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여성의 일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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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 교양총서' 세 번째 책으로, 조선시대 여성의 일생에 대해 살펴본다.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 안다 하여도 그것이 과연 실상에 부합하는 앎인가? 저자들은 조선시대 다양한 여성들이 가졌을 법한 아픔과 고통, 그녀들이 누렸을 법한 기쁨과 성취감에 주목했다. 이 책은 기록 밖으로 밀려나 기억 저 편에 존재했던 여성들, 그 일상을 새로운 상상으로 일구어낸다. 남성들의 유흥에 동원된 기녀에서 최고 지성의 저술가에 이르기까지, 생존과 생활의 노동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던 보통 여성에서 화가·음악가로 예술의 경지를 개척한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의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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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부 조선 여성의 재발견 1장 사라진 목소리를 찾아서 - 조선 여성의 삶, 다시 보고 다시 읽기 | 박무영·연세대 국문과 교수 2장 화가와 현모, 그 불편한 동거 - 신사임당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3장 고통을 발판 삼아 피어난 지성 - 조선 여성 지성인들의 계보 | 이혜순·이화여대 국문과 명예교수 4장 숨은 일꾼, 조선 여성들의 노동 현장 - 베 짜기에서 삯바느질, 이자놀이에서 출장요리까지 | 김경미·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5장 사랑 타령일랑 집어치워라 - 기생의 삶, 그 냉혹한 현실 | 정병설·서울대 국문과 교수 6장 금하고자 하나 금할 수 없었다 - 여성을 통제한 결과로 나타난 아이러니 | 정지영·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 제2부 조선 여성, 그 삶의 현장 7장 여성에게 가족이란 무엇이었나 - 상식과 다른 조선의 혼인과 제사 규칙 | 김미영·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8장 여학교는 없었다, 그러나 교육은 중요했다 - 가문의 영광을 비추는 거울 만들기 | 한희숙·숙명여대 사학과 교수 9장 규중을 지배한 유일한 문자 - 번역소설에서 게임북까지, 여성의 문자생활과 한글 | 이종묵·서울대 국문과 교수 10장 믿음의 힘으로 유교적 획일화에 맞서다 - 조선 여성의 신앙생활: 불교를 중심으로 | 조은수·서울대 철학과 교수 11장 조선 여성들의 로맨스 - 문학 속의 사랑과 규범: 밀회에서 열녀의 탄생까지 | 서지영·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12장 조선 여성 예술가의 탄생 - 시와 노래로 승화된 영혼 | 송지원·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13장 여성의 눈으로 읽는 여성들의 놀이 - 깨가 쏟아지는 규중의 취미생활 | 조혜란·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는 조선시대 여성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 안다 하여도 그것이 과연 실상에 부합하는 앎인가?” 역사, 그 절반은 여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기록의 역사나 기억의 역사에서는 그 몫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조선의 여성은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참을 인忍’ 하나를 금과옥조로 여기고, 고구려 신화 속의 유화 부인처럼 자식을 성공시킨 어머니를 꿈꾸며, 백제 사람 도미의 아내처럼 일편단심 남편을 사랑하는 여인이었다. 알다시피 조선시대 여성에 관한 지식과 정보의 대부분은 남성들에 의해 구성되고 전달되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내처럼 나를 돕는 존재거나 기녀처럼 내 사랑의 판타지를 투사할 존재거나, ‘공식적인’ 조선 여성에는 남성의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 이 책은 기록 밖으로 밀려나 기억 저 편에 존재했던 여성들, 그 일상을 새로운 상상으로 일구어낸다. 남성들의 유흥에 동원된 기녀에서 최고 지성의 저술가에 이르기까지, 생존과 생활의 노동으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던 보통 여성에서 화가·음악가로 예술의 경지를 개척한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유교적인 가족 의례를 주체적으로 실천한 여성에서 그 가족 문화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한 불교승에 이르기까지…… 저자들은 이 다양한 여성들이 가졌을 법한 아픔과 고통, 그녀들이 누렸을 법한 기쁨과 성취감에 주목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고 일하되 일한 티 내기 없기. 절로 산으로 떼 지어 몰려다니며 놀기 없기. 기쁘거나 슬프거나 섭섭하거나 노여워도 겉으로 내색하기 없기. 두 번 이상 시집가기 없기. 알아도 아는 척하기 없기. 있어도 없는 듯 자기 주장하기 없기. 할 말 많아도 말하기 없기. 질투하기 없기. 책 펴놓고 공부하기 없기…… 조선의 아버지들은 딸들에게 이러한 주문을 했다. 양반집 마님의 행장이나 선비 집 아내의 제문 등에는 이렇게 살다 간 여성을 기리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러면 텍스트가 말하지 ‘않은’ 것 또는 말하지 ‘않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하지 말라!’든가 ‘하기 없기!’라는 금지 용법은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언설이다. 실제로 밥 짓고 베 짜는 일 모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여자들이 많다는 세태가 고발되기도 하고, 돈 좀 모은 여자들의 기세등등한 태도와 그에 눌린 남자들의 각성이 촉구되기도 했다. 또 왕의 조정에서는 ‘꽃이 피었네’ ‘부처가 오셨네’ 하면서 강으로 산으로 몰려다니는 여자들로 골치를 앓기도 했다. 이처럼 자기 욕망과 이해에 충실하여 남자들을 긴장시킨 부류의 여성들도 있었다. 여성의 행위를 금지하는 언설과 여성의 세태를 우려하는 담론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사실(혹은 진실)이 하나가 아님을 말해주는 지표이다. 조선 사회 여성들의 진실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할 때, 복수성·다양성의 개념은 의미 있는 매개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놀고 싶은 욕구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규방이라는 곳은 여성 유폐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여성만의 독자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한 패의 여성들은 외출과 노출, 놀이의 금제禁制에 반항하듯 규방 밖에서 보란 듯 놀이를 즐겼다. 그녀들은 광대를 앞세워 흥을 돋우며 시끌벅적하게 거리를 활보했고, 구경거리가 떴다 하면 몸종을 앞세운 사족 여성들이 누구보다 먼저 달려 나갔다. 규방 밖의 놀이가 체제 대항적인 의미를 지녔다면, 규방 안의 놀이는 체제 순응적이거나 체제를 비껴간 형태의 놀이였다. 규방 안의 여성들은 티 내지 않고 깨가 쏟아지도록 소곤소곤 노는 방식이었다. 어디 우리가 상상이나 했던가? 이 여성들이 없었다면 ‘조선은 로맨스 없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남성 문사文士들에 의하면 기생은 사랑을 먹고 사는 ‘특별한’ 존재이다. 하지만 기생의 입장에서 본 기생의 진실은 사랑을 팔고 사는 직업인에 가깝다. 그녀들은 남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야 하는 직업상의 의무로 남성 손님의 취향과 요구를 반영한 사랑노래를 주로 불렀다. 기생이란 동경이나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전근대를 살다간 힘없는 민중의 한 부류일 뿐이다. 또 기생을 통해 성애와 신분 상승 사이에서 갈등했던 조선 양반의 이중적 모습을 읽어내기도 했다. 규중을 지배한 유일한 문자, 한글 조선시대에 한글은 여성의 문자였다. 여성들은 한글 세계에서 놀아야지 한문세계로 넘어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편지를 보낼 때 발신자나 수신자 중 어느 한쪽이라도 여성일 경우 모두 한글이 공식 문자가 되었다. 여성들은 한문을 알아도 한글을 써야 하고, 한문으로 된 책을 읽고자 해도 한글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 언어적인 차별을 당해야만 했다. 왕실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교양을 위하여 수많은 책들이 한글 전용으로 번역되었다. 50책이 넘는 『조야회통朝野會通』 『조야기문朝野奇聞』 『조야첨재朝野簽載』 『정사기람正史紀覽』 등의 역사서를 비롯해 한시선, 한문소설 등이 하나씩 한글로 옮겨졌다. 왕실 여성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중국 여행기인 한글본 연행록도 궁중으로 들어왔다. 김호연재의 『호연재유고浩然齋遺稿』 등 여성들이 남긴 시집을 보면 오직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다. 한시 원문조차 한글로만 표기되고 어려운 단어만 간혹 한글로 간략한 주석을 달아놓았다. 남성조차 여성과 함께 한시를 향유하고자 할 때는 한문보다 한글을 우선시했다. 한글로 번역된 여성의 시집에는 원문이 잘못 필사되거나 음이 잘못 표기된 경우가 상당수 발견된다는 점을 볼 때, 한글로 된 문집을 읽는 이들이 한문 원문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그저 한시를 우리말로 한번 읊조리고 다시 그 풀이를 읊조리는 방식으로 향유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시의 한글 번역본을 읽으면서 조선후기에 이르러 점점 한시가 대중적인 장르가 되면서 한시 짓는 일에 가담하는 여성이 많아졌다. 또 한시를 활용해 퍼즐을 즐기는 놀이책도 많이 등장했다. 『규방미담』은 여성이 놀이로서 한시를 즐길 수 있게 만든 일종의 오락서다. 『규방미담』에는 「귀문도龜文圖」와 「직금도織金圖」와 같은 선기도璇璣圖를 여러 종 삽입하고 있다. 빙글빙글 돌려서 읽는다 하여 선기도라고 한다.(264~273쪽의 그림과 자세한 설명 참조) 글 잘 쓰거나 학문 잘하는 게 수치였던 시대, 문필을 날렸던 여성들 김운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18세기의 대문호 김창협의 딸이다. 대학자인 아버지와 삼촌들로부터 ‘학자’로 대접받던 이 여성은 아버지에게 자기 묘지명을 지어달라 부탁한다. “달리 이름을 후세에 남길 방법이 없는 여성의 몸이니,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 아버지의 묘지명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나은 일일 것”이라면서 말이다. 기록의 주체로 활동하는 일과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상황에서 때로 자기 이름 남기기에 대한 욕망은 이토록 처절했다. 강정일당과 임윤지당 같은 인물도 이름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다. 둘 다 조선의 여성 성리학자로 꼽을 만한데, 강정일당은 “아무리 여성이라도 무슨 일인가 이룰 수 있다면 성인聖人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남편에게 주장한다. 그녀는 남편의 ‘엄한’ 스승 노릇을 하며 학자로서의 삶을 살다 갔다. 하지만 ‘천재’ 여성들이 이름 드러내길 좋아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위협을 느꼈다. 그것은 바로 남들이 집안을 비난할까 의식했기 때문이다. 서영수합이 그런 경우로, 그녀는 저 유명한 홍석주·홍길주·홍현주 삼형제의 어머니였다. 시재가 남달라 종종 시를 지었고, 자식들이 편집·인쇄해서 책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녀는 시를 짓게 된 것이 “남편의 강요에 의해서였고, 시를 짓게 되더라도 입으로 읊어 응했을 뿐 붓을 들어 기록하는 일은 절대로 하려 하지 않았다”고 밝혀놓았다. 여성의 문필이 금기시되던 당시 당당히 내놓는 것은 부덕不德이었기에 감춘 것이다. 한편 선조대의 이옥봉이란 여성은 빼어난 글 솜씨 때문에 결국 남편에게 버림받고 만다. 이옥봉은 16세기 후반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의 서녀로 태어나 워낙 뛰어난 재주로 부친을 여러 차례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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