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에 빛나는 매력적인 좌충우돌 성장기
빼어난 문장과 잔잔한 지혜로 깊은 감동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
어려운 형편 때문에 여덟 살에 신문팔이를 시작해야 했던 소년이 후일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저명한 언론인이자 작가가 되었다면 과연 그의 자서전은 어떻게 씌어질까?
「뉴욕 타임스」의 ‘옵서버’ 칼럼을 36년간 연재한 러셀 베이커는 지난 세기 후반 미국 언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칼럼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여덟 살 때 언론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다”고 익살을 떨면서도 정작 화려한 자신의 이력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책에서는 「볼티모어 선」의 풋내기 기자로 좌충우돌하며 결혼식을 올리는 스물다섯 살까지의 이야기가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둘 때까지 이어지고, 30년을 뛰어넘은 마지막 장의 짧은 장면에서도 저자가 주인공이 되지는 않는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돋보이는 데 이렇게 무관심한 자서전도 드물 것 같다.
많은 자서전에서 고통과 위기와 역경은, 최후의 승리와 성공과 극적 반전을 빛내기 위한 소품으로 사용되곤 한다. 고통스러웠던 유년기와 실패로 점철된 청장년기는 그래서 때로 비장하기까지 하다. 1983년 퓰리처상 평전/자서전 부문을 수상한 『러셀 베이커 자서전: 성장Growinng Up』은 이러한 자서전의 공식(?)을 뒤집는다. “희극적인 동시에 비극적이며, 낄낄거리다 어느새 울컥하기를 반복하게 된다”는 「시카고 선 타임스」의 서평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감정의 선을 제대로 묘사한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시절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외삼촌댁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하는 꼬마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비쳤을까? 비가 내리는 날 신문을 다 팔지 못한 소년에게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을 예상할 필요는 없다. 그에게는 다섯 살짜리 당찬 여동생 도리스가 있기 때문이다. 우유 값을 아끼기 위해 뒷마당에 젖소를 묶어놓고 음식물 쓰레기로 사료를 대신할 생각을 하는 엉뚱한 외숙모는 고아로 자랐지만 강자에게 굽힘이 없고 약자들에겐 더할 수 없이 너그럽다. 이밖에도 숱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러셀 베이커는 주연배우이기를 포기하고 객석에 내려가 그들의 모습과 시간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이 책은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슬픔과 기쁨, 열병과 치유 그리고 무너진 하늘에서 솟아날 구멍이 생기는 좌충우돌의 성장기라 할 수 있다. 대학 입학 전후와 해군 비행단 시절, 그리고 아내와의 연애 이야기가 펼쳐지는 책의 후반부는 거의 매 페이지마다 웃음을 터뜨리게 하지만, 어머니의 병문안을 기록하는 마지막 페이지는 결국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러셀 베이커는 1979년 6월 4일자 「타임Time」의 표지인물로 등장했다. 타자기 앞에서 담배를 들고 있는 그의 사진 아래에는 “The Good Humor Man”이라는 문구가 있다. 로버트 셰릴Robert Sherrill은 「워싱턴 포스트」의 서평에서 그를 “20세기 후반 최고의 풍자가”라 불렀다. 이처럼 러셀 베이커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대개 그의 유머와 위트에 집중된다. 그의 ‘옵서버’ 칼럼이 그러했다. 또한 그에게 두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준 『러셀 베이커 자서전: 성장』에서도 그의 유머는 불우한 환경과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회상에서 단연 빛이 난다. 메리 리 세틀Mary Lee Settle은 그래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서평에서 이 책을 마크 트웨인의 책에 버금갈 만큼 재미있고 감동적이라고 했다.
윌리엄 맨체스터는, “자신의 비밀을 드러냄으로써 당신의 비밀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러셀 베이커가 아주 오래도록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라는 말로 이 책에 대한 평을 대신했다. 『종이 시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앤 타일러의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매우 짧다. “보물!”
저널리스트 러셀 베이커
알리스테어 쿡Alistair Cooke은 BBC 라디오의 ‘미국에서 온 편지’를 1946년부터 2004년까지 진행했을 만큼 장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유명하다. 미국의 PBS가 러셀 베이커에게 그의 뒤를 이어 ‘명작극장 Masterpiece Theater’의 진행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을 때 그는, “나는 알리스테어의 뒤를 이어 진행을 맡은 사람이 은퇴하면 그때 진행을 맡고 싶다”고 했다. 물론 러셀 베이커다운 농담이었고 당시 그의 나이는 67세였다. 그는 알리스테어의 뒤를 이어 1992년부터 ‘명작극장’의 진행자로 2004년 진행을 그만둘 때까지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79세로 은퇴할 때까지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한 러셀 베이커는 1962년부터 1998년까지 「뉴욕 타임스」의 ‘옵서버’ 칼럼을 쓴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옵서버’ 칼럼은 그에게 퓰리처상 평론 부문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는데, 풍자와 위트가 넘치는 그의 글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저널리즘의 교과서가 되었다. 물론 백악관과 의회 그리고 각 분야에서 불명예스럽게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인물들은 그의 풍자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비판에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은퇴한 이후에도 언론 환경과 국내외 문제에 대한 기고와 서평 등을 통해 경륜과 녹슬지 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2007년 많은 미국인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했을 때, 그는 종이신문의 위기는 자본의 탐욕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대중의 신뢰와 사명감을 잃은 언론인들 스스로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올해 85세인 러셀 베이커는 현재 고향 버지니아의 리스버그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