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 MSN닷컴이 선정한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 영웅 16인에 선정 ★ 한국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 수록 ★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국인 이름을 딴 ‘김영옥 중학교’의 주인공 3개국에서 최고명예훈장! 대한민국의 지도를 바꾼 사나이!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난 김영옥은 1919년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전설적 전쟁영웅으로, 미국 내 소수계나 사회적 약자들 사이에선 그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지도자로 존경받았다. 소설에서나 있을 것 같은 용감하고 비상하며 인간미 넘쳤던 김영옥은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 세계를 무대로 기상을 떨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었다. 이 책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은 한국 · 프랑스 · 이탈리아 3개국에서 최고무공훈장을 받은 전설적 전쟁 영웅이자 평생을 여성 · 아동 · 빈민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바쳤던 인도주의자 김영옥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한국 · 프랑스 · 이탈리아 최고 무공훈장 수훈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2개의 전쟁에 참전해 3개국에서 싸웠고, 그 3개국 모두에서 최고 무공훈장을 받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전쟁영웅이다. 이탈리아 최고무공훈장(십자무공훈장, 1945년) : 로마해방전의 주역으로 당시 활약상은 1944년 5월 UPI 통신을 타고 세계로 타전됐다.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피사를 해방시켜 제갈공명을 뺨치는 천재적 작전장교로서 명성을 재확인시켰다(이탈리아는 동성무공훈장을 수여했다가 종전 후 공훈등급을 재분류,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 최고무공훈장(레지옹도뇌르, 2005년): 프랑스 동북부 보주산맥의 브뤼에르, 비퐁텐의 해방자. 비퐁텐 마을 성당은 그의 이름과 활약상을 새긴 동판을 외벽에 붙여 그를 기리고 있다. 그는 ‘카피텐 김(김 대위)’이라는 이름의 전설로 남아 있다(프랑스는 종전 후 십자무공훈장을 수여했다가 최근 심사를 다시 해 최고훈장을 수여했다). 한국 최고무공훈장(태극무공훈장, 2005년): 한국정부도 한국전쟁 관련 무훈에 대해서는 서훈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바꿔 태극무공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미국 최고무공훈장(명예무공훈장: ): 미국도 2등 훈장(특별무공훈장) 1개, 3등 훈장 2개, 4등 훈장 2개, 5등 훈장 2개 등을 줬으나, 아직도 자국 최고훈장만은 주지 않고 있다. 인종차별, 한국과 한국인의 무관심, 재미동포사회의 정치력 부족 때문이다. 미군 전투교본을 다시 쓰게 한 전설적 작전장교 그가 소대장 시절 일본계 미군들을 훈련시키며 창안한 분대별 이동사격 방식은 한국전쟁 후 미 육군에 의해 정식으로 채택됐다. 1950년대 후반 NATO군 주축인 미 7군 작전장교 시절 창안한 사단 훈련법은 걸프전 직전까지 미 육군이 계속 사용했다. 한반도 휴전선 60킬로미터 북상의 주역 1951년 5월 하순~6월 초순 있었던 유엔군 3차 반격 당시 미 육군 31연대 1대대를 이끌고 반격의 견인차가 돼,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중부전선에서 전선을 60킬로미터나 북상시키며, 전선의 모습 자체를 바꿨다. 이후 휴전회담과 함께 전선은 고착됐고, 이 전선이 오늘날 휴전선이 됐다. 국경을 초월한 영원한 인도주의자 그는 결코 전쟁광도 군인도 아니다. 그의 인도주의적 정신은 한국전쟁 당시 최전선을 지키며 수백 명의 전쟁고아들을 돌볼 때부터 이미 발현되기 시작했다. 그는 1972년 예편 후 평생을 사회봉사활동에 바쳤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살아남는다면 사회를 위해 일생을 바치리라”고 했던 맹세를 지킨 것이었다. 여성 · 아동 · 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 사회봉사를 위해 그가 남긴 업적은 세계가 인정하는 전쟁영웅으로서 그가 남긴 무공에 비해 결코 손색이 없다. 그는 여성, 아동, 청소년, 노인, 빈민, 유색인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 옹호와 신장에 평생을 바쳤다.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의 아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 노선을 지지했던 대한인동지회 소속이었던 재미동포 독립운동가(김순권)의 아들답게, 지금도 “나는 100% 한국인, 100% 미국인”이라며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