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가장 장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곳은 인간이다.
하나의 사건이 미치는 영향은 보편적일 수 있다. 하이네는 종교개혁이 끼친 영향이 종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 칸트의 철학이 철학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성서가 번역됨으로써 독일의 언어가 통일될 단초가 마련되었다면, 자기의식을 정초한 철학에 의해 사유의 자유가 확립됨으로써 추상적 희망에 지나지 않았던 통일된 독일, 독일의 근대화도 현실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근대화된 독일에 대한 열망은 문학에서 꽃을 피웠다.
스피노자의 말마따나 긍정은 부정. 늘 그렇듯이 하나의 사건이 이룬 의식적 성과에는 무의식적 결과도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종교개혁도 철학도 예기치 못한 결과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네가 눈여겨 본 지점이 여기였다. 어차피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면 반드시 어떤 의미가 들어있을 것이고, 그 의미를 분명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해야만 했다. 그가 정신주의나 감각주의 같은 낯선 용어를 쓴 이유다. 용어가 재정립된다는 것은 근대 철학의 역사 또한 재정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와 철학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하이네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인간의 신성, 존엄성이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의 존엄성은 낭만주의의 몽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존엄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를 전제한다. 정신의 풍요를 내세워 빈곤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다. 하이네는 이렇게 힐난했다. “네가 고결하다고 해서 이 세상에 맛있는 케이크도, 달콤한 포도주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 힐난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토머스 페인이 인권은 상식이라고 설파한 지 반 세기가 지나고 나서도 (사실은 지금도) 인간의 존엄성은 윤리 교과서에나 나오는 당위에 머무를 뿐 상식으로 확증되지 않았다. 하이네는 이 문제에 다시 도전했다. 그는 범신론이라는 위험한 사상을 가지고 기개가 넘치는 당찬 어조로 인간의 신성함이라는 자기의 확신을 당당하게 표명했다. “신이 가장 장엄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곳은 인간이다.” 스피노자는 철학을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그것은 하이네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감각주의라는 말에도 적용된다.
철학이 없는 열망은 폭력과 동의어다.
하이네는 독일의 철학이 미완성된 채로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불완전한 사유는 불완전한 말을 낳고, 불완전한 말은 불완전한 행동을 낳는다. 그는 근대화와 통일에 대한 독일인의 열망이 그 강렬함만큼이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가 보기에 셸링의 자연철학이 신비주의와 낭만주의에 미혹되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그는 독일인의 민족주의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낭만주의는 독일 철학이 정점에 도달한 시기에 등장한 사조였기 때문이다. 독일인의 사유는 현실과 조화를 이루는 대신 미혹에 빠져 왜곡되었다.
왜곡된 사유가 낳은 불완전한 말과 행동은 난폭하다. 이 난폭한 행동과 말은 이 불완전한 사유에 의해 다시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철학이 없는 열망은 폭력과 동의어이다. 검열은 자유로운 사유를 제한하기 위한 국내적 수단이었다. 하이네 자신이 검열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이네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었다. 독일 혁명을 낙관하면서 하이네는 그 결과가 대외적인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표명한다. 이 우려는 그의 글이 발표되고 나서 채 40년도 지나지 않아 보불전쟁으로 현실화되었다.
지식을 갈구하는 대중과 나누는 정신의 빵 한 조각
학자들과 달리 보통의 독자들은 어려운 개념보다는 현실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독자들이 철학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학자들의 말은 어렵다. 하이네는 독일과 독일의 사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프랑스의 독자들을 상대로 이 글을 썼다. 그는 이중의 통역사를 자임했다. 독일어를 프랑스어로 전달했을 뿐 아니라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쉬운 대중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하이네의 문장은 간결하고 명료하며 위트가 넘친다. 그는 스스로를 학자나 현자가 아니라 지혜의 현관 앞에 서 있는 대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의 입장에서 대중을 위해 글을 쓴 것이다. “열쇠가 없는 닫힌 곡식창고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이네는 자신의 글이 “지식을 갈구하는 대중”들에게 나누어 줄 “정신의 빵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그의 논증은 독자들의 감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점에서 이 글을 처음 발표한 잡지 발행인의 평가는 정곡을 찌른 것이다. “한 저널리스트가 또한 학문과 역사의 마부라면, 그는 분명 존경할 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그 이상이다. 그는 지금의 목마름을 해소시키기 위해 진리의 샘물을 퍼 올리는 데 꼭 필요한 그릇을 우리에게 건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