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21세기 ‘손상된 영화’의 풍경을 그리다
영화평론가 김병규 첫 평론집
“영화가 잃어버린 것은
손이라는 특별한 장소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영화사의 위기들을 점철해
새로운 성좌를 그리는 비평적 실천
『빈손의 영화』에서 저자는 영화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되돌아보면서 동시대 영화가 놓인 자리를 감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과거와 결코 분리될 수 없듯이 21세기의 영화도 이전 세기의 영화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는 간명한 전제로 하여금 저자는 현재 영화가 놓인 새로운 장소를 포착해낸다.
손은 주어진 사물을 붙잡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세계의 비밀과 접속하는 영화의 단면이다. 하지만 〈남쪽〉의 소녀가 손에 잡고 있던 그림엽서, 메모, 영화 포스터가 서서히 사라지고 불타서 없어지듯이 영화사에서 손의 의미는 흐릿해지고 있다. 그리고, 2023년에 공개된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미겔(마놀로 솔로)은 두 손에 어떤 도구도 지니고 있지 않다. 빈손의 영화가 도착한다.
- 「책머리에」에서
총을 단단히 움켜쥐던 20세기 서부극 속 주인공의 손이, 자꾸만 물건을 놓치는 21세기의 무능한 빈손으로 스크린에 돌아올 때 지금의 영화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빈손의 영화』는 이 긴요한 질문에 응답하려는 비평적 실천을 보여준다.
“연결을 끊어라.
그리고 다시 (작은) 연결을 모색하라”
서로 다른 영화의 좌표를 잇다
저자는 『빈손의 영화』에서 홀로코스트라는 절멸의 시간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무능한 예술”인 영화가 그 잃어버린 역사를 어떻게 현현시키는지 살펴보고(1. 부서진 장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목할 만한 동시대 영화의 시도를 톺아 일별하며(2. 영화는 어디에 있습니까),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자신의 황금기로 자꾸만 회귀하려는 오늘날의 미국영화를 진단한다(3. 아메리칸 언더그라운드). 이어 1980년대 일본영화계에서 촬영소 시스템이 붕괴한 이후 일본영화에 잠재한 위태로움을 소마이 신지, 아오야마 신지, 구로사와 기요시,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의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4 유예된 몸짓), 위기를 지나 폐허가 된 한국영화의 현 상황을 냉철하게 직면한다(5 망각의 연대기).
폐허의 한가운데서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향수에 젖은 추억을 되새기거나 지나간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실현되지 않은, 그러나 언젠가 도래할 영화의 잠재성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을 붙들어 역사를 다시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고정된 장소를 떠난 영화를 멀리서 응시하면서 가능한 다른 방식의 연결과 결합을 시도하는 것. 다시 말해 영화를 이루는 기존의 조건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영화를 지속시키는 방법에 대해 자문해보아야 한다.
- 「폐허와 상속인」에서
김병규 평론가는 이 책에서 영화사의 단절과 위기를 중점에 두면서도, 이 위태롭고 부식된 예술을 마냥 우려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서로 다른 맥락에 놓여 있던 영화들의 좌표를 이어 이 시대의 성좌를 탄생시킨다. “어느 때보다 파편적으로 조각나” 있는 영화는 이로써 다시금 논의의 장소를 얻는다. 영화의 역사를 채우고 있는 작품과 텍스트를 풍부하게 인용해 동시대 영화와 접속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영화를 이해하는 새로운 지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