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지난 10월 9일, 일본의 총리로 선출된 하토야마 유키오와 이명박 대통령 간의 한일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화두로 삼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알 수 있듯 21세기 들어 이웃나라 일본과의 우호적 관계가 증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과거사 문제 등을 비롯한 분쟁의 불씨가 아직 꺼지지 않은 것도 사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 히노마루·기미가요의 법제화 문제, 신가이드라인 관련법과 헌법 개정 논의, 역사인식 논쟁 등은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특히 이 논란의 중심에는 ‘내셔널리즘’을 축으로 하는 일본 우익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우익사상을 역사적으로 재검토하는 일은 21세기 일본의 거취를 전망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일본 우익사상의 성립과 전개, 그리고 종언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쓴 책이 출간되어 눈길을 끈다.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일본 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이 바로 그것(문학과지성사 刊, 2009). 일본의 대표적 지성 마쓰모토 겐이치, 일본 우익사상의 성립과 전개, 그리고 종언을 말하다 일본 레이타쿠 대학 교수이자 문예평론가 마쓰모토 겐이치의 저서 『일본 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요시카와 나기 옮김)은, 1976년에 일본에서 『사상으로서의 우익(思想としての 右翼)』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되었다. ‘사상’적 측면에서 일본 우익을 연구한 첫 성과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꾸준히 판을 거듭해 출간되고 있다(이 책은 초판인 1976년 판에 「우익의 종언」(1995년 집필)이 추가된 2000년의 개정판을 바탕으로 일부 구성을 바꿔 번역?출간되었다). 이 책 이전까지 ‘사상’적 측면에서의 우익 연구가 일본의 국가주의 운동이나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연구의 일부로 행해져왔다면, 이 책 이후부터는 좌익과 우익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학자들에 의해 ‘우익’이 ‘사상’적 측면에서 독립된 연구대상으로 취급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일본 우익 연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저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책의 저자 마쓰모토 겐이치(松本健一)는 『젊은 기타 잇키』로 세상에 충격을 주며 평단에 등단해, 이후 역사 속에 매몰된 인물을 발굴한 평전, 일본의 메이지유신이나 개국(開國)을 다룬 저작 등을 속속 출간하며 그 날카로운 통찰력과 실증적 연구로 뒷받침된 폭넓은 지식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사회학자 다케우치 요는 그를 가리켜 “전전파의 다케우치 요시미와 전중파의 하시카와 분조의 계보를 잇는, 뛰어난 전후파 사상사연구자이자 문예평론가”라고 평했으며, 주간지 『아에라AERA』(아사히신문사)는 2007년 10월 15일호에서 “우도 좌도 아닌, 일본을 그려내는 지성”이라는 제목으로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 ‘우익사상’의 성립과 전개, 그리고 종언까지의 역사를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가 고찰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우익은, 우리가 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타락한 우익,’ 즉 이권을 노려서 보수세력의 앞잡이가 된 우익이나 정치결사를 표방하는 폭력단이 아니다. 그가 주로 천착하는 연구 대상은 바로 ‘우익사상’의 본래적인 뜻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일본에 우익사상이 탄생하게 된 역사적 이유를 찾아 메이지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이 우와 좌로 갈라서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아직 우도 좌도 아닌 반체제 사상들의 카오스 속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갖가지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책의 제1부 「사상으로서의 우익」에서 저자는 근대 일본의 권력구조를 우와 좌로 구분하는 대신, 우익과 좌익을 적당히 이용하면서 권력을 좌지우지해온 리버럴을 중심에 놓은 구도를 그려 그 역학을 선명히 해부한다. 제2부에는 다양한 양상을 보인 우익사상에 관한 개별적인 연구를, 제3부는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은 ‘만주국’의 성립과 우익사상의 관련을 고찰한 글을 모았다. 제4부는 1990년대의 사회상황을 관찰하면서 “우익은 이제 존재의의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사상’이란, “궁극에 가서는 논리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 주체의 에토스 문제다. 사람은 살아가는 자세로 자신의 사상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사상’으로서의 일본 우익을 내부인의 냉철한 눈으로 써내려가며, “우익을 금기시하는 태도는, 그것을 신성시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기실 비판이 아니라 사상적 대결을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혹 ‘타락한’ 우익이 아닌, 본래적인 뜻의 우익이 어느 사이에 잘못된 방향으로 빠져버렸다면 우리는 “내가 그때 살았더라면 나도 그런 길을 밟았던 게 아닐까?” 하는 반성과 함께 그 역사적 과정을 냉정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저자의 기본적 자세이며 이 점에서 이 책은 다른 많은 우익연구와 구별된다. 우익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간에 우익사상은 일본의 근?현대 과정에서 형성된 ‘내셔널리즘의 한 소산’이며, 일본의 근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쳐왔다. 따라서 일본 학자의 눈을 통해 일본 우익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이 책은,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책이라 할 수 있다.