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대를 바로 세우고 글을 쓰는 사람은 법정스님밖에 없다.’
-성철 큰스님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무소유)만큼은 소유하고 싶다.’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스님을 모셨던 상좌스님들이 감수하고 공인한 유일한 소설!
이 책은 특유의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작품과 산문을 써온 작가 정찬주가 무소유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가신 법정스님의 소박하면서도 위대한 삶을 소설화한 것이다. 법정스님이 태어나 출가하고, 수행하고, 입적하기까지의 모든 행적이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문체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법정스님 사유의 핵심이랄 수 있는 ‘무소유’사상의 단초를 스님이 언제, 어떻게 접하게 되었으며, 이를 또한 어떻게 자신만의 ‘법’으로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이를 상좌 혹은 속가대중들과 어떻게 나누고 실천했는지를 소설 특유의 설득력과 적확한 묘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비교할 수 없는 위의(威儀)는 또한 소설의 내용에 대해 법정스님을 모셨던 상좌스님들이 공인하고 감수를 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법정스님의 첫 번째 제자이며 맏상좌인 덕조스님과 현재 길상사 주지로 봉직하며 법정스님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덕현스님, 그리고 법정스님과 속가의 혈연으로 맺어진 스님의 조카 현장스님이, 작가의 부탁을 받고 소설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은 후 자문과 감수를 했다. 따라서 이 책은 계통과 적법성 시비에서 자유로움을 획득하는 동시에 법정이라는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소설로서 하나의 정전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혼탁으로 물든 세계를 구제하는 조촐한 답
법정스님이 지난 3월 11일 입적한 이후, 스님이 남기신 유언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말빚을 남기기 싫으니, 당신의 이름으로 펴낸 책을 모두 절판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단정하면서도 염결한 주문은 역설적으로 스님이 남긴 책들에 대한 열광적인 관심으로 이어져, 스님의 책들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의 상위를 차지하는 현상을 낳았다. 스님의 가르침을 애써 거역해가며 ‘무소유’마저 소유하고 싶어 한 독자대중의 욕심을 탓하기에는, 스님이 속세에 남긴 향기는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맑은 것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이었을까? 『소설 무소유』는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매우 정교한 대답이 될 수 있다. 스님의 실존적 삶을, 그 삶의 빛이 머물렀던 구석구석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는 이 소설은 청빈하고 단아한 무소유의 삶이야말로 혼탁으로 물든 이 세계를 구제할 수 있는 훌륭한, 하지만 조촐한 답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작가 정찬주의 큰스님 이야기
법정스님께서 입적하신 이후에 속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님과 관련한 수많은 책들이 쏟아내고 있다. 이들 중에서 과연 스님의 사상과 마음을 온전히 보지(保持)하면서 보여주는 책들이 얼마나 될까. 스님의 무소유의 가르침의 정수를 훼절하지 않으면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책은 얼마나 될 것인가. 작가 정찬주가 『소설 무소유』를 쓰면서 가장 경계하고 저어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이 쓰는 책마저, 스님의 가르침에 누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작가에게 『소설 무소유』의 집필은 어떻게 보면 필연적이고 운명적인 것이었다. 왜냐하면, 스님의 참모습, 본래의 모습을 세상은 그냥 내버려두고 있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법정스님과 수십 년 동안 각별한 인연을 맺어오면서 가까이에서 보고 느낀 스님 본연의 인간적인 모습, 법정스님의 표현대로라면 ‘자기다움’의 모습을 사람들이 자연스레 느끼고 그들에게 스미게 하는 것이 그가 스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갚는 일, 즉 업을 푸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작가는 출판사(샘터사)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스님을 모셨고 스님의 많은 책을 만든 것을 계기로 이후 재가 제제로서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스님으로부터‘세상에서 살되 물들지 말라’는 의미의‘무염(無染)’이라는 귀한 법명도 얻는다. 이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에도 작가는 꾸준하게 스님을 모셔 아마도 속가의 사람들 중에선 스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법정스님을 모셨던 덕조스님, 덕현스님, 현장스님 등이 흔쾌히 이 책의 감수에 참여한 것도 다 이와 같은 각별한 인연을 입증한다. 만일 법정스님의 삶을 소재로 소설을 쓰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그 소설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가진 사람이 바로 정찬주일 것이다. 사실 정찬주가 스님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1993년에 입적하신 성철 큰스님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산은 산 물은 물』을 출간한 바 있다. (『산은 산 물은 물』은 『소설 무소유』의 출간에 맞춰 재출간되었다). 『산은 산 물은 물』은 출간과 동시에 산문(山門)의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소설을 통해 스님의 삶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작가 정찬주가 끊임없이 큰스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온 것은 스님의 삶 자체에 깨달음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무소유』 역시 이러한 작가의 생각이 이어져 쓰인 책이다.
맑고 향기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 ‘무소유’
상좌나 시자 스님을 제외하고는 스님의 진면목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임이 분명한 작가 정찬주가 소설 곳곳에서, 쌓아두지 말고 비울 것을 설파했던 스님의 모습, 그리고 이해에 얽힌 주문과 요청이 넘쳐나는 대처보다는 한 발자국이라도 더 자연 속으로 은둔하려 했던 스님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에 보다 큰 공을 들였던 것도 다 이와 같은 까닭이다.
작가는 자신을 철저하게 단속하고 간난신고 앞에 방치하면서도 세상을 먼저 염려하고 근심했던 스님의 모습을,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정지화면처럼 펼쳐놓는다. 작가는 또한 세상이 아프기 때문에 나도 아프다고 설파했던 유마거사의 모습과 스님을 거의 동일하게 오마주하면서, 스님이 가르친 ‘무소유’란 기실 아무도 몰래 다른 이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의도를 드러낸다. 무소유가 관념의 굴레에서 허례를 위한 장식으로 씌어지거나 공허한 구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소설이라는 매우 설득력 있는 양식을 통해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법정
일각에는 법정스님이 여러 권의 뛰어난 책을 남긴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법정스님이 엄청난 법력을 지녀 만물의 흐름까지도 좌지우지하는 ‘생불’로 불리기도 한다. 물론 양쪽의 이야기가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등대지기를 꿈꾸었던 청년 박재철이 어떻게 해서 큰스님이라 불리는 법정이 되었는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삶을 차분하게 좇고 있다.
◆ 법정스님의 행장
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에서 박근배 씨와 김인엽 씨의 아들로 출생했다. 우수영 초등학교, 목포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상과대학 3년을 수료했다.
1954년 2월 15일, 통영 미래사로 입산, 출가한다.
1956년 7월 15일, 송광사에서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계를 받는다.
1959년 3월 15일,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계를 받는다.
1959년 4월 15일, 해인사 전문 강원에서 명봉 화상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한다.
1960년 초봄∼1961년, 운허스님의 부름을 받고 통도사로 가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했고, 이 일을 계기로 타고난 문재(文才)를 발휘해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67년, 동국역경원 개설에 참여하고, 역경위원으로 활동한다.
1972년, 스님의 첫 저서인 『영혼의 모음』이 발간된다.
1973년, 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사 논설위원, 주필을 역임한다. 함석헌,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유신철폐 개헌 서명운동에 참여했으며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으로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