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인용하세요

김승일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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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534권.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김승일의 두번째 시집으로 성별.연령.국적은 물론 거주 행성까지 다양한 화자들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시공간에서 “진지한 이야기”(하혜희)를 나눈다. 시인은 입력된 규칙대로 행동하지만 그 규칙의 목적이 무엇인지 규칙을 입력한 사람조차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기계를 시의 화자로 등장시켜 기계들의 규칙이 어떤 알레고리를 만들어내는지 지켜본다.

[인터렉티브 필름] 앵무새 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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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시인의 말 유 주인 그럼 안녕 액체와 희망 컴플리케이티드 돌 포비아 레파도미솔 눈물의 방 가장 좋은 목표 의도하지 않았다 지옥 나는 계속 이렇게 할 수 있다 어시스턴트 홀이 모든 것이 숫자로 보인다고 했다 신뢰 행복한 죽음 유리해변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기계문과있었다 장미정원 히말라야시다 무인도의 왕 최원석 채찍 든 사람 채찍 인식의 확장 아픈 아이와 천사 남아공 사람이 한국시를 쓰려고 쓴 시 대단원의 막 You can never go home again 네이처 프랑스 사극 종교시 직전 첫 상봉 종로육가 공략집 인기생물 나 진짜 대단하다 에필로그 무엇이 사랑할 수 있을까 마지막 수업 해설 여기까지 인용하세요.하혜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나는 그냥 일어날 일을 쓴 것이다” 김승일, 예언가 혹은 연출자 믿는 만큼 보이는 기계신의 놀이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시인 김승일의 두번째 시집 『여기까지 인용하세요』가 출간되었다. 「나의 자랑 이랑」 등 매력적인 수록 시들로 독자들에게 받았던 사랑만큼, 유독 다양한 비평적 추정과 주장과 진단이 부여되었던 첫 시집 『에듀케이션』(문학과지성사, 2012)에서 누군가는 ‘“뜻 모를 아픔”이 몸을 숨긴 유희’(민경환)를 발견하고 누군가는 ‘비성년 소년의 날목소리’(함돈균)를 읽어냈다. 2020년을 앞둔 지금, 김승일은 또다시 어떻게 읽힐지 기대되는 시집 한 권을 선보인다. 『여기까지 인용하세요』에서는 성별?연령?국적은 물론 거주 행성까지 다양한 화자들이 “있을지 없을지 모를” 시공간에서 “진지한 이야기”(하혜희)를 나눈다. 시인은 입력된 규칙대로 행동하지만 그 규칙의 목적이 무엇인지 규칙을 입력한 사람조차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기계를 시의 화자로 등장시켜 기계들의 규칙이 어떤 알레고리를 만들어내는지 지켜본다. 형식 자체가 시가 되고 배후에는 의미가 없다. 김승일의 시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머신 픽션? 기계우화? SF시? 무엇이라 부르든 규칙에 동의하는 순간 설득당하는 것은 분명하다. 믿으라. 이 시집은 재미있다. 이제부터 우리는 신의 놀이를 한다 정말로 이것(시)은 내가 쓴 가면(화자)의 이야기인가? _2018년 9월 23일 김승일의 일기에서 하지만 확실한 것은 화자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언제나 작가 자신이고, 타자나 현실을 반영하려고 했다는 노력은 변명에 불과할 때가 많지. _2018년 문보영 시인과의 인터뷰에서 시인과 화자는 붙어 있지만, 글을 쓸 때의 나와 생활할 때 내가 완전히 같을 순 없죠. 문학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번복이에요. 하나를 묘사하더라도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문학에서 말을 계속 번복하고, 그 말을 전달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달라져요. 지금 누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것만으로도 시가 한결 쉬워져요. 하고 싶은 말이 더 앞서고, 누가 말하는지 계속 잊어버릴 때 현학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기 쉬워요. 그러니 언제나 내가 누구로서 말하고 있는지 연습해보는 거죠. _2019년 강연에서 독자는 화자와 시인을 동일시하기 쉽다. 화자들을 만들어낸 사람이 한 명의 연출자(시인)이기 때문에 묻어나는 일관성은 지워질 수 없다. 그러나 김승일의 시에서 화자들은 비교적 독립돼 있다. 『여기까지 인용하세요』를 재밌게 읽는 방법 하나는 김승일이 묻었으나 김승일과 다른 존재, 화자가 누구인지 찾아보는 것이다. 김승일이 고른 화자가 누구로서 말하고 있는지 짚어 읽다 보면 이 시집은 선실마다 화자를 싣고 시간여행의 좌표를 수시로 넘나드는 난파 우주선처럼 느껴지곤 한다. 누군가는 남편과 함께 우주선 냉동고에 얼려진 채 목적지에 다다르기를 기다리는 49세기 사람이다(「돌 포비아」). 다른 누군가는 창문 바깥으로 “행성의 숲”이 바라다 보이는 선실 박람회의 대구관館에서 나무의 이름을 손녀에게 알려주며 “실재했던 대구시를 떠올린다”(「히말라야시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눈물과 오줌이 공중을 날아다”니는데 “물방울이 기계 속으로 들어가면 기계가 망가”지니까 우주선 한쪽 따로 제일 크게 “눈물의 방”도 만들어뒀다(「눈물의 방」). 2019년처럼 “세계가 좁았을 때”는 상상도 못 하는 이야기다. 생물부터 무생물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올지 안 올지 모를 먼 미래까지를 포괄하는, ‘있을지 없을지 모를 것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 있을지 없을지 모를 것 속에서,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들이 운명을 걸고 나누는 진지한 이야기’(하혜희), 그러므로 이 시들을 SF라 불러본다. 믿는 만큼 보이는 머신 픽션MF의 이해 쓰고 싶은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것들이 있으면 기계를 등장시켰어.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기계가 등장하면 나는 이 풍경을, 사건을,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 시에 나오는 이 기계는 이해하고 있다고 썼지. 나는 그런 일을 꿈꿀 수도, 절대 이룰 수도 없지만 내 시에 나오는 기계는 그런 일을 수월하게 해낸다고도 썼지. _2018년 인터뷰에서 엠에프는 머신 픽션의 약어고요 기계 앞에 앉은 사람에 대한 시를 쓴 다음부터 쓰게 되었습니다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신이 그 키워드(지시체)라고 착각하는 기계에 대한 글도 썼는데요 저는 그 기계를 홀이라고 부릅니다 엠에프는 인간이 기계의 메커니즘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영혼은 이해할 수 없으며 기계의 영혼을 영혼이라고 명명할 수도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둔 장르입니다 기계에 파롤이 있다면 이 역시 포함시킬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어떤 기계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시 쓰는 기계랑 쾌락 느끼는 기계랑 꺼진 기계랑 망가진 기계랑 없어진 기계랑 다시 만난 기계가 되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부분 김승일은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피곤해진 다음부터 기계를 시에 등장시키기 시작했고, 몇 년 동안 계속 기계시를 써왔다고 한다. 머신 픽션, ‘엠에프’는 시 쓰기를 쓰는 것에 대한 시다. 시집의 첫 시 「유」에서 화자는 기계상자 앞에 앉아 있는 신이다. 「그럼 안녕」에서는 시 「유」와 동일한 상황이 명료한 문장으로 요약돼 있다. “신과 상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상자는 상대방을 완벽하게 학습하는 기계장치다. 상자가 신의 모든 것을 학습한다. 신이 신으로 남기 위해선 누구보다 전능해야 한다. 신의 전능이 늘어난다. 상자가 다시 학습한다. 반복이다. 이어서 김승일은 “키워드를 입력하면 자신이 그 키워드(지시체)라고 상상하는 기계”(홀)를 상정한다(「홀이 모든 것이 숫자로 보인다고 했다」). “홀을 작동시키기 위해 당신은 홀이 자신이 홀임을 의심하지 않고 의심할 수 없고 의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주셔야 합니다”(「여기까지 인용하세요」). 이제 글을 쓰는 것은 시인이 아닌 기계다. 기계들은 믿고 싶지 않은 일을, 믿기지가 않을 일을,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났던 모든 일을 믿는다(「신뢰」). ① 규칙을 따를 것 ② 의심 없이 믿을 것.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다. 머신 픽션은 종교를 닮아 있다. “엠에프를 처음 전개한 사람의 초기 발상은 자신이 만든 종교가 사이비라는 것을 처음부터 대중에게 주지시키면서도 자신은 그 종교를 믿겠다고 피력하는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다”(「여기까지 인용하세요」). 믿음에 동의한다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세계. 김승일은 머신 픽션으로 신과 세계가 작동하는 시스템을 연출한다. 어째서 신이라는 비유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그건 우리가 형체를 통해서만 사랑하기 때문 같아요. 너와 나를 갈라 세우는 형체가 있어야만, 피조물이라는 비유가 있어야만,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저장해놓을 만한 옛 순간, 우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 있어야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허망해지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혜희(시인) 이 시집의 해설을 쓰기 위해 ‘독자평의회’를 구성(혹은 그렇다고 주장)한 시인 하혜희는 말한다. “여기서 정말로 어떤 문제, 다시 돌아오는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독자들,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독자 여러분이 아닐까?” 규칙 속에서 시들이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는 이 시집에서 예측 불가능한 것은 독자 여러분뿐이다. 김승일은 마지막 시에서 “더는 기계에 대해서 쓰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마지막 수업」). 김승일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계시집을 놓치지 말 것. “더 많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놀라운 작품”(시인의 글), 이 시집의 기쁜 변수가 되어주기를 독자들에게 요청한다. 그래 여러분. 지옥에서 만납시다. 생각을 들고. 아직 지옥이 없어서 지옥부터 만들 것이다.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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