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렇게밖에 못 해줘서 정말 미안해요.”
간병과 돌봄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는 이들의 벼랑 끝 선택
진창과 폐허에서도 한 줌 빛을 찾아내는 희망의 기술
『미실』(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 『보헤미안 랩소디』(정재민), 『저스티스맨』(도선우), 『도서관을 떠나는 책들을 위하여』(오수완),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고요한) 등 매해 걸출한 장편소설을 배출해온 세계문학상, 그 열아홉 번째 수상작인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 출간되었다.
185편의 응모작 가운데 심사위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이 작품은, 간병과 돌봄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는 두 주인공이 벼랑 끝에 내몰린 현실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의 빛을 찾아가는 잔혹하고도 따뜻한 이야기다.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50대 여성 명주와 뇌졸중 아버지를 돌보는 20대 청년 준성은 잇따르는 불운과 가혹한 현실에 좌절하던 중 예기치 못한 부모의 죽음에 직면하자 그 죽음을 은폐, 유예한다. 막다른 길에서 그들이 감행하는 결단과 선택의 과정을 작가는 입체적이고 치밀하게 그리며 설득력 있는 서사를 만들어낸다.
일곱 명의 심사위원(최원식, 강영숙, 박혜진, 은희경, 정유정, 정홍수, 하성란)은 “병든 부모를 돌보느라 정작 자신의 삶은 돌볼 수조차 없는 두 이웃의 비극을 그리는 이 작품은 자연주의 소설의 현대적 계승인 동시에 비관적 세계에 가하는 희망의 반격”이라며 “끔찍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보여준 이 서슬 퍼렇고 온기 나는 작품을 올해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으로 정하는 데 이견은 없었다.”고 밝혔다.
“모든 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고,
돌봄은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지.”
명주는 1년 반 전 치매가 심해진 엄마와 살기 위해 엄마의 임대아파트로 들어왔다. 이혼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발에 화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어 선택한 길이었다. 100만 원 남짓한 엄마의 연금에 의지해 엄마를 간병하며 살아가던 명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삶도 끝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명주는 마음을 바꿔 엄마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고 당분간 엄마의 연금으로 살기로 한다. 하지만 시신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엄마의 친구라는 할아버지와 이혼 후 떨어져 살던 딸 은진이 접근해오자, 매장이 시급해진다. 화상 후유증을 진통제로 달래면서 매장할 장소를 고민하던 명주는 피를 묻힌 채 복도로 뛰쳐나온 옆집 청년 준성과 마주친다.
명주의 옆집에 사는 준성은 고등학교 때부터 뇌졸중과 알코올성 치매가 있는 아버지를 돌보며 사는 스물여섯 살의 청년이다. 물리치료사가 되어 병원에 근무하는 것이 꿈이지만, 매일 아버지를 운동시키고 살림에 대리운전까지 하는 그의 나날은 녹록지 않다. 아버지를 회복시키려는 그의 노력에도 몰래 술을 사 마시는 아버지에게 절망하던 차, 집에 불이 나 아버지가 화상을 입게 되고, 준성마저 손님의 외제차에 손상을 입혀 거액의 수리비가 나온다.
준성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오고 수리비를 재촉하는 차주의 압박전화에 시달리며 점점 피폐해져간다. 그러다 아버지를 목욕시키던 중, 실수로 아버지를 놓치고 마는데…….
손에 피를 묻힌 채 뛰쳐나온 준성을 급히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명주. 욕실 바닥에 피를 쏟고 누워 있는 노인을 보고 119를 부르려는 순간, 난 이제 감옥에 가느냐며, 이제껏 내 인생은 뭐였는지 모르겠다고 울부짖는 준성을 본다. 평소 준성을 안쓰럽게 여기던 명주는 준성이 경찰 조사와 재판을 받고 죄책감에 폐인처럼 살아갈 모습을 떠올리며 그를 위한 최선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긴 간병의 터널 끝에서 두 사람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분명한 것은 누구도 그들의 결정에 돌을 던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본문에서)
“저건 뭐야? 꼭 관처럼 생겼네?
그 안에 혹시 할머니 있는 거 아냐?”
엄마의 부재에 대해 거짓에 거짓을 보태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명주의 일상은 스릴러 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명주는 나무관에 누운 엄마의 상태를 매일 관리하며 주변의 시선을 예의 주시한다. 어머니 잘 계시냐는 이웃의 가벼운 인사에도 의심의 촉수를 세우고, 제각각의 이유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철저히 경계한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엄마의 친구라며 계속해서 안부를 물어오는 진천할아버지와 돈을 뜯어내기 위해 막무가내로 접근해오는 딸 은진의 존재다.
엄마와 제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진천할아버지는 엄마의 쾌유를 빌며 계속해서 문자와 선물을 보내고, 눈치 빠른 은진은 작은방의 나무관을 본 후 “그 안에 혹시 할머니 있는 거 아냐?”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는다. 생각지도 않은 복병들의 눈을 피하려면 하루속히 엄마를 흙으로 보내드려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명주는 골칫덩이 은진과 티격태격하다 그 방법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엄마가 사놓은 땅은 대지 80평에 건물이 17평 정도 되는 작은 시골집이었다. 엄마는 폐가로 나온 집을 늙어서 살 요량으로 사놓은 것 같았다. (…) 명주는 이제야말로 작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기분이 들었다. (본문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희망을 품지도 않았지만,
살아 있는 한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그로 인해 일상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묘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엄마의 치매에 명주는 처음엔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를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하루하루는 지옥이 되고 인간의 존엄이란 바닥으로 떨어진다. 준성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벗어나려 할수록 발이 빠지는 진창이고, 미래는 꿈꿀 여지가 없다.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과 절망”으로 시작된 소설은 두 주인공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잔혹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전환된다.”(은희경) 임대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인 명주와 준성은 서서히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명주가 준성에게 연민을 느끼고, 준성이 명주에게 동조하면서 둘은 서로를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공포와 죄책감을 떨쳐내고 큰일을 함께 치른 두 사람은 어느덧 새로 형성된 가족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태운 트럭이 두 구의 미라를 싣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헤쳐 나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제 그들이 혹한의 겨울을 지나 온기 가득한 계절로 진입하고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가슴속에서는 오라고, 어떤 운명도 상대해줄 테니 오라고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었다. 준성은 지금 바닥으로 떨어진 제 인생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인생을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아냈듯이, 준성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싸워가고 있다고. (본문에서)
문미순 작가는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몇 해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병하며 가족을 돌보는 일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된 돌봄 문제를 소설로 다뤄보기로 결심했다. 가족 돌봄에 지쳐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간병 살인이나 간병으로 인한 파산, 실직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 이것이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