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근대 문학의 지표 나쓰메 소세키
‘게으를 권리’와 심미주의로 파헤친 시대와 사회의 모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채, 감미롭고 강렬한 향기가 담긴 탐미적 서사
“선생님, 심장 고동 소리가 약간 이상해지지는 않았나요?”
일본 근대 문학의 지표-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근대 문학사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널리 애독되고 있다. 얼마 전 이와나미 문고는 창립 90주년을 맞이하여 실시한 독자 설문 조사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1,2위를 차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100위 안에 총 7권이 수록되었다. 또한 현재 유통되는 1000엔 지폐에 실린 초상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일본의 저명한 문학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나쓰메 소세키만큼 각가지 장르와 문체를 구사한 작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 다양성은 하나의 수수께끼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또한 소설가 고바야시 교지도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이었음에도 처음부터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가히 기적이다.”라는 말로 나쓰메 문학에 찬사를 보냈다.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 유학을 다녀온 뒤 도쿄 제국대학 전임 강사로 재직하던 중에 소설가로 데뷔하였다.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보장받았던 제국대 교수가 무엇이 아쉬워 서른여덟이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당시 일본 열도에 팽배했던 서구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기보다는 사회인으로서의 자기 몫을 다하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볼 뿐이다. 실제로 나쓰메는 영국 유학 기간 중 연무(煙霧)에 휩싸인 런던 거리를 배회하며 ‘근대’의 모순과 암부를 목격하였다. 『그 후』에서는 도쿄 상공에 검은 연기를 쉴 새 없이 내뿜는 공장 굴뚝을 바라보며 암울한 시대 인식에 사로잡히는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40여 년 전 메이지 유신 직후 일본 정부 파견으로 영국 글래스고의 공장 지대를 시찰하던 이토 히로부미 일행이 공장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에서 산업 혁명의 눈부신 성취를 목도하고는 절로 ‘아름답다’라고 토로했던 사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수동적인 근대화의 물결이 일본의 비극이라고 생각했던 나쓰메의 지론은 그의 소설을 통해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근대 일본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곤경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그려 낸 최초의 작가인 것이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와 심미주의로 파헤친 시대와 사회의 모순
『그 후』는 나쓰메의 문학 역정에서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나쓰메 문학에서 삼각관계 소설의 원형을 이룬다 해도 무방하다. 한 여자를 둘러싸고 두 남자가 불신과 질투, 사회적‧개인적 윤리의 갈피에서 고뇌를 거듭하는 것이 작품의 줄기이지만 작가는 사랑의 진행 과정이 아닌 인물의 내적인 갈등과 사고에 집중한다. 나쓰메의 대부분의 소설처럼 『그 후』에서도 지식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하지 않고 집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으며 유유자적 생활하는 ‘고등유민(高等遊民)’이다. 그는 ‘빵과 관련된 경험’을 가장 저열한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직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고귀한 부류로 치부한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메이지 시대는 근대화의 구호로 점철된 시기이다. 서구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노동과 생산이 사회의 중심 가치가 되었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부와 명예를 얻고자 하는 입신 출세주의가 위세를 떨쳤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고등유민을 자처하는 다이스케는 분명 반시대적이며 반사회적인 인물이다. 다이스케의 퇴행적이면서 자유분방한 삶의 양태는 이 소설을 세기말적 문맥에서 되짚어 볼 것을 요구한다. 많은 세기말 소설의 주인공들이 게으름을 구가함으로써 속악한 부르주아적 삶의 정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고 믿었듯이,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인 다이스케도 무위도식을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스스로의 정신적 우위를 지켜 낼 저항 수단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게으르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게으른 것은 아니다. 다이스케는 러시아의 안드레예프나 이탈리아의 단눈치오 같은 데카당 기질의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그림도 벨기에의 브랭귄이나 아오키 시게루의 작품처럼 탐미적‧장식적인 것을 선호한다. 또한 선잠을 잘 때도 꽃향기에 감싸여 잘 정도로 향기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다. 다이스케의 감각과 취미에 대한 딜레탕트적인 집착은 사회적 고립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러한 포즈는 분명 속악한 현실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19세기말 데카당들의 퇴행적 포즈가 ‘진보’에 대한 확고부동의 신념으로 넘치던 시대 현실에 대한 염증의 표출에 다름 아니었듯이. 이러한 견지에서 나쓰메는 다이스케라는 인물을 통해 근대 지식인의 유형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만큼 다양한 장르와 문체를 구사한 작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 다양성은 하나의 수수께끼다. ─가라타니 고진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적 작품임에도 처음부터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전혀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고바야시 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