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묻혀 있던 ‘자살 유가족’의 이야기를
밝은 빛의 세계로 이끌어내는 치유 여행기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인구 10만 명당 31명, 하루 평균 42명, 34분마다 한 명이 목숨을 끊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떠나보낸 유가족에 관한 것이다. 한 명의 자살에 정신적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여섯 명의 자살 유가족이 생긴다고 하니 우리 사회에 해마다 10만 명에 가까운 자살 유가족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자살은 금기시되는 대화 주제이고, 자살 유가족은 쉬쉬 숨을 죽이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수 없으며, 내놓고 애도할 수도 없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한 친구에게까지 자신의 아픔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이나 자연사의 경우, 유가족들이 함께 울며 애도하다 보면 슬픔도 자연히 가시게 된다. 그러나 자살 유가족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침묵 속에서 평생 말 못 할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너무 이른 작별』의 저자 칼라 파인은 이처럼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자살 유가족의 이야기를 양지로 드러내어, 이들의 애도와 치유 여행에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썼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저자인 칼라 파인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직접 겪었고, 그 사건이 작가였던 그녀를 자살 유가족 문제 전문가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작가이자 아내로 살던 한 여성이 자살 유가족으로서 실제 겪었던 끔찍한 고통과 절망, 정신적 방황, 마침내 치유에 이르게 된 과정 전체가 이야기의 씨줄로,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 자신처럼 그런 고통을 겪었던 수많은 유가족들의 경험을 날줄로 하여 자살 유가족이 겪는 최초의 충격에서부터 치유에 이르는 모든 단계들이 전문가들의 조언과 이론적인 성찰이라는 훌륭한 바늘에 꿰어져 한 편의 잘 짜인 드라마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무겁고 심각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한 편의 흡인력 강한 논픽션 소설처럼 모든 세대와 연령의 독자들에게 강렬한 호소력과 가독성을 가진다. 물론 그것은 칼라 파인 자신이 자살 유가족이기 이전에 한 명의 뛰어난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김운하는 「죽은 자의 회상」, 「자살금지법」, 『137개의 미로카드』 등의 작품을 쓴 소설가로 원문이 지닌 육성의 억양, 음색, 감정의 변화와 진폭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냈다. 이 책은 자살을 주제로 공동 연구를 진행한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에서 자살 유가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환기를 불러일으키고자 우리나라에 번역·소개하는 책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오고 있지만, 그 실상에 비해 자살 문제에 관한 연구도, 관련된 좋은 책들도 의외로 별로 없었다. 더구나 이 책처럼 자살 유가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살 유가족의 시선에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장치나 이야기들이 부재한 현실에서 이 책의 출간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은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그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자살 유가족의 외롭지 않은 치유 여행에 훌륭한 동반자가 될 만한 책!
저자 칼라 파인의 남편은 사십대 초반의 저명한 내과 의사였지만, 몇 달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병으로 잃고 난 후 갑자기 자살로 생을 마감해버렸다. 그녀는 끝없는 의문에 직면한다. 도대체 그는 왜, 무엇 때문에 자살했을까? 왜 나를 남겨두고 떠나야만 했을까? 책에는 저자가 직접 겪은 끔찍한 상실의 충격과 고통, 슬픔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여러 유가족들의 육성을 통해 들려주듯이, 자살 유가족들은 ‘왜?’라는 질문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그 자살에 어쩌면 원인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무거운 죄책감에 시달린다. 더구나 자살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낙인 때문에 주변에 자살 사실을 숨기고, 어린 자녀나 친지에게까지 털어놓지 못한다. 이는 가족의 자살을 감추었다는 수치심으로 되돌아오고, 적절한 애도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여 유가족의 일상을 마비시킨다. 무엇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며, 따라서 남은 삶 자체가 헛되다는 생각은 우울증이나 또 다른 자살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정서적으로 친밀한 누군가의 자살을 경험한 유가족은 자살을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도피처로 훨씬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찰과 극복, 그리고 치유 여행이다. 저자는 남편의 자살을 겪은 후에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떠나보낸 수많은 유가족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한 경험은 이 책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자살 뒤에 남겨진 사람들을 특히 힘들게 하는 것은 외로움과 고립감인데, 자살 유가족은 공통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고통이 서서히 무디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개인 심리치료이든, 가족 상담이든, 영적인 위로이든, 자살 유가족 치유 모임이든 간에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저자와 이 책에 등장하는 자살 유가족들은 강조한다. 달리 말하면 ‘침묵을 깨고 이야기하기’. 그것이 시작이다. 말할 수 없던 아픔을 표현하는 것만으로 치유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택한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그들이 사랑했던 어머니, 아버지, 아내, 남편, 아들, 딸, 친구는 “자신의 고통을 너무나 은밀하게 봉인하고 있던 탓에” 외로이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해버렸지만, 그들은 “타인에게 다가감으로써”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어 다시 삶에 대한 회복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마치 ‘애도의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제안하는 듯하다. 불행히도 우리 사회는 자살 유가족의 슬픔의 함께할 줄 모른다. 한국에는 수많은 자살 유가족들이 있지만, 그동안 이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별로 없었다. 최근에야 정부나 지방자치 단체 차원에서 조금씩 자살 유가족 지원 기구들이 생기고 있는 추세이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자살 유가족이 깊은 후유증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자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래된 편견과 잘못된 시각 탓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사회건 자살 유가족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와 편견들이 있다. 이 책은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의 부적절한 대처 방식을 명확하게 제시하여, 자살이 유가족만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임을 되돌아보게 한다.
살아 있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존재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살 유가족들에게 직접적이고 신뢰성 있는 상처의 치유에 대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칼라 파인은 이 책에서 자살 유가족들이 겪는 혼란, 죄책감, 수치심, 슬픔, 분노, 외로움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증언하고 있다. 또한 자살로 인한 최초의 충격 단계에서 절망과 고통의 단계, 장례 전후의 단계, 치유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자살 유가족이 겪는 문제들과 치유의 과정이 친절하게 예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비단 자살 유가족들을 위해서만 쓰인 책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사랑하는 사람의 영원한 부재 그것이다. 궁극적으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잠재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언젠가는 모두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한 사람의 부재가 얼마나 큰 빈 자리를 남기는지 미리 알고 있다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삶과 죽음의 문제로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