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퍼드, 벡비, 식보이, 렌턴…… 우리가 기억하는 스코틀랜드의 쓰레기 같은 청춘들
변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완 맥그리거, 창백하게 웃으며 천장을 기어다니는 갓난아기의 모습, 이기 팝의 노래 'Lust for Life'. 1997년 개봉해 우리의 마음을 훔쳤던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원작이자 영국인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소설 10위를 차지한 어빈 웰시의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의 전면개정판이 ‘단숨’에서 출간되었다. ‘트레인스포팅’이란 기차역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역에 들어오는 기차의 번호를 적는 행위로, 영국에서는 이러한 편집증적 기벽을 가진 사람들을 ‘트레인스포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어빈 웰시는 트레인스포팅이라는 단어를 기찻길을 연상시키는, 팔의 정맥 위에 일렬로 자리 잡은 주사바늘 자국들을 가리키는 헤로인 중독자의 메타포로써 사용하고 있다. 온다는 보장도 없는 기차를 무작정 기다리듯, 점점이 새겨진 주사바늘 자국을 바라보며 오지 않을 미래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대처 수상 집권기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뒷골목, 포클랜드 전쟁의 후유증과 치솟는 실업률 속에서 젊은이들은 마약과 환각, 절망으로 자신의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기말 전 세계 젊은이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던 이 소설은 물론 작가인 어빈 웰시의 삶과 떼놓을 수 없다. 「타임스」가 말했듯, “지난 수십 년간 영국 문단에 벌어진 가장 멋진 사건”인 어빈 웰시의 등장은 소설의 배경인 에든버러의 리스에서부터 출발한다. 하층 노동계급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폭력과 마약, 일탈과 도주로 들이찬 청소년기를 보내고 록 뮤지션이 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 하지만 록 음악 대신 런던 교외의 부동산을 거래하게 된(우리의 마크 렌턴과 같은 길을 걷게 된) 그는 다시 에든버러로 돌아와 그와 똑같이 너절한 친구들 틈에서 그들의 청춘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 짧은 기록들은 여러 잡지에 발표되었고, 1993년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세상에 나온다. 『트레인스포팅』에 대한 첫 반응은 “스코틀랜드의 치부”, “패배자들의 똥 덩어리”, “역겹다”는 것이었지만, 곧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스코틀랜드를 넘어 영국 전역의 서점을 뒤덮었고 「뉴욕타임스」,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 유수의 매체에서는 찬사를 쏟아낸다. 당대 젊은이들의 하위문화를 적나라하게 다뤘다는 점 외에도 스코틀랜드 사투리와 청년들이 사용하는 은어와 비속어의 전면적인 사용, 치밀한 심리 묘사와 초현실적 요소 등으로 인해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은 이 소설은 그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두 명의 여성 심사위원의 격렬한 반대로 최종심에서 탈락한다. 1996년에는 소설을 원작으로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트레인스포팅 신드롬’을 낳았고, 주인공 마크 렌턴 역을 맡은 이완 맥그리거는 세기말 청춘의 아이콘으로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이후 이 작품은 스코틀랜드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불멸의 소설’이자 세기말 젊은이들의 하위문화를 가장 치열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문학사에 자리매김했으며, 조지 오웰의『1984』,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등과 함께 영국인이 뽑은 20세기의 100대 명저 10위에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