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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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불안과 공존하는 치열하고 자세한 감수성 환자가 아닌 화자로서 거식증을 재발견하다 “거식증의 회복re-covery을 넘어 발견dis-covery으로”_정희진 “거부와 결핍에 관한 용감하고도 놀라운 기록”_최지은 드러난 갈비뼈와 가느다란 손목, 푹 패인 눈두덩과 튀어나온 광대뼈. 거식증 환자는 앙상한 해골 같은 여자의 이미지로 간편하게 대표되어왔다. 여기에는 환자를 미성숙하고 한심한 여자들, 갱생이 필요한 중독자들로 규정하는 힘이 있다. 이때 거식증은 비정상적인 것, 금기시해야 하는 것, 어서 빠져나와야 하는 구렁텅이 같은 것 이상으로는 사유되지 못한다. 환자를 환자로만 규정짓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하는 자’가 어떤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지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삼키기 연습』은 20년가량 거식증을 겪어온 저자가 ‘환자’가 아니라 ‘화자’로서 써낸 수기다. 소설 같기도 일기 같기도 한 이 책에 회복과 치유의 감동적인 서사는 없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난한 싸움, 거식증과 저자가 함께 만들어낸 위태로운 삶이 있을 뿐이다.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있어, 거식증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해내야만 할 깊고 본질적인 진실, 좀더 많은 지식으로 번역해내야만 할 경험이다. 무엇 때문에 거식증이 찾아왔는지, 어떻게 나을 수 있을 것인지보다, 다만 ‘이게 무엇인지’를 저자는 오랜 시간 공들여 탐구하고 기록했다. 여기에 정신 질환을 이야기하는 새롭고 중요한 방법 하나가 있다. 회복?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병이지만, 내 생존 방식, 내 존재 방식이기도 했다. ‘그것’을 버리고도 살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질 않는다.”_175쪽 16년 만에 식사치료를 재개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루에 여섯 번씩 폭식구토를 하고 일상이 무너지는 등, 청소년기에 찾아온 거식증이 서른여덟 살이 될 때까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거식증 환자의 30퍼센트는 부분적으로만 회복되고, 20퍼센트는 고질적인 환자로 남는다고 한다. 그중 30퍼센트로서 계속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중인 저자는 다시 찾은 ‘슈퍼바이즈드 테이블’에서 처음 입원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20년간의 생생한 경험을 숨기지 않고 풀어내기 시작한다. 책에는 거식증 환자의 증상과 심정이 자세하게 드러난다. 안방 이불 속에 있다가 동생에게 밟혔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거울 속 야윈 몸에서는 ‘기둥과 들보, 서까래처럼 아름다운 구조’를 발견한다. 몸에 밴 절차에 따라 위장을 준비시키고, 4인분의 음식을 삼키고 게워내고, 깔끔하게 입을 헹구고 현장을 정리하는 등 폭식구토의 ‘베테랑’이 된 것은 당연하다. 약물 남용으로 자살을 시도한 것도 몇 번씩이나 된다. 그러나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20대 초반 때의 예견처럼 저자는 오랜 시간 흔들리면서도 끝내 이 모든 것을 글로 써냈다. ‘살아남았다’ 혹은 ‘극복했다’는 말보다는 그저 ‘살아냈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 이해의 대상으로서 거식증과 관계 맺은 결과다. 거식증은 일상을 고통스럽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지만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계속해서 저자와 공명하면서, 역설적이지만 삶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 지난한 과정은 그야말로 ‘삼키기 연습’의 반복, 거식증을 지워버리는 연습이 아니라 거식증을 끌어안고도 나름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연습의 반복이었다. 입원병동의 아이들 “그러나 하트 모양 크로켓은 그 반대편에 있다. 외양은 겸손하지만 속은 알 수 없다. ‘사랑’은 그 어떤 말보다 다의적이기 때문이다. 자기희생, 눈물, 종속, 침이 그렁그렁한 치아를 드러내며 집어삼킴, 식인, 무경계, 무치無恥, 타의적인 함구緘口와 실어失語, 긁을 수도 없는 뼛속이 간지러워 실실 웃는 웃음, 붉어진 살갗, 허벅지 안쪽의 장밋빛 살갗, 과식, 뒤엉켜 물고 뜯는 싸움…… 내가 먹어야 했던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_65쪽 저자는 섭식장애 전문 입원병동에 여러 번 입원하고 퇴원했다.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따듯함과 긴장, 10대에서 20대인 어린 환자들의 날 선 마음, 그곳 병동에 가득했던 묘한 공기를 그는 모두 놓치지 않고 자세한 문장으로 기록한다. ‘너희가 말하는 게 아니라 거식증이 말하는 것이니 참겠다’는 식으로 속을 긁는 원장과 ‘난 우리가 정신과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소리치는 아이들이 있었다. 환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마음보다는 무엇이 되었든 규정당하지 않으려는 마음, 함부로 해석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에 가까울 것이다. 병동의 아이들은 ‘어떤 음식도 숫자로 번역해낼 줄 알았다’. 음식 하나하나의 칼로리를 외우고 다니고, 식사 시간에는 서로의 음식을 바꿔 먹기도 했다. 지하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소리와 음식을 올려 보내는 승강기의 소리는 괴수가 그르렁대는 것과도 같았다. 식탁에 앉으면 금방이라도 불붙을 것만 같은 기류가 생기곤 했다. 누군가는 먹고 누군가는 먹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먹음직스럽게 만든 큼지막한 하트 모양 크로켓 앞에서 아이들은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씹어 삼킨다는 것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아이들과 어떻게든 음식을 먹이려는 어른들 간의 격차가 병동의 식탁 위에 있었다. 저자가 써 내려간 입원병동의 풍경은 거식증 환자들의 자세한 내면을 스스로 재현하고 있다.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오롯한 주체로 환자들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그 일원으로 화자가 되어 직접 말하면서, 거식증 환자의 리얼리티를 강렬하게 구축해내는 것이다. 상처 입은 치료자 실비아 플라스, 루이즈 글릭, 피오나 애플, 데이비드 보위, 마샤 리네한, 베르타 파펜하임, 엘렌 베스트…… 이 책에는 저자에게 강렬한 영향을 준 이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저자는 도서관과 인터넷, 트위터 등을 통해 거식증과 관련된 인물, 정보, 커뮤니티를 열정적으로 찾아다녔다. 대학 시절엔 ‘펍메드’라는 의학 논문 데이터베이스에서 논문 초록을 수집했고,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큐멘터리 최초로 섭식장애를 다뤘을 때는 기사와 논문 등을 모아 100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제보한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프로아나’ 등 거식증 커뮤니티 웹사이트나 트위터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소셜미디어는 비슷한 경험을 해본 타인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저자는 그렇게 발견한 사람들의 삶을 추적했다. 이런 오랜 탐색과 수집의 세월은 ‘다른 세대의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는 지금의 그를 만든 중요한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거식증으로 인해 고립되지 않고 오히려 타인들과 연결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다. 그리고 이 책 스스로도, 어딘가의 독자에게 과거와 현재의 타인들을 소개해줄 환한 입구가 될 것이다. 거식증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나날 속에서 저자는 ‘상처 입은 치료자’로 나아가려 한다. 루이즈 글릭, 마샤 리네한, 피오나 애플과 같이 ‘직접 겪은 경험’을 시, 회고록, 음악 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해온 이들이 있고, 저자도 그중 하나가 되려는 것이다. 간호사와 의사, 글쓰기 선생님과 주고받아온 편지들 속에는 어떻게 하면 좀더 적확한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득하다. 물론 이때의 치료는 거식증을 타자화하는 치료가 아니다. 직접 질환을 경험했고 그게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상처 입은 치료자’들이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좀더 나은 삶을 함께 고민한다는 의미에서의 치료다. ‘직접 겪은 이’가 말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거식증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현재 정신적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탐구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환자들에게 치료 동기를 만들어줄 수 있을지, 환자를 ‘매끈하게 마름질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