역본)이 우리나라 홍학(紅學)을 대표하는 고려대 중문과 최용철 교수와 한림대 중국학과 고민희 교수의 9년여의 작업 끝에 출간되었다. 두 홍학 전문연구자가 함께 심혈을 기울여 이루어낸 성과로, 국내 최초로 정통 중국문학 학자들에 의한 완역본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발간된 여타의《홍루몽》과는 그 가치의 수준이 다르다. 나남에서 출간된 이 완역본은 기존의 번역본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완전히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정통 중국문학 연구자를 대표하는 고려대 최용철 교수와 한림대 고민희 교수, 두 홍학 전문가에 의해 완역본이 나왔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는 매우 크다. 역자들은 근 30년 동안 한국에서《홍루몽》연구의 기틀을 다진 전문 연구자로서 그동안 홍학연구의 경험을 최대한 살리는 한편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홍학계의 최신 연구성과를 잘 반영하여 완역본을 완성하였다.
중국에서 현재진행형인《홍루몽》열풍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고전을 꼽으라면 아마도 단연《삼국지연의》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 군담소설(軍談小說), 판소리 등에서부터 오늘날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이르기까지《삼국지연의》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미친 영향은 그 분야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너무도 의아해한다.《삼국지연의》가 명작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인들이 유독 이 작품에만 열광하는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는《홍루몽》이 한국에서 별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접하면 또 한 번 놀라워한다. 중국은 이렇듯 우리에게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나라이다.
일찍이《홍루몽》을 다섯 번이나 읽은 마오쩌둥(毛澤東)은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의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홍루몽》은 중국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백과사전이자 중국인들의 정신을 대표하는 보고(寶庫)로,《홍루몽》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 이 때문에《홍루몽》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과거에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홍루몽》의 인물들이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입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늘 뜨겁다. 예컨대 이야기 배경이 되는 대관원(大觀園)은 중국황실 황비의 친정나들이를 위해 지은 것인데,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에 재현되어 1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홍루몽》의 연회를 재연하는 홍루연(紅樓宴)은 베이징이나 타이베이의 최고급 호텔에서 매번 개최될 때마다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처럼《홍루몽》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중국인들의 관심으로부터 이른바 ‘홍학(紅學)’이라는 학풍이 형성되었는데, 홍학관련 연구단체가 학술 전문가뿐 아니라 동호인들 사이에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사실은《홍루몽》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또한《홍루몽》은 최근 중국의 문화콘텐츠 시장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 베이징TV에서 50부작 드라마《홍루몽》이 제작중인데 베이징TV가 출연진 선정에 공개오디션 방식을 취하면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중국대륙 전체에 오디션 열풍을 일으켰다. 2006년 당시 최종적으로 13만 8천 명이 오디션에 지원하였고 그 중에서 남자 주인공인 가보옥(賈寶玉) 역에 4만 500명, 여주인공인 임대옥(林黛玉) 역에 1만 2천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신청인 중에는 60%가 대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제작진의 상업적인 전략이 맞물려있겠지만《홍루몽》에 대한 관심이 젊은 층에도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홍루몽》은 18세기 중반에 나온 중국 최고의 명작소설이다.《홍루몽》이 나온 지 2백여 년이 지났지만 일찍이 19세기 초반에 영어번역문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20여 종의 언어로 약 100여 종의 번역이 나올 정도로 그 인기는 현재까지 온전하다. 수 세기 동안 읽혀 온《홍루몽》을 다시 손에 들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홍루몽》이 중국인의 의식구조와 생활습속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성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소설로서 인생의 교과서와 같은 이 작품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인생의 진리가 보이고 인간관계의 이치란 무엇인지 새롭게 깨달을 것이다.
잔잔한 선율과도 같은《홍루몽》은 거창한 명분이나 이론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궁극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애잔한 느낌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무주의 혹은 현실에서의 패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국 근대소설의 효시
‘비극적인 사랑’과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
《홍루몽》은 청대(淸代) 18세기 중엽 조설근(曹雪芹)이 쓴 장편소설로 당시 세상에 알려지면서 곧바로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독자층 또한 상당히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홍루몽》은 가(賈), 사(史), 왕(王), 설(薛) 등 네 가문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로 등장인물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홍루몽》이라는 이름 외에도《석두기》(石頭記),《정승록》(情僧錄),《풍월보감》(風月寶鑒),《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 등의 제목으로 불리는 것을 보더라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주제 역시 매우 방대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한 마디로 전체를 개괄하기는 어렵지만 작품의 핵심 줄거리를 크게 두 축으로 말하자면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과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라 할 수 있다.
홍루의 봄날은 꿈결처럼 사라지고
주인공 가보옥은 당대 최고 귀족 집안인 영국부에서 할머니 대부인의 비호를 받으며 애지중지 자란 귀공자이다. 무엇보다 입신양명에 눈이 먼 사대부들을 혐오하며 섬세하고 여성적인 가치들을 인생의 진리로 여긴다. 많은 사람들의 사치와 대관원(大觀園) 등의 건축으로 차차 기울기 시작하는 가씨 집안에서, 보옥은 가정적이며 건강한 설보차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지지만 사촌누이인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한다. 그러나 집안의 실권을 쥔 할머니 사태군은 대옥의 몸이 허약하여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계략에 속은 보옥이 보차와 결혼하던 날, 대옥은 쓸쓸히 숨을 거둔다. 인생무상을 느낀 보옥은 과거장에서 그대로 실종된다. 후일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만나지만, 보옥은 목례만 보내고 승려와 도사 사이에 끼여 눈길 속으로 사라진다. 언뜻 보면 단순한 러브스토리나 가문변천사로 비춰지는 이 이야기에 중국인들은 왜 이처럼 열광하고 집착하는 것일까?
《홍루몽》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다. 그 화려한 붉은 누각에는 부잣집의 귀한 딸들이 살고 있으며 여인들의 천국이자 청춘이 피어나는 아늑한 정원이다. 하지만 인생의 봄날은 결코 길지 않다. 따스한 봄이 저만치 가버리고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잎도 문득 우수수 떨어지듯 청춘은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붉은 누각에서 꾸는 꿈은 짧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꿈이요, 봄날의 꿈이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홍루몽》은 바로 꿈이라는 은유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절절한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왕궈웨이(王國維)와 같은 대학자는《홍루몽》을 ‘욕망의 비극’ 혹은 ‘인생의 비극’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비극적 죽음, 가문의 몰락 등 인생의 모든 꿈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중국인들은 늘 애통해하고, 이를 통해 인생과 우주의 지극한 이치를 깨닫는다.
영웅호걸을 중심으로 한 이전 소설들과는 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