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자유롭게 해준 말들을 널리 내보낸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감응의 작가 은유가 전하는 당신을 자유롭게 할 책 읽기
르포르타주, 인터뷰,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글쓰기를 통해 ‘믿고 읽는 작가’로 자리잡은 은유가 5년 만에 산문집을 펴낸다. 신작 『해방의 밤』은 어느덧 ‘중견 작가’라 불리지만 ‘나는 가운데(中)도, 굳어지는 것(堅)도 싫다’고 말하는 저자가 중심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굳어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해온 수련의 기록이기도 하다. 가장 내밀한 곳에 새겨왔던 문장들부터 자신을 살린 책까지 ‘혼자만 알면 반칙인 말들’을 은유만의 감각과 시선으로 나눈다.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든다는데 역설적으로 저자는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하고, 되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 시대에, 은유 작가는 자신을 ‘쓰는 사람’에 앞서 ‘읽는 사람’으로 정체화하며 독서에 대한 오랜 믿음을 고백한다.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하고, 잘 살려면 잘 읽어야 한다. 굳어버린 내면을 말랑하게 만들고, 삶을 ‘기계의 속도에서 인간의 보폭으로’ 바로잡아줄 글들을 담았다.
“책을 집어드는 밤은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이자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자아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다.”
『해방의 밤』은 관계와 사랑, 상처와 죽음, 편견과 불평등, 배움과 아이들 등 다양한 범주의 주제를 종횡무진하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저자는 책이 해방의 문을 여는 연장이라 말한다. 읽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고정된 생각과 편견을 하나씩 깨뜨리며 자유로워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으로 인해 혼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한번 해방된 사람은 무지와 무감각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해방의 독서’는 그로 하여금 우리 삶 곳곳에 억압과 통제가 있음을, 타자의 해방과 자신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웠고, 모두의 자유로움을 위한 독서와 배움으로 그를 이끌었다.
왜 ‘밤’인가. 낮의 소란이 지나가고 시간이 경과해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다. 초보 워킹맘 은유는 고단한 낮의 일과가 저문 밤의 고요를 틈타 식탁을 책상 삼아 독서를 했다. 그 밤에 저자는 육아서나 자기계발서처럼 낮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쓸모없는’ 책들을 읽었고, 그 시간 동안은 ‘누구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고유한 존재이자 익명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낮의 노동을 내려놓고 책을 집어드는 밤은,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자아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사는 게 여러 갈래라는 걸 아는 게 해방이다.”
우리를 더 나은 삶의 자리로 안내할 은유의 문장들
초보 워킹맘 시절 유아차를 끌고 도서관에 다니던 저자는 이제 대출인보다 강연자로 더 자주 도서관을 출입한다. 열람실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을 흘끔거리며 저기가 내 자리인데, 생각하지만 강당의 맨 앞 한가운데로 인도된다. 그가 책기둥 사이에서 던지던 질문을 이제 독자들이 그에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이 좋은 삶일까요. 우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커다란 질문들 앞에서 다시 막막해질 때면 그는 다시 책장을 뒤적거렸다. 이 책은 질문을 던져준 독자, 동료, 친구에게 보내는 은유의 늦은 답장이기도 하다. 젖먹이를 데리고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학인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는 푸념에 캐럴라인 냅의 『욕구들』을 권하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다”라며 단호한 응원을 전하고,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는 도반에게는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이라는 라이너 쿤체의 시구를 인용하며 위로를 전한다. 그외에도 울프, 톨스토이, 에르노 등 주옥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저자 특유의 사려 깊고 마음을 울리는 문장으로 전달된다.
저자는 이토록 깊은 애정을 드러내면서도 책을 물신화하거나 신앙화하지는 않는다. 한때는 독서가 무조건 삶을 이롭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들어 책에 대한 사랑을 잠시 유보하기도 했다는 저자는 삶 속에서 책과 함께, 또 책에 맞서 싸워온 과정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반사회적 가족』을 교본 삼아 자녀들에게 “가족 바깥을 향해 몸을 틀어”보겠다며 자취를 선언하고, 리베카 솔닛을 읽으며 그도 기혼 유자녀 여성이었다면 집안과 밥상에서 전투했을까 한탄하는 대목 등에서 책을 삶으로 논파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해방의 밤』은 한 사람이 읽은 책들에 대한 글이지만 독후감 모음은 아니다. 이 책에 언급되는 책들은 필독서 목록과는 거리가 멀다. 서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책,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책, 배를 불려주지도 않고 스펙이 되지도 않는 책, 온종일 쓸모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가득한 사회에서 도통 무용해 보이는 책들. 하지만 그런 책들만이 거칠고 메마른 일상에서 한 사람을 구원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실천적 읽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종종 갑갑해지는 이들에게 『해방의 밤』을 권한다.
“한 사람을 살려둔 책들의 목록과 이야기가 담긴 ‘독서의 보물지도’를 여러분 생의 윗목에 두고 갑니다. 나를 살린 책들이라면 남도 살릴 수 있으리라는 간곡한 마음으로요.”(3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