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이고 논쟁적이며 대담하다”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사건과 플롯
180마력으로 돌격하는 단요표 신학 스릴러
새천년파는 그들의 교주가 재림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저버리고 도망쳤기 때문에 구원이 한정 없이 미뤄지는 중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전 세계의 기근과 빈곤, 질병, 전쟁, 그로 인한 분쟁과 슬픔과 고통은 모두 교주에게 책임이 있다.
〈탕아〉 pp. 47~48
2022년 《다이브》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문윤성SF문학상과 박지리문학상을 모두 수상하며 단 2년 만에 한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신예로 부상한 단요가 첫 신학 스릴러 장편소설 《피와 기름》을 펴낸다. 작품의 기본 골조는 작가가 직접 밝힌 것처럼 영미식 미스터리·스릴러이며, 그 위로 윤리적이고 신학적 고민들을 단요만의 방식으로 엮어냈다.
주인공 ‘우혁’은 신비한 힘으로 자신을 되살려준 소년과 거의 20년 만에 재회하고 그에 얽힌 사건들에 휘말리며 거대한 음모 속으로 말려 들어간다. 그 중심에는 당시 중학생 우혁을 치유해준 백운산 계곡의 소년이자, 1999년 12월 31일을 세계의 마지막 날로 예언하여 서른두 명의 추종자들을 집단 자살로 이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소년 교주 ‘이도유’가 있다. 그는 우혁의 기억 속 모습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서른넷의 우혁 앞에 나타난다. 곧 우혁은 여전히 이도유가 세계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는 재림 예수라 믿는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그를 추적해온 기업가이자 과거 그의 추종자였던 ‘조강현’에 대해 알게 되고, 이들의 행적과 세계의 진상에도 조금씩 접근하게 된다. 과연 우혁은 이도유의 정체가 무엇인지, 세계는 정말 종말을 맞을 것인지 밝혀낼 수 있을까? 단요는 속도감 있는 서사와 작중인물이 쏟아내는 강변들을 통하여 이 신학적 미스터리를 “도전적이고 논쟁적이며 대담하”게 풀어나간다(소설가 문지혁).
세계 윤리를 집요하게 캐묻는 도발적 서사
은총 없는 세계를 향한 날선 질문들
신은 셈법 바깥의 은총을 내리는 존재이므로 이 세계에 거하지 않는다. 오직 그림자뿐이다. 따라서 그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동시에 죽도록 내버려둔다.
〈이미 그리고 아직〉 p. 381
전작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에서 모두의 머리 위에 정의와 부덕의 지표를 드러내는 수레바퀴가 떠올라 있는 세계를 보여주며, 세계 윤리에 대한 도발적 질문을 던졌던 단요 작가가 이번에는 신학적 관점에서 세계 윤리에 대한 집요한 논의를 이어간다. 《피와 기름》은 우혁이 이도유와 재회하고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출발하지만, 이 여정은 세계의 진상에 대한 질문과 맞닿는다. “전 세계의 기근과 빈곤, 질병, 전쟁, 그로 인한 분쟁과 슬픔과 고통”(pp. 47~48)에도 불구하고 다 소비되지도 못할 상품이 넘쳐흐르는 세계. 그리고 이런 세계와 무관하다는 듯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맛있는 저녁을 먹는 일은 과연 정당할까? 작중인물들은 필연적으로 이 질문을 마주하고 각자의 답을 내놓는다.
이도유를 집요하게 추격해온 조강현은 언제나 세계 반대편에 기아와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견지하는 인물이다. 그는 모두가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만 한다고 믿”(p. 379)고 그러려면 신성을 통해 세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물심양면으로 우혁을 돕는 조력자이자 논술학원을 운영하며 성실한 일상을 꾸려가는 ‘김 형’은 조강현이 지나치게 유아적이라고 일갈한다. “어른이라면 주어진 현실과 믿고 싶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p. 264)야 하는데, 조강현은 당위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우혁은 자신은 “지구 반대편에서 30만 명이 굶어 죽더라도 오늘 저녁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눈앞에서 100명이 죽는 건 견디지 못”(p. 384)한다고 응답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동시에 죽도록 내버려두는 신에게, 그리고 그러한 세계를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독자들에게로 돌아간다.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과 이 세상이 비참으로 가득하다는 사실”(p. 223)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단요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쉬이 결론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을 작품 속에 부려놓는다.
대치동 사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묵시록
한국 사회의 이면을 들추는 도박중독자의 시선
《피와 기름》의 또 한 가지 장점은 한국 사회의 풍속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우혁이 학원 강사로 일하는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부터 시작해, 똑같은 대기업 상표로 도배된 을지로입구역 인근의 풍경, 각종 상품이 넘쳐나는 대형 마트 진열대가 바로 그렇다. 다만 이 풍경들이 각각 탐욕스러운 사교육 시장을 방증하는 공간이며, 자본에 잠식된 번화가, 불필요한 상품을 끊임없이 생산해대는 자본주의의 일면이란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단요는 한국 독자들이 한 번쯤 가보았을 장소들을 펼쳐놓고, 그 익숙한 풍경의 이면을 짚어내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감각하지 못하는 부조리를 화두에 올린다.
이토록 많은 소스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필요한 걸까? 이 유리병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찍혀 나와 어디로 가는 걸까? 출발지도 종착지도 없지만 모든 것을 죽여버리는 순환을 상상하자 구역감에 가까운 현기증이 치민다.
〈많은 사람의 죄〉 p. 368
우혁은 이 부조리한 공간을 배회한다. 한때 도박중독자였던 그는 돈보다 스릴에, “생명줄이 고스란히 드러날 때까지 돈을 긁어낸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희열”(p. 32)에 중독되어 있었기에 그의 눈에 들어온 이 탐욕과 자본의 풍경은 더욱 새삼스럽다. 그는 환각 속에서 햄버거 가게의 자동문이 순금으로 변하고 랄프 로렌, 폴 스튜어트, 브룩스 브라더스 등 각종 상표명이 불타는 글자로 머릿속에 압인되는 광경을 지켜보는데, 이는 작품 속의 “종말론적 비전”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에게 세계가 멸망해 마땅해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에게 세계는 “사람들이 더 오래 괴로워하다가 지옥에 떨어지고 마는”(p. 93) 곳이며, 스스로에 대해선 “종말 버튼이 눈앞에 있다면 그냥 눌러버리고 싶은 인간”(p. 194)이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세계의 진상에 접근해가며 그는 점차 마음을 바꾸게 된다. 자신에게 소망을 걸어준 김 형을 통해 그는 세계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을 발견한다. “형이 날 학원에 데려왔고, 내가 미친 소리를 해도 들어주고, 미친 짓을 벌여도 계속 믿어줬으니까”(p. 399), 그는 김 형을 생각해서라도 세상을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한다. “서른세 살의 나처럼, 완전히 낭떠러지 앞까지 도착한 사람들을 붙잡아 세우는 일”(p. 413)을 하면서. 부조리한 세계를 똑바로 응시하면서도 그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일, 어쩌면 그것은 우리 시대의 소설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소설가 문지혁의 표현처럼, 단요는 “입을 다물고 경탄할 수밖에 없”는 재능으로 이를 탁월하게 성취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